‘나불천’ 복개 도로와 마주한 건축물
진주 구도심 신안동 한 모퉁이에 위치
사진 전시·사무, 교육·휴식 기능 담아
사람·예술·문화 잇는 공간으로 설계
우리 주변에는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건축주는 지역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진작가이자 진주를 기반으로 사진문화 확산에 힘써온 전시 기획자이기도 하다. 지역 사진 축제의 총괄감독으로 지역과 세대, 예술과 일상을 잇는 전시와 교육 프로젝트 기획을 시도하는 대단한 열정의 소유자다.
사진이라는 예술 장르를 통해 지역의 문화 발전과 예술 생태를 만들어가는 꿈을 꾸던 건축주는 사람(People), 예술(Art), 문화(Culture)를 주제로 한 PAC갤러리 건축을 기획하기에 이른다. 평소 사진예술에 관심이 있던 나는 우연한 기회로 건축주와 인연을 맺게 돼 설계에 참여하는 행운을 얻었다.
진주시 신안동에 위치한 ‘나불천가-PAC갤러리’ 전경./유근종/
진주시 신안동에 위치한 ‘나불천가-PAC갤러리’ 전경./유근종/
◇설계 의도
“이 대지는 어떤 건축을 원하는가?”
때때로 설계를 시작할 때 던져보는 질문이다. 그 대답을 찾기 위해 대지를 걷고 주변을 둘러보며 과거의 이야기들을 상상해 본다. ‘말 없는 이야기’를 들어보려 시도해 보는 것이 건축의 시작인 것이다.
대지는 진주의 구도심인 신안동의 한 모퉁이에 위치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넓은 도로를 마주한 자투리땅처럼 보인다. 넓은 대로는 복개된 도로다. 도로 위를 걷다가 이곳이 예전에는 물이 흐르던 강이었다는 어릴 적 기억을 찾아낸다. 그 이름은 ‘나불천(羅佛川)’. 지금은 도로 아래에 묻혀 있지만 한때는 마을을 따라 흐르던 생명의 물줄기였다.
‘나불천가-PAC갤러리’ 외관.
‘나불천가-PAC갤러리’ 진입부.
‘나불천가-PAC갤러리’ 2층 계단.
복개된 하천은 도시의 이면이다. 도시가 성장하면서 많은 하천이 콘크리트로 덮여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기억마저도 희미해지고 있다.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물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고, 그 아래의 자연은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건축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천과 다시 연결하고 싶었다. 물리적으로 복개를 철거할 수는 없지만 건축을 통해 그 흐름을 인식하고 기억하게 하는 방식을 찾으려 했다. 그래서 집의 이름을 ‘나불천가(羅佛川-家, 나불천의 집)’라 짓고 건축이 나불천과 관계 맺게 하고 싶었다. 이름을 짓는 일은 하나의 선언과 같지 않을까? 지금은 도로로 덮인 보이지 않는 것을 건축의 중심에 놓겠다는 나의 태도이자 다짐이다.
이 건축은 사진 전시와 사무, 교육과 휴식을 위한 기능을 담고 있다. 더불어 사람과 땅, 도시와 자연, 예술과 일상의 관계를 매개하는 장소가 되길 원했다.
각 층의 진입부를 실내로 바로 연결하지 않고 지붕 있는 외부 공간, 즉 ‘반외부 공간’(진입공간)을 통해서 들어가도록 구성했다. 진입공간은 내부와 외부, 개인과 도시,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사이의 완충지대로 작동한다. 사람들은 이 틈에서 한 번 멈추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복개된 도로 풍경과 멀리 진주성을 바라보게 된다. 짧은 순간이겠지만 그 순간이야말로 건축이 도시와 사람을 연결하게 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건축물은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서 너무 도드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외부 재료와 색채는 절제된 무채색 계열로 구성해 마치 흑백사진처럼 차분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만들고자 했다. 주변과 조화를 이루고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성과도 잘 어우러질 것이다. 건축이 조용한 배경이 되어줄 때 작품이 더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 내부 마감 역시 맑고 단순한 느낌으로 계획했다. 장식 없이 빛과 재료 자체의 감각이 느껴지도록 설정했다. 감상과 일상이 편안하게 스며드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나불천가-PAC갤러리’ 2층 갤러리 내부.
◇설계·시공 과정
1층 출입구는 건축이 도시와 처음 만나는 공간이다. 도로에서 건물로의 접근은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계획하고 진입 계단과 엘리베이터는 시각적 중심에 배치해 동선의 방향성을 명확히 했다. 한쪽에는 작은 카페와 주차장이 위치한다. 카페공간은 조경이 있는 외부 공간과 연결해 작은 쉼터이자 아늑한 마당처럼 기능하도록 했다. 누구나 잠시 머물고 주변과 소통할 수 있는 장면이 되길 바란다.
‘나불천가-PAC갤러리’ 2층 갤러리 홀.
2층은 이 건축의 중심이 되는 사진 갤러리이다. 관람자가 전시실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감상의 상태로 진입할 수 있는 공간적 장치를 마련하고자 갤러리로 향하는 동선을 살짝 길게 늘였다. 계단을 올라 2층 외부공간인 ‘진입 공간’을 거쳐 비로소 내부 공간인 홀에 다다른다. 홀 공간은 외부적 요소를 가진 내부공간으로 전시실 바로 앞의 전이공간이다. 이곳은 내부와 외부를 매개하며 ‘감상의 분위기’를 위해 외부의 소음과 일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해준다. 도로 쪽으로 돌출된 유리 박스는 도로를 지나는 보행자의 소통과 더불어 ‘나불천’을 인지하는 전망대 역할을 하게 된다.
‘나불천가-PAC갤러리’ 건물 외부 계단.
‘나불천가-PAC갤러리’ 2층 계단.
‘나불천가-PAC갤러리’ 건물 외부 계단.
이 시간은 이동하면서 감각을 전환하고 감정의 속도를 낮추는 준비의 시간이다. 그렇게 갤러리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예술작품을 깊이 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건축이 감상을 위한 무대장치가 되는 것이다.
‘나불천가-PAC갤러리’ 3층 강의실.
‘나불천가-PAC갤러리’ 3층 강의실.
‘나불천가-PAC갤러리’ 3층 홀.
‘나불천가-PAC갤러리’ 3층 계단.
‘나불천가-PAC갤러리’ 3층 계단.
3층에는 사무실과 교육공간이 자리한다. 업무와 학습이라는 기능적 목적을 수행하는 동시에 풍경을 담는 틀이기도 하다. 건물의 개구부인 창은 도시를 바라보는 액자가 될 수 있다. 진주성의 능선과 멀리 보이는 산세, 도시의 지붕들이 프레임이 개구부 안으로 들어오면서 시선을 자연과 연결하는 통로가 된다. 루프톱 라운지는 사람들이 자연과 하늘, 도시의 흐름을 편안한 자세로 감상하고 쉴 수 있도록 했다. 작업과 사유, 휴식이 자연스럽게 맞물리는 복합적 감각의 공간이다
.
PAC갤러리 / 나불천가는 작지만 중요한 시도이다. 기능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기억하고 사라진 자연과 다시 연결된다. 사람들이 감각을 회복하고 예술과 다시 만나는 매개체가 되길 바란다. 나불천은 지금도 그 아래를 흐르고 있다. 이 집은 그 흐름과 연결되고 들리지 않는 물소리를 건축의 틈으로 다시 들려주는 공간이다. 그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 내가 이 건축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진주시 신안동에 위치한 ‘나불천가-PAC갤러리’ 전경./유근종/
◇건축개요
위치 : 경상남도 진주시 신안동
용도 : 제2종근린생활시설
규모 : 지상 3층
대지면적 : 315㎡
건축면적 : 162.22㎡
연면적 : 390.93㎡
외부마감 : 노출콘크리트, 스타코
설계: 도원A&C건축사사무소 유재만
유재만(도원A&C건축사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