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전 11시쯤 경북 청송군 청송읍 월외리 옛 월외초등학교 입구. 사람은 눈에 띄지 않고, 도로 주소 표지판은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정원 바닥은 군데군데 패여 자갈과 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사용 금지' 현수막을 친 녹슨 놀이시설에는 먼지와 낙엽이 한 움큼 쌓여 있었다. 검게 부식된 산책로 나무 데크는 발을 디딜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났다.
이곳은 폐교를 리모델링 해 문화예술창작 공간으로 조성한 '장난끼 공화국'이다. 관광개발 국책사업으로 추진된 '솔누리 느림보 세상'의 핵심 시설이다. 사업비 398억원 규모로 2011년에 시작해 2018년 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유지 매입이 지연되며 별다른 진척이 없자 2021년부터 사업이 중단됐다.
폐허처럼 방치된 이곳에 들어간 예산은 145억원이다. 이중 국비가 102억원이고 나머지는 지방비를 썼다. 사업이 좌초되면서 집행된 예산이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이를 주민들은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월외초교 졸업생 주민 최재식(70) 씨 "한때 드문드문 사람들이 들렀는데 지금은 문이 잠겼고 찾는 사람도 거의 없다"며 "돈을 들여 시설을 만들고 땅을 사들였으니 어떻게든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자체는 아직 뚜렷한 대책이 없다. 최수도 청송군 관광정책과장은 "장난끼 공화국 일대를 약수 테라피와 체험학교를 조성하려 했지만 지금은 사업이 중단됐다"며 "국비와 도비는 2021년에 모두 반납했다. 현재는 시설물을 개보수하는 정도고 앞으로 주변 관광지와 연계한 활용방안을 찾는 것이 과제다"고 말했다.
청송 사례는 막대한 예산을 쏟은 '관광개발 국책사업의 민낯'이자 혈세가 낭비되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청송을 포함해 2010년부터 현재까지 '3대 문화권 문화생태 관광기반 조성사업'(이하 3대 문화권 사업)이란 이름으로 대구경북 전역에 45개 사업이 진행됐다. 전체 사업비는 2조원에 달한다.
매일신문은 지난 두 달 동안 3대 문화권 사업을 추적했다. 현장 취재와 운영자료 확보, 회계 결산서와 의회 회의록 분석, 지자체·위탁기관 관계자와 지역·관광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혈세가 낭비되는 무분별한 관광개발의 문제들을 확인했다.
무엇보다 3대 문화권 사업은 적자를 세금으로 메우는 '자생력 없는 관광지'가 대부분이었다. 전체 45개 사업 중 미개장인 4개를 제외한 41개 사업의 누적 운영적자는 933억원에 달했다. 본격적으로 준공·개장이 이뤄진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간의 성적이다. 이 기간 관리운영비로 1천313억원을 지출한 가운데 수입은 380억원(29%)에 그쳤다.
해마다 적자에 허덕이게 된 가장 큰 원인으로, 부족한 콘텐츠 경쟁력이 손꼽힌다. 전시·체험 트렌드가 변화하면서 관광 매력도가 하락하고 시설도 점차 낡아가고 있다. 또 접근성이 떨어지고 인근 관광자원과의 연계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코로나19도 불운이었다. 개장 특수를 누려야 할 시기에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된서리를 맞았다. 지난해 엔데믹(풍토병화) 기회가 왔지만, 전시물과 체험 프로그램은 철 지난 콘텐츠가 됐다.
서철현 대구대 호텔관광과 교수는 "지역마다 특화 없이 비슷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차별성을 갖지 못한 게 3대 문화권 사업 침체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앞으로 40개가 넘는 사업 중 대표적인 거점 지역과 사업을 집중적으로 홍보·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키워드〉
▶3대 문화권 문화생태 관광기반 조성사업이란?
-2008년 9월 제2차 국가균형발전 전략회의에서 대경권 국책사업으로 선정됐다. 유교·가야·신라 문화권의 역사·전통문화와 낙동강·백두대간 생태권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한다는 취지였다. 사업 기간은 2010년부터 2021년까지이고, 총사업비는 2조 원에 달한다. 대구시(군위군 포함)를 비롯해 경상북도의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모두 45개 사업이 추진됐다. 이 중 4개는 아직 미개장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