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도의 폭염이 계속된 3일 오전 성남시 중원구의 한 아파트 앞 도로. 하얀 천막이 서로 마주보며 설치돼 있었다. 천막 안엔 각 동수가 적혀있었고, 그 아래엔 각 세대별 택배가 놓여있었다. 택배를 가지러 천막 안으로 들어간 입주민은 "숨이 턱턱 막힌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왜 집 앞이 아닌 천막으로 택배를 가지러가야 했을까. 이는 택배 차량의 아파트 지하주차장 출입 문제에서 비롯됐다. 이곳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높이는 2.3m. 그러나 택배 차량 높이는 2.6m다.
아파트 측은 안전 문제를 앞세우면서 지난 5월부터 구급차 등 긴급 차량을 제외한 모든 차량의 지상 출입을 금지했다. 이에 따라 택배 차량은 지하주차장으로 가야하지만, 높이가 낮아 들어갈 수가 없었다. 결국 천막이 등장했다.
양측의 입장은 팽팽히 맞선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아파트가 건축될 당시부터 지상에 차 없는 아파트로 계획됐다. 택배 차량이 지상을 오갈 경우 아이들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택배기사 A씨는 "대형 TV나 에어컨 배달 차량은 지상으로 출입한다. 형평성에 맞지 않는 조치"라고 토로했다. 수차례 지상 출입을 요청했지만 소용없었다는 게 A씨 하소연이다.
이런 아파트 택배 대란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위례신도시와 남양주 다산신도시, 수원시 등 도내 다수 아파트 단지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해왔다. 수원시내 한 대단지 아파트에선 지난 5월부터 아파트 측이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금지해, 두 달 가까이가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이삿짐차 등은 지상으로 다니는데 유독 택배에만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 오후 1~5시 4시간만 지상출입을 허용해달라고 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입주자대표회의 측은 "오후 1~5시가 자녀들 이동이 가장 많은 시간이다. 저녁이나 새벽 시간은 어떻겠냐고 했더니 거부했다. 차고가 낮은 차량으로 배송해주는 곳도 있는데 일부 업체와 그런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아이들 안전" vs "형평성 위배"
천막 등장… 기사도 주민도 고통
2018년 관련법 개정 '갈등 불씨'
택배 대란의 주된 원인 중 하나는 지하주차장 층고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8년 '주택건설 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면서 지하주차장 층고 하한선을 기존 2.3m에서 2.7m로 상향했다. 성남 중원구와 수원시 아파트 등처럼 해당 규정 개정 전 건설 허가를 받은 단지들은 2.7m 규정 적용 대상이 아니다.
'차 없는 아파트'로도 불리는 지상공원형 아파트가 확대되는 가운데, 지하주차장의 층고는 낮은 채여서 이 같은 갈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시공사는 설계도면대로 시공할 뿐이다. 그 당시 법대로 시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이 같은 택배 대란이 2018년 이전 건설 허가를 받은 단지 어느 곳에서든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택배 대란을 겪고 있는 수원시 아파트 입대의 관계자는 "다음 달 입주를 시작하는 곳도 지하주차장 층고가 낮아 동일한 현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화성 동탄, 수원 광교 등도 지하주차장 층고가 낮은 곳이 많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자 국토교통부에선 대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각 지자체에선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도 분쟁을 원활히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대란이 계속될수록 입주민들도, 택배기사들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통행하지 않는 시간대에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허용하는 등 합의점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