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상특보 수준에 따라 지하차도를 통제하도록 한 행정안전부의 매뉴얼이 현실에 맞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통상적으로 기상 특보 발표 시기가 실제 폭우시점보다 한참 빨라 시민들이 통행에 불편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 해운대구청과 남구청 등 일선 지자체는 실제 강수량 및 폭우시점이 호우경보 발표 시점과 달라 지하차도의 통제 시점에 대한 기준과 지침을 명확히 해달라는 내용의 건의 사항을 부산시와 행정안전부 등에 전달했다고 25일 밝혔다.
행정안전부, 위험 1~3등급 따라
기상특보별로 기계적 통제 지침
비 안 오는데도 차량 통제 해프닝
일부 지자체는 임기응변 대처도
권익위는 표준 안내서 마련 권고
위험 등급 산정 기준 현실화 주문
행안부 매뉴얼에 따르면 침수위험이 가장 큰 1등급은 예비특보, 2등급 호우주의보, 3등급은 호우경보가 발효되면 자치단체가 해당 지하차도의 차량 진입을 막아야 한다.
부산에 지난 21일 오전 7시께, 23일에는 오후 2시께 호우주의보가 발표됐다. 하지만 해당 시점에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 해운대구청 등 일부 지자체는 일부 지하차도의 차량 출입을 막지 않았다. 폭우는 이날 오후 늦게 내렸다. 해운대구청 도시관리과 관계자는 “부산의 모든 지하차도가 경사, 펌프 용량 등 모든 요소가 달라 행안부의 일률적인 지침을 적용하기 어렵다”며 “매뉴얼을 따르기보다는 24시간 담당 공무원이 현장을 확인하며 차량통제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행안부의 지침에 따르면 일선 지자체는 지하차도의 침수가 15cm 이상 진행된 경우나 호우경보 이상의 기상특보가 발표된 상황 혹은 선제적으로 지자체가 판단했을 때 침수위험이 높다고 판단한 경우 지하차도를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15cm가 찬 경우 이미 상황이 악화됐기 때문에 통제 시점이 늦었고, 호우경보가 발효된 시점은 실제 폭우 시점보다 한참 빠른 탓에 현실과 맞지 않다는 게 일선 지자체의 설명이다. 따라서 인적, 물적 피해 등을 예방하기 위해 매뉴얼을 따르는 것 대신 일선 공무원들이 24시간 지하차도 현장을 지키며 육안으로 통제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자체 관계자는 “한 지역 내에서도 어느 곳은 비가 오고 어느 곳은 비가 오지 않은 경우가 있다”며 “이런 경우 시민들이 왜 비도 안 오는데 지하차도를 막고 돌아가라는 거냐며 민원을 넣는데 현장에서는 통제 안 할 수도, 그렇다고 할 수도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 따른 지자체 관계자는 “지난해 동구 초량 지하차도 이후 공무원들이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정확한 매뉴얼 없이 그냥 ‘선제적으로 대응하라’는 매뉴얼은 모든 문제가 생기면 해당 공무원이 뒤집어 쓰라는 것과 같다”고 토로했다.
이에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차량통제 시점에 대한 불명확한 기준을 개선하고 표준안내서를 마련해지자체에 배포하도록 지난달 행안부에 권고했다. 또한 위험점수 등급 산정 기준의 현실화를 주문했다. 현재 위험점수 등급 산정 기준 중 ‘배수시설’ 부문은 단순히 시설의 유·무로 위험 점수를 부여한다. 배수 기능에 영향을 끼치는 펌프 용량, 자동 작동 여부, 우기 전 준설 여부 등이 반영되지 않았다. 이에 국민권익위는 이러한 부분을 침수위험 지하차도 등급화 기준에 반영하도록 행안부에 권고했다.
부산시 자연재난과 관계자는 “현장에서 지자체들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고 있다”며 “행안부에서 국민권익위의 권고를 반영해서 차량통제 시점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매뉴얼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현재로선 모든 지하차도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담당 공무원이 현장을 계속 확인해서 지하차도 통행여부를 결정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말했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