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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주거 빈곤, 이 아이를 구하라] 천장·바닥 내려앉고 곰팡이 천지에 커가는 아이들

대구의 주거 빈곤 아동가구 3곳 가족 심층 인터뷰
천장 누수로 전등 안들어와 밤만되면 손전등 들고 용변
부모 병치레로 방치된 아이, 이웃주민들 '아동학대' 신고
좁은 컨테이너에 일곱 식구, 잠잘 곳 없어 맨바닥에서 자

 

[주거 빈곤, 이 아이를 구하라]

 

〈1〉 대구의 주거 빈곤 아동들

〈2〉 몸과 마음에 남은 상처

〈3〉 집다운 집이 가져온 변화

〈4〉 '주거권리' 보호·지원 방안

 

대구 곳곳에는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있다. 가난 탓에 낡은 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곳 아이들은 건강은 물론 정서적으로도 문제를 안고 있다. 몸과 마음이 성장해야 할 시기에 낡은 집은 걸림돌이 된다. 이에 매일신문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 주거빈곤 아동가구 3곳을 심층취재했다.

 

◆ 무너져 내린 천장, 꺼진 바닥

 

▷서구 비산동 서호네

 

"아야"

서구 비산동의 한 주택 1층 집. 한창 방에서 놀던 서호(가명·5)가 거실로 뛰쳐나가자 머리 위로 나무 조각 하나가 툭 떨어진다. 위를 올려다보니 어김없이 천장 나무 타일이다. 다섯 살 꼬마가 맞기엔 꽤 아플 만도 하지만 서호는 머리를 몇 번 문지르다 만다. 서호의 큰 누나, 형들도 타일을 모두 맞은 적이 있다. 서호의 집은 누수가 심해 오래된 나무 타일이 떨어져 이미 천장엔 남아있는 게 몇 없다.

 

상한 곳은 천장뿐이 아니다. 거실 바닥도 폭삭 내려앉았다. 특히 큰 방, 화장실 문지방 앞 거실 바닥은 완전히 부서져 넘어지기 십상이다. 뛰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이미 서호의 큰 누나가 둘째 누나의 초콜릿을 뺏아 도망가다 크게 넘어져 무릎을 다쳤다.

 

밤이 되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오래전부터 진행된 천장 누수로 거실 전등이 들어오지 않는다. 어두컴컴한 밤이 되면 큰 방 전등에서 나오는 불빛이 가족들에게 등대가 된다. 화장실을 가고자 아이들은 손전등을 켠다. 화장실이라는 '섬'을 향해 손전등을 켜고 어두컴컴한 망망대해 같은 거실을 헤쳐나가야 한다.

 

이사를 가고 싶지만 기초생활수급자인 엄마, 아빠에겐 돈이 없다. 나무 타일이 떨어질 때마다, 벽지에 곰팡이가 쓸 때마다 엄마와 아빠는 수리기사가 되지만, 고쳐도 늘 문제가 반복돼 방치해버린 지 오래다.

 

 

▷북구 읍내동 윤지네

 

취재진 앞에 앉은 윤지(가명·13)가 꾸역꾸역 울음을 삼켜냈다. 친구들이 윤지 집을 '주차장 안쪽 집'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주차장 부지에 산다는 것이 놀림감이 되는 것이 슬프다. '안락하고 포근한 나의 집'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윤지는 그때부터 알게 됐다.

 

북구 읍내동의 한 담벼락에 위치한 윤지네 집은 큰 컨테이너로, 거실과 방 두 개가 전부다. 하지만 문이 없어 사실상 커다란 한 공간에 불과하다. 그 안에 일곱 식구가 산다.

 

이들은 잠을 편히 자보는 게 소원이다. 큰 방은 아빠와 막내가, 작은 방은 오빠와 언니가, 거실은 엄마와 동생, 윤지가 자는 곳이다. 다행히도 고등학생인 큰 오빠와 언니가 기숙사 생활을 해 평일은 윤지가 작은 방 침대를 차지할 수 있다.

 

난간은 낡아 부서지고 얼룩진 이불이 올려진 침대지만 주말마다 거실 맨바닥에서 자는 윤지에겐 이곳이 '호텔 침대'와 같다. 거실 소파 양 끝 손잡이를 베개 삼아 쪼그려 자는 엄마와 동생은 신음과 함께 기상한다. 꺼진 소파로 허리가 아파서다.

 

밤마다 화장실을 다녀오면 온 식구는 모기 밥이 된다. 화장실은 마당에 딸려있어, 손전등 하나에 의지한 채 가야하는데, 풀숲에서 튀어나온 모기들이 달려든다. 화장실 역시 냄새가 고약해 각종 벌레들이 들끓는다.

 

집 안 세탁실이 유일하게 씻는 장소지만, 시멘트 바닥이라 물기가 마르지 않아, 윤지는 매번 벗은 채 거실로 나와 옷을 갈아입는다고 엄마에게 혼난다. 아빠와 큰오빠가 거실에 있기 때문이다.

 

 

▷수성구 황금동 강우네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과 연변인 부모를 둔 강우(가명·12)는 중국에서 생활하다 한국으로 입국한 중도입국 자녀다. 강우 가족은 주공아파트에 들어갔지만, 집 넓이가 59㎡로, 동생이 태어난 뒤 네 식구가 살기에는 좁다.

 

지난 7월 찾은 강우네 집 거실 천장에 빨랫줄이 매달려 있었다. 베란다 빨래걸이만으로는 옷 감당이 안 돼 가느다란 줄 하나를 구입했다.

 

무더위가 찾아왔지만 집은 찜통 그 자체다. 거실의 빨래가 더해져 습도는 더 높아졌다. 에어컨과 선풍기는 고장난 지 오래다. 아파 병원에 누워있는 엄마와 일자리를 잃고 아내 병간호에 매진하는 아빠는 가전을 고칠 생각은 못하고 있다. 손 선풍기 3대로 여름 더위를 견디고 있다.

 

강우와 여동생은 방 한 칸을 차지한 이층 침대에서 잠을 잔다. 낡고 오래된 침대에는 수납공간이 없어 철 지난 이불이 천장에 닿을 듯 쌓였다. 그나마 집에서 놀 공간이라곤 침대가 전부다. 한창 클 나이의 아이들이 벽을 발로 차다 보니 얼마 전에는 커다란 구멍이 하나 생겨버렸다.

 

큰 구멍이 뚫린 작은 방은 강우에게 '무서운 곳'이 돼 버렸다. 구멍에서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아 잠도 자기가 싫지만 침대가 아니면 잘 공간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밤마다 눈을 꼭 감은 채 아침을 기다린다.

 

 

◆ 남들은 우리를 '학대가정'이라 부른다

 

집이 아무리 좁고 낡아도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 집은 서호와 윤지, 강우에겐 가장 편안한 휴식처다. 하지만 아이들의 부모님은 자꾸 경찰에 불려간다. 자녀를 방치를 했다는 이유로 이웃들이 '아동학대' 신고를 하기 때문이다. 아무 죄가 없는 엄마와 아빠가 왜 경찰서에 가는지를 모르는 서호와 윤지, 강우는 어리둥절할 뿐이다. 집의 열악한 환경은 조금씩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있다.

 

▷"매일 밤 바퀴벌레와 싸워요"

 

서호네 집은 밤마다 한 명씩 보초를 선다. 유일하게 불이 들어오는 큰 방 전등이 꺼지는 순간 천장과 벽을 타고 내려오는 바퀴벌레 때문이다. 누수가 심한 서호네 집 부엌 천장엔 큰 구멍이 뚫려있다. 이곳이 바퀴벌레가 나오는 주된 통로다.

 

서호 엄마 A(37) 씨는 불이 꺼진 방에 여섯 식구가 옹기종기 누워있으면 바퀴벌레가 움직이는 '사사-삭' 하는 소리가 귀에 꽂힌다고 했다. 부엌을 넘어 어느덧 방 벽면까지 이동한 바퀴벌레는 자는 아이들의 다리 위에까지 올라와 잠에 막든 아이들은 소스라치게 일어난다.

 

고칠 방법이 없어 방치해둔 낡은 집은 청소도 잘 안 된다. 욕실 세면대와 변기, 부엌 싱크대, 밥솥엔 찌든 때가 이미 잔뜩 꼈다. 이를 지켜본 이웃들이 서호 엄마와 아빠를 아동학대로 신고를 넣기 시작했다.

 

A씨는 "아무래도 주변 환경이 좋지 않다 보니 아동들을 방치한다고 신고하는 경우가 잦다. 집을 고치기 위한 돈이 없고 계속 같은 문제가 발생하다 보니 지친다. 나도 어릴 적부터 좋은 집에 살아본 적이 없어 청소도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매번 급식 카드 들고 편의점행

 

서호네와 마찬가지로 기초생활수급자인 강우도 급식 카드를 받아 끼니를 해결한다. 아빠가 집에 있을 동안은 집밥을 먹을 수 있지만 엄마가 병원에 입원한 후부터는 강우가 다섯 살 여동생과 끼니를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지난번 달걀 프라이를 하다 불이 날 뻔해 그 후로는 급식 카드로 편의점에서 라면, 도시락을 사 먹는다.

 

편의점행 빈도가 잦다 보니 이웃 눈에 금방 띄었다. 병간호로 아빠가 밤늦게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땐 아이 둘이 작은 집에서 버티다 보니, 사정을 모르는 이웃은 "아이들이 방치됐다"고 혀를 내두른다. 강우 집 역시 바퀴벌레가 자주 출몰한 탓에 아직 벌레가 무서운 두 남매가 깊은 밤 소리를 질러, 이웃들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아버지 B(40) 씨는 "이웃이 볼 땐 우리 아이들이 부모 없이 집에 있는 날이 많으니 학대로 보는 것"이라며 "매번 경찰에 자초지종 설명을 한다. 아내가 아파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고 집도 엉망이어서 답답하다"고 했다.

 

▷라면 냄비에 한 살 막내 화상

 

윤지네 엄마 C(40) 씨는 얼마 전 의사한테 호되게 혼났다. 지난달 큰딸에 안겨 있던 여섯째 막내가 다리에 화상을 입어서다. 의사는 "도대체 아이를 어떻게 키우길래 이런 화상을 얻게 하냐"고 나무랐다.

 

식탁이 없어 벌어진 사고였다. 큰딸이 끓인 라면을 작은 방 컴퓨터 책상 앞으로 들고 왔다. 그때 여섯째 막내가 보채기 시작했고 동생을 달래고자 딸은 막내를 무릎에 앉혀두고 라면을 먹다 그만 냄비에 막내 다리가 닿아버린 것.

 

여섯째 막내는 온몸 구석구석 상처투성이다. 얼마 전 생긴 화상은 물론 컨테이너 집으로 이사 온 뒤로 환기가 안 돼 벽에 곰팡이가 슬다 보니 피부병마저 생겼다. 다리에 두드러기가 자주 올라와 아이는 간지러워 매번 자지러지게 운다.

 

C씨는 "윤지와 아이들이 매번 이사를 가자고 하지만 그럴 돈이 없다. 보험 일을 하는 남편 소득도 마땅찮다. 아이들까지 돌보다 보면 소득이 일정하지 않을 때가 많다. 집 고칠 곳은 많고 아이들은 자꾸 아프기만 해 이사가 시급한데 부모로서 해줄 게 없다"고 했다.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윤정훈 기자 hoon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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