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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박미영의 '코로나 끝나면 가고 싶은 그 곳'] 프리다 칼로 미술관, 소우마야 미술관

'멕시코 천재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 미술관…수많은 그림의 무게감 느껴져
죽은 아내가 사랑한 로댕 작품 가득 채운 소우마야 미술관

 

멕시코시티 외곽의 빈민촌은 켜켜이 쌓아 올린 총천연색 성냥곽 같다. 빨강과 파랑, 분홍, 노랑 상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달겨드는 나쁜 꿈처럼 밀집한 집들은 끝없기도 하다. 한숨이 섞인 찬사를 늘어놓으며 외곽도로를 30분쯤 달렸을까, 송곳니를 드러낸 코요테가 그려진 간판들이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한다.

 

콜롬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기 전부터 원주민들의 주거지였으나 자주 출몰하는 코요테 서식지로 더 알려져 명명된 코요아칸(Coyoacan)이다. 스페인에서 건너온 에르난 코르테스가 이곳을 첫 정복 수도 누에바에스파냐로 정해 아즈텍의 테노치티틀란을 침공하는 거점으로 삼기도 했던 곳이다. 아, 그때 그 정복자들이 이리의 일종인 코요테를 멸종시켰다는 설도 있다.

 

멕시코에서 나는 사실 이곳 코요아칸이 가장 궁금했다. 벽이 온통 진청색이어서 카사 아술(La Casa Azul)로 불리는 프리다 칼로 미술관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편이자 멕시코의 국민화가 디에고 리베라 미술관은 바로 옆의 흰색 건물이어서 카사 아술과는 옥상 통로를 통해 서로 드나들었다고.

 

프리다 칼로에게는 '고통을 환상으로 승화시킨 축제의 삶을 살다간 화가' '멕시코의 천재 여성화가' '폭탄을 둘러싼 리본 같은 작품들' 등 수많은 수식어와 수사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정작 멕시코에 와보니 디에고 리베라가 국민화가로 추앙받으며 그의 벽화와 흔적들이 나라 곳곳을 뒤덮고 있다. 역시 20세기 말까지 프리다 칼로가 디에고 리베라의 부인으로만 알려졌다던 그 풍문이 사실인 모양이다.

 

 

◆카사 아술, 프리다 칼로 미술관

 

버스에서 내리자 계피향이 섞인 츄러스 냄새가 확 풍겨 온다. 흐리고 습기가 많은 날이었다. 코요아칸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카페 엘 하로초(El jarocho)에서 커피 한 잔을 사서 들고 길을 걷는다. 몇 마리 코요테들이 몸을 뒤틀며 울부짖는 동상이 인상적인 둥근 분수 광장에서 갓 파마를 했는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싼 아주머니들이 수다를 떨고 있다. 참 정겹다.

 

카사 아술은 프리다 칼로의 생가이자 이혼 후 재결합했을 때 남편 디에고가 아내 프리다를 위해 지금의 모습으로 재단장해 주었고 그곳에서 그녀는 말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떴다. 빨강과 노랑 또는 분홍과 녹색 페인트칠을 한 건물 사이로 깡마른 테우아나족 의상을 한 여인이 지나간다. 이곳으로 오기 전 소마미술관과 여러 미술관에 걸렸던 그녀의 그림들, 다큐멘터리, 도판으로 봐왔던 강렬한 인상의 프리다 칼로 복장이다.

 

드디어 길 건너 카사 아술의 진청색 벽과 육중한 녹색 문이 나타난다. 코요아칸 247번지, 프리다 칼로 미술관이다. 가로수 이파리들 그림자가 선명한 새파란 벽을 배경으로 서로 다른 언어로 웅성거리며 줄을 선 사람들, 드디어 여기 왔구나. 관람 예약을 했던 터라 나는 줄에 끼지 않고 바로 입장했다. 그 순조로움이 무척 상쾌하다.

 

그러나 어두운 중문의 짧은 문턱을 넘어서는 그 순간 나는 엄청난 중압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앞이 탁 트인 중정(中庭)의 잎 무성한 나무들과 관엽식물 화분들 그리고 아즈텍 테라코타들이 가득한 정원 위로 구름이 무겁게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도 그랬지. 피보다 더 붉은 달리아는 당혹스러웠고 용설란은 외설스러워 보였다.

 

 

짙고 숱 많은 눈썹을 양 미간에 이어붙인 화장을 한, 어릴 적 앓은 소아마비와 18세 때의 치명적인 교통사고, 그로 인한 장애를 숨기기 위해 더욱 화려하게 치장했다는 옷들, 석고 코르셋, 강철로 만든 척추 보정기, 천정거울이 달린 침대 위 널브러진 옷 틈의 데드 마스크, 남편의 끔찍한 여성편력, 세 번의 유산, 회저병을 비롯한 척추와 골수 이식, 신장 등 32번의 수술 기록 사진 그리고 그녀의 수많은 드로잉들, 카사 아술에 담겨진 모든 것들은 내가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무게였다.

 

2층 침실과 부엌, 작업실을 빙 돌아 1층 아트 샵에 이를 때까지 계속 내가 느꼈던 것은 '뭐지, 이 숨 막힐 듯한 갑갑함은…'이었고 결국 자신의 이마에 남편 디에고의 초상을 제3의 눈처럼 박아 그린 그녀의 그림 앞에 섰을 때 나는 정원의 가장 밝은 곳으로 뛰쳐나오고야 말았다. 프리다는 디에고의 표현대로라면 세상의 어떤 곳에서라도 생기와 온기를 퍼뜨리는 이였다는데 집은 고통과 상처로 여전히 하염없이 추락하는 생물체처럼 관람하는 객을 짓누르고 있었다. 차마 그 말을 너무나 즐거워하는 일행들에게 하진 못 했다.

 

프리다와 디에고 부부는 공산주의자였다. 1937년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스탈린에게 쫓기던 트로츠키가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거쳐 카사 아술로 와서 묵었다. 하지만 곧 프리다와의 관계로 불화가 생긴 트로츠키 부부는 이사를 했고 1940년 그곳에서 암살당하고 만다. 트로츠키는 화장되어 마당에 묻혔고 그 집은 그의 기념관이 되었다. 1954년 프리다 칼로는 카사 아술에서 숨을 거뒀다. 그녀의 마지막 메모는 다음과 같다. '나의 마지막 외출이 즐겁기를, 그래서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나는 이제 프리다와는 다른 행복한 아내의 미술관으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선다.

 

 

◆로댕을 사랑한 행복한 아내, 소우마야 미술관

 

폴란코 소우마야 미술관(Museo Soumaya)은 텔맥스텔레콤의 회장인 카를로스 슬림이 죽은 아내 이름을 따 세운 초현대적 외양의 미술관이다. 페르난도 로메로가 디자인한 육각 알루미늄판이 은빛 구름 모양으로 두둥실, 마치 알라딘이 요술램프로 만들어낸 궁전 같아 보는 이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한다. 그 입을 또 다물지 못하게 하는 것은 다빈치, 르느와르, 고흐, 마티스, 모네, 피카소, 달리, 리베라 등 15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유럽과 중남미 예술가 작품, 식민시대 동전, 종교화까지 소장된 6만4000여점의 작품 때문이다.

 

죽은 아내가 사랑한 로댕의 청동작품처럼 보이도록 설계한 미술관의 한 전시실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로댕의 작품만 가득 전시하고 있다. 프리다의 남편과는 묘하게 다르면서도 닮은 듯, 멕시칸 특성인가 싶기도 하고 어쨌든 좀 씁쓸했다. 관람료 무료인 소우마야 미술관의 '모두를 위한 예술'이라는 기치는 수많은 멕시코 국민들을 위한 한때 세계 최고의 갑부였다는 슬림회장의 예술철학이라고 한다.

 

2012년 고(故)이건희 회장의 초청으로 삼성미술관 플라토를 관람하며 그곳에 소장된 로댕의 '지옥의 문'을 그렇게 부러워했다던데, 내가 갔을 때는 소우마야 미술관 1층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그 거대한 작품이 위풍당당 서 있었다. 내가 부자들을 부러워하는 단 하나의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아, 그 옆 비스듬한 지점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슬프면서도 성스럽게 전시되어 있었다. 코로나가 끝나면 언젠가 다시 한 번 꼭 들러봐야 할 곳들이다.

 

박미영(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