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신축년 새해가 시작됐다. 첫 시작, 첫 출근, 첫 마음, 그리고 땅끝.
시작에서 끝을 생각한다. 여일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처음 품은 마음이 마지막에도 한가지였으면 싶다. 그것은 결과와 상관없이 가치있는 일일 터다.
지난해 끝자락과 새해 시작,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강추위였다. 폭설에 산야가 묻히고 길이 얼었다. 코로나까지 겹쳐 모두의 마음마저 얼었다. 그러나 ‘하얀 소’의 해라는 의미처럼 서설(瑞雪)이었으면 싶다.
땅끝에서 처음을 본다. 아니 땅끝에서 처음을 생각한다. 지난해는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이더니 올해는 동장군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추운 날씨를 뚫고 따스운 기운이 살랑살랑 몰려온다. 땅끝이어서 그러나 보다. 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훈풍으로 느껴진다.
그렇다. 땅끝이 환기하는 것은 추위보다는 따스함이다. 해남(海南)에 가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바다의 남쪽’이라는 의미는 이편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남쪽이라는 말도 그렇고 바다라는 말도 그렇고, 저편에서 먼저 아늑함을 준다. 해남에 가면, 그 남쪽 바다에 가면 철학자가 되거나 문인이 되기 십상이다.

해남에는 땅끝순례문학관이 있다. 순례와 가장 밀접한 예술 장르가 문학이다. 해남의 문학을 알현하려면 순례자의 마음이 필요하나 보다. 그러고 보니 순례라는 말에는 끝이라는 의미도 내재돼 있다.
어느 누구인들 순례자가 아니겠는가. 우리 모두는 지구라는 아름다운 별에 잠시 순례자로 온 나그네다. 고작해야 100년 안팎의 순례의 길을 걷다가 그 너머의 세상으로 떠나는 게 우리네 모습이다.
의미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참배하는 것을 ‘순례’(巡禮)라고 한다. 그러므로 해남에 가는 이들은 그 땅이 지닌 역사적, 문화적, 예술적 의미를 숙고하나 보다.
땅끝순례문학관은 지난 2017년 12월 개관했다. 지하1층 지상 1층으로, 외관은 한옥의 형태다.
문학관에는 해남문학의 역사와 이곳 출신 문인들의 생애와 문학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자료가 비치돼 있다. 이곳에선 문학의 가치를 조명하고 계승하기 위한 기획전을 비롯해 문학과 연계한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문학 강좌를 비롯해 맞춤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소장 자료와 기증 자료를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관리하는 일도 주요 업무다.

잠시, 해남 문학의 역사를 일별해보자.
‘표해록’의 저자였던 최부는 해남정씨 가문의 사위가 된 후 많은 문사를 길러냈다. 석천 임억령, 미암 유희춘, 옥봉 백광훈으로 이어졌고, 조선 중기 최고의 가인이지 시조 시인 윤선도가 배출된다. 조선 후기에는 차 이론을 정립한 다성(茶聖)초의선사의 맑고 향기로운 시가 빛을 발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향토적 서정과 인생 의미를 깊이 있게 탐색한 이동주, 박성룡 시인이 있다. 또한 현대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맞서며 시혼을 불태웠던 김남주 시인과 세상을 향해 맑고 바른 소리를 토해냈던 고정희 시인도 있다. 해남을 가리켜 ‘한국 시문학의 산실’, ‘시문학의 저수지’라고 표현하는 이유를 비로소 알 것도 같다.
문학관 인근에는 녹우당, 고산 윤선도기념관이 있다. 건물도 모두 기와를 얹어 한국적인 느낌과 남도의 분위기를 발한다. 눈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풍경이 눈에 이끌려 들어온다. 자연의 풍광을 정치와 연계했던 고산에게 해남은 유배지이자 가풍을 이어야 하는 운명의 공간이었다. 외로운 유배길에서 절창을 남긴 그는 이곳 땅끝에서 유배문학의 꽃을 피웠다.

문학관 밖에는 야외공원이 조성돼 있다. 겨울이지만 그렇게 쓸쓸하거나 황량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과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
이동주 시인의 ‘혼야’(婚夜)가 눈에 들어온다. 향수, 남도 정서, 정한으로 상징되는 이동주의 시는 가슴 한켠을 따스하게 데우는 감성이 녹아 있다. 1950년 ‘문예’(文藝)지에 추천된 작품으로, 금슬 좋은 신혼부부가 어느 결에 나이가 들어 느끼는 삶의 무상함이 주제다. 전편에 흐르는 허망함과 쓸쓸함이 전해온다.
그리고 마주하는 김남주의 시비. 80년대를 온몸으로 밀고 나간 ‘전사시인’이자 올곧은 목소리로 이 땅을 일깨운 ‘민족시인’, 청춘을 감옥에서 보내며 새 세상을 꿈꿨던 ‘혁명 시인’이다. 1993년 사면 복권됐지만 급속히 건강이 악화돼, 1994년 췌장암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나이 48세였다. 공원에는 ‘사랑은’이라는 시비가 세워져 있다. 시인은 그렇게 겨울을 이겼던 사랑, 봄을 기다렸던 사랑을 노래했다. ‘혁명시인’의 내면에 이토록 여린 감성이 배어 있다니….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은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 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김남주 시인과 함께 기억해야 할, 고정희 시인의 시비도 만난다. 고정희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여성해방을 노래했다.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을 역임했으며 ‘초혼제’, ‘이 시대의 아벨’, ‘지리산의 봄’,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등 주옥같은 시를 남겼다.
박성룡 시인의 작품도 보인다. 언론사 기자로 활동했던 그는 후일 시집 ‘풀잎’을 간행했다. 대표작 ‘풀잎’은 언제 읽어도 싱그럽다.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하고 그를 부를 때는,/우리들의 입속에서는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거든요.”
가물가물하던 시어들이 풀처럼 존재를 알려온다. 세상이 온통 풀잎에 뒤덮인 것 같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어느덧 푸른 풀잎이’ 되는 것 같다. 잠시 풀잎 같은 세상을 꿈꾼다. 풀잎 같은 세상을 노래한다. 땅끝 저 먼 바다에서 두 손 들고 줄달음쳐 달려오는 봄을 맞는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