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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반친소] "큰 개는 산책도 못 하나…" 눈치보는 대형견 견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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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형견 물림 사고 잇따르자…덩치 큰 개는 잠재적 위험견 낙인
어릴 적 사회화·산책 훈련은 필수…어디를 가든 주의 깊게 관찰해야
사람처럼 듬직하고 푸근한 친구…너무 미워하고 비난하지 말기를

 

최근 골드리트리버 '치즈'와 산책을 나간 신정훈 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한 중년 여성이 다가와 다짜고짜 "왜 입마개를 하지 않았냐"고 다그쳤다. "얘는 공격성이 없어요. 그리고 리트리버는 입마개 의무 착용 견종도 아니에요" 정훈 씨의 설명에도 그는 막무가내였다. "우리 애 잡아먹으면 어쩌려고 이렇게 큰 개를 데리고 나오냐" 비난의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정훈 씨는 10cm로 짧게 잡은 리드줄을 더 바짝 당겼다. "왈왈" 이빨을 드러내며 사납게 짖는 쪽은 정작 중년 여성의 강아지인데 말이다.

 

 

◆ 대형견 견주들도 노력하고 있답니다

 

최근 대형견 물림 사고가 잇따르면서 덩치 큰 개만 봐도 공포감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소형견뿐만 아니라 사람까지 공격하는 뉴스 속 대형견은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히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본질은 흐려진다. 개 물림 사고가 일어나면 주로 반려인의 부족한 '팻 티켓'이 지적되기보다 사고 견종을 탓하는 보도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자기 개는 순하다며 목줄을 안 하고 다니는 견주, 공격적인 행동을 해도 예뻐 죽겠다는 듯 그저 껄껄 웃는 견주. 공공질서를 해하는 몇몇 행동들은 여타 대형견 견주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다.

 

"대형견을 무조건 배척하기보단 함께 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한 게 아닐까요" 정훈 씨는 SNS로 대형견 산책 모임방을 운영한다. 어릴 적부터 사회화, 산책 훈련을 잘 거친 아이들이라면 소형견과의 산책도 별 무리 없다지만 아무래도 체급 차이 때문에 소형견이 치이거나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되도록이면 대형견끼리 함께하는 산책 문화를 만들어 가려 노력한다. 산책 장소는 주로 도심 외곽이나, 다른 개들이 없는 곳으로 섭외한다. 실제 산책 모임방엔 맹견 5종으로 구분되는 로트와일러도 있다.

 

 

 

 

올바른 훈련과 사회화 교육도 반드시 필요하다 말한다. 정훈 씨는 치즈를 데려오기 전부터 유튜브와 TV프로그램, 대형견 커뮤니티를 통해 양육법을 습득했다. 리드 줄을 10cm 정도로 아주 짧게 잡고 다니는 것부터 한 쪽으로 비켜서 기다리기. 견주 옆에 붙어서 다니기. 일부러 공원에 나가 사람들 지나다니는 것도 보여주고, 얌전히 앉아 기다리면 간식으로 보상하는 훈련도 함께 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치즈는 보살이 됐다고. 산책 때 사람들이 다가와 불쑥 만지거나 귀찮게 해도 얌전히 앉아서 기다려준다. 그렇다고 치즈를 100% 믿는 건 아니다. 정훈 씨는 어딜 가든 치즈를 주의 깊게 관찰한다. 애견카페나, 애견 전용 공간을 가면 그냥 반려견을 풀어놓고 신경도 안 쓰는 견주도 태반이다. 하지만 내 아이가 누굴 귀찮게 하는지, 흥분상태는 아닌지 등의 체크는 필수다.

 

 

◆ 대형견 양육, 돈 많이 들고 체력 소모 심해

 

소형견 눈치 보랴 사람들 눈치 보랴. 산책에서 돌아온 정훈 씨가 기진맥진하다. 하지만 치즈에게 주인님의 컨디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냄새를 킁킁 맡고 자세를 몇 번이나 고쳐 잡더니 시원하게 '그것'을 배출한다. 대형견은 강아지 시절엔 배변 횟수가 잦지만, 성견이 되면 하루 2~3번 정도 배변을 한다. 소형견의 대변이 엄지손가락 크기라면, 대형견은 손바닥 크기. 사람의 그것과 크기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대형견은 크기가 큰 만큼 손 갈 구석도 많다. 뭐든지 소형견의 몇 배라고 보면 되는데, 식사량은 많게는 6배까지도 차이가 난다. 한 달에 사료 한 포대는 그냥 먹어치운다. 털 날림 정도나 목욕 시간도 큰 차이가 난다. 덩치가 큰 만큼 털도 어마어마하기 때문. 심지어 치즈는 장모 견종이라 365일 털갈이하는 것처럼 엄청나게 털이 빠진다. 매일 청소기를 돌려도 집 구석구석엔 털 뭉치들이 가득하다.

 

목욕은 씻기는 데 1시간, 털 말리는 데 1시간인데다가 빗질도 덩치가 큰 만큼 많이 빗어줘야 한다. 게다가 병원비도 많이 나간다. 약은 몸무게에 따라 더 비싸고, 엑스레이도 큰 아이일수록 추가비용이 붙기 때문이다. 대형견은 몸이 길다 보니 추가로 찍은 컷수만큼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대형견을 키우고 싶어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신중하게 고려한 뒤 선택하셨으면 좋겠어요" 정훈 씨는 단독주택에 산다. 치즈의 우렁찬 짖음과 층간소음 걱정에 아파트 생활은 꿈도 못 꾼다. 그 뿐만인가. 정훈 씨 아내는 12년 장롱면허를 얼마전 탈출했다. 운전 공포증이 심했지만 치즈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대형견을 키우다 보면 차량이 필요할 때가 많기 떄문이다.

 

대형견 특성상 산책 시에는 충분히 뛰어놀 공간이 필요한데 집 근처에 이런 시설이 갖춰져 있다면 상관없지만 보통 차로 이동해야 하는 곳이 많다. 어딜 가든 뛰어놀 수 있는 소형견과는 달리 대형견에겐 장소의 제약이 많다. 병원 이동 때도 그렇다. 소형견이야 케이지에 넣으면 택시도 제법 태워준다고도 하는데 대형견은 감히 엄두도 안 난다. "대형견을 키우게 되면 포기할 부분이 참 많아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대형견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걸요"

 

 

◆그럼에도 대형견, 왜? "푸근하고 착하잖아요"

 

"덩치는 산만해서 겁은 왜 이렇게 많아" 체격이 큰 사람에게 종종 따라붙는 핀잔이다. 자신을 대형인이라 칭하는 정훈 씨 또한 많이 들어온 말이라고. 그런 정훈 씨는 치즈를 보며 동병상련의 정을 느낀다. 몸집만 컸지 작은 고양이 한 마리에도 기겁하고 낯선 소리가 나면 엄마 아빠품으로 쏙 안겨드는 모습이 꼭 자신의 모습 같다고 한다.

 

 

사람에게 무한한 정을 주는 따스함도 대형견의 큰 매력이다. 큰 개가 떡 하니 지키고 있는 집에 도둑이 들었다면 믿어지는가. 작년 여름, 정훈씨 집에는 도둑이 들었다. 외출하며 바깥 창문을 잠그지 않고 나간 게 화를 부른 것. 집에 돌아왔더니 치즈는 작은방에 갇혀있고, 집은 엉망진창이 돼 있었다. 도둑이 거실에 있는 치즈를 방에 가두고, 집을 들쑤시고 나간 것이다. 경찰은 상식적으로 이렇게 큰 개가 있는데 도둑이 든 게 이상하다는 말을 되뇌었다. 도둑도 사람이니. 치즈는 도둑에게마저 무장해제 됐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대형견의 최대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푸근함이다. 큰 덩치의 대형견이 사람처럼 듬직하게 곁을 지키고 있으면 너무나 행복하다. 옆에 와서 나란히 누운 치즈의 등은 사람이 옆에서 자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들게한다. 추울 때 푹 안기면 대형 난로가 따로 없다. 위로가 필요할 때 정훈 씨 가족은 돌아가며 인간 난로 치즈를 안는다고. "대형견 견주들 눈에만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도 있겠죠. 하지만 대형견 치즈 안전하게 키울게요. 한 덩치 하는 우리 치즈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임소현 기자 hyon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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