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대 남아있는 경우는 드물어 결합 방식 추정 어려움 겪어와 화살촉 오목한 부분에 결합 추정 정선 아우라지 유적은 관광단지를 조성하면서 알려진 유적이다. 지난 2005년 처음 문화재 조사가 시작됐으며, 그중 화살은 2차 조사 중이던 2017년 청동기 시대 집터에서 출토됐다. 화살은 구석기 시대의 늦은 시기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유물 전체의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화살대는 쉽게 부식되는 유기물이기 때문에 발굴 조사 과정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동기 시대의 화살 역시 촉 부분은 돌로 만들어 그 흔적을 많이 볼 수 있으나 화살대가 남아 있는 사례가 매우 적어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2건에 불과하다. 아우라지 유적에서 출토된 화살은 무경식 돌화살촉과 불에 탄 나무 화살대가 결합된 채로 발굴됐다. 조사 결과 남아 있는 화살대의 길이는 17~25㎝이고, 3년생의 어린 버드나무 가지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화살촉의 오목한 부분에 화살대 끝을 반으로 갈라 끼워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화살대가 쉽게 발견되지 않아 그 결합 방식을 알아내기가 무척 어려웠다. 이런 점에서 아우라지 유적 출토 화살대는 그동안 베일에 싸
흥녕선원터 후속 발굴 중 출토 미륵보살 표현한 것으로 추정 7세기 전반 신라 제작 가능성 영월 흥녕선원 터는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건물터 9동, 배수시설, 석축 등이 확인됐다. 이후 10년이 지난 2017년부터 후속 발굴을 진행하던 중 9호 건물터에서 반가사유상이 출토됐다. 반가사유상은 의자에 앉은 상태에서 바닥에 내려놓은 다리 위에 반대편 다리를 걸쳐 놓고 한 손에 얼굴을 살짝 댄 채 생각에 잠긴 듯한 자세의 불상을 뜻한다. 삼국 시대에 제작된 반가사유상은 주로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사이에 제작됐으며, 중국의 사례를 참고했을 때 미륵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흥녕선원 터 출토 반가사유상은 높이가 13.5㎝의 작은 불상으로, 머리 뒤에는 광배를 연결했던 촉이 남아 있고, 앉아 있는 대좌는 원형이다. 이러한 형태는 7세기 전반에 제작된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보관의 모습, 상반신, 광배의 촉 등 크기를 제외한 여러 부분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의 반가사유상이 신라에서 제작됐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흥녕선원 터 출토 반가사유상 역시 7세기 전반 신라에서 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