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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기획] 자살률, 경남을 보다 (1) 자살유족 인터뷰

“다 내잘못 같았다, 아이 먼저 보낸 게”
딸의 고통 알아채지 못한 죄책감에
감당하기 힘든 슬픔·후회 밀려와

 

“오늘 밤 자고 일어나면 괴로운 시간이 훌쩍 지나 70살이 넘어 있었으면…. 할 일을 다 마치고 어서 아이 곁으로 가서 하늘에선 못다 한 사랑을 줄 수만 있다면…. 아이가 힘들었던 순간을 알아채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며 한번만 안아줄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2년 전 딸을 잃었다. 평소 속내를 보여주는 게 서툴었던 딸은 힘들단 말 한 마디 없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 9일 만난 윤정희(40·가명)씨는 큰딸을 먼저 보낸 슬픔과 죄책감, 그리고 그 감정들이 지나가고 끝 모르게 밀려오는 그리움을 눈물과 가정법으로 쏟아냈다. ‘너무 힘들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자의 말에도 그는 2년 전 일을 힘겹게 꺼냈다. 아무 티도 내지 않던 딸이 갑자기 어느 날 가정 밖 일로 힘들어하다 숨졌다는 소식을 접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장례가 끝나 있었다고 했다. 달력은 한장 한장 넘어갔지만 시간은 여전히 그때에 멈춰 있고, 할 수 있는 것은 견디고 사는 일뿐인 시간이 이어져 오고 있다 했다.

 

딸의 갑작스런 사망 뒤 윤씨에겐 슬퍼할 겨를도 없이 원망이 먼저 몰려왔다. 살아오며 남에게 단 한 번도 싫은 소리 해본 적 없이 착하게 살아온 데다 주말마다 가족여행을 다닐 만큼 화목한 가정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살고 있는데…. 신(神)이 있다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는 생각이 그를 더 힘들게 했다. 그는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지, 왜 아무 내색도 안 했을까’ 늘 괜찮다고만 말한 딸을 원망한 시간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틈으로 죄책감과 후회도 파도처럼 밀려왔다. 딸의 죽음이 알아채지 못한 자신의 잘못인 양 한없이 죄스럽다며 가슴을 내리쳤다. 원망과 죄책감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다른 감정이 끝도 모르게 밀려왔다. 그는 “한동안 큰딸 방에 들어가지 못했다”며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야 하나 남편과도 고민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말하며 질끈 눈을 감았다.

 

그리워서였다. 이곳을 떠나면, 딸과의 추억도 모두 사라질 것 같기에. 2년이 흐른 지금도 큰딸의 방을 치우지 않고 보고 싶을 때마다 문을 여는 이유다. 윤씨 가족은 이곳을 큰딸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박물관’이라 부르고 있다. 그날 이후 남편은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감정을 꽁꽁 숨겼다. 윤씨가 자고 있을 새벽, 화장실에 들어가 수도꼭지를 틀고 우는 날이 많았다. 윤씨는 죄책감과 고통을 속으로만 삭여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은 가족, 특히 지켜야 할 또 한 명의 딸이 있었기 때문이다.

 

애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즈음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가 먼저 손을 내밀어 그의 마음 속 이야기를 하게 도왔다. 혼자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위로하고 ‘당신 잘못이 아니야’라고 토닥이며 그의 ‘건강한 애도’를 조력했다.

 

시댁과 친정, 이웃들도 ‘어떻게 했길래’, ‘너도 네 인생 살아야지’, ‘이제 잊을 때가 되지 않았니’ 같은 상처가 되는 말 대신 묵묵히 안아주며 위로했다.

 

그는 “아무래도 남편과 둘째,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한 달에 한두 번 와서 털어놓으면 그 자체로 아픔이 나눠지고, 내가 느끼는 감정이 비정상적인 게 아니란 걸 알아가고 있다”며 “힘들어도 내색 없이 속으로 끙끙 앓기만 하던 남편도 이곳을 찾아 상담 받으며 마음 속 아픔을 털어놓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생업을 포기할 수 없어 일터로 돌아오고, 어느덧 일상의 삶을 살지만 그럼에도 그와 그의 가족에겐 어김없이 슬픔이 닥쳐온다. 큰딸과 같이 여행 갔던 곳을 지나가거나 생일이 다가올 무렵일 때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달라진 것도 있다. 힘들고, 슬프고, 아프면 그대로 표현하고 상담 받는다는 점이다.

 

그의 자리 앞 테이블에 휴지가 수북이 쌓여가던 즈음 그에게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엄마, 나 학교 마치고 이제 학원 가. 엄마는 어디야?” 눈물을 거두고 둘째딸과 통화를 마친 윤씨는 “어느 날 갑자기 언니를 잃은 둘째가 자기도 힘들 텐데 저의 등을 쓸어주면서 ‘엄마, 내가 있잖아. 힘들면 언제든지 나한테 말해, 알았지?’라고 하더라”며 “아직 어린 아이인데 둘째가 저보다 더 어른스러워 힘이 되면서도 한편으론 마음 아프다”고 눈물을 훔쳤다.

 

혈육을 자살로 잃은 윤씨나 사랑하는 사람의 자살에 영향을 받은 사람을 ‘자살유족’ 또는 ‘자살생존자’라 부른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자살이 1건 발생할 때마다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되는 자살유족의 수는 최소 5명에서 10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해 자살 사망자 수 1만3000여명을 기준으로 매년 6만명에서 13만명의 자살 유족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경남의 경우 지난 2020년 자살 사망자 844명을 기준으로 보면 한 해 동안에만 4000~8000여명의 자살 유족이 생기고 있다. 자살 유족은 자살위험이 일반인 대비 8.3배에서 9배에 이르고, 우울장애 발병 위험은 일반인 보다 약 18배 이상 높은 것으로 국내외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다. 유족은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자살예방센터에서 상담 등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자조모임’에 참가할 수 있지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신건강복지센터·자살예방센터에 등록돼 도움 받는 대상은 전국에서 1000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사자 스스로 유족임을 밝히고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가 그 이유다.

 

“많이 망설이시다 취재에 응하셨는데, 나오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인터뷰를 모두 마치고 저녁을 짓기 위해 집으로 향하던 길. 이 질문에 대한 윤씨의 답은 이 땅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자살유족에게 건넨 메시지였다.

 

“딸의 죽음 그 이전과 이후의 삶을 한 번 더 끄집어내는 게 사실 너무나 힘들어 인터뷰 약속을 잡은 후 ‘도망갈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럼에도 제가 도망가지 않고 제 얘기를 꺼냈던 이유가 뭔지 아세요? 저처럼 하루하루 견디며 묻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 중에 한 분이라도 생(生)을 포기하지 말라고, 어서 밖으로 나오라고 외치고 싶어서였습니다. 제가 도움이 될까요?”

 

도영진 기자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