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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유럽 인문학 기행] 기발한 재치로 용 물리친 크라쿠프의 영웅

[유럽 인문학 기행-폴란드] 크라쿠프 바벨성

먼 옛날에는 바르샤바가 아니라 크라쿠프가 폴란드의 수도였다. 왕은 비스와 강가에 있는 바벨 언덕에 바벨성을 짓고 궁전도 건설해 완다라는 외동딸과 함께 살았다. 왕과 공주가 나라를 잘 다스린 덕분에 백성들은 아주 평화롭고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었다. 백성들은 따뜻한 가슴을 가진 왕과 완다 공주를 무척 사랑했다.

 

 

바벨언덕 지하에는 동굴이 하나 있었다. 많은 가시가돋힌 잡초와 덤불로 입구가 가려진 동굴이었다. 세상 경험이 많은 노인들은 젊은이들에게 동굴에 아주 크고 무시무시한 용이 잠들어 있다고 경고했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라고 했다.

“용이 잠에서 깨면 마을로 내려와 사람들을 괴롭힐 거야. 절대 용을 깨워서는 안 돼.”

 

“용 이야기는 순 엉터리예요. 사람들을 무섭게 하려고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요.”

 

젊은이들은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들은 세상에 용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라는 게 순 엉터리라고 믿었다.

“우리가 직접 동굴에 가서 용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노인들은 그들을 말렸다.

“자네들이 그런 짓을 하면 나라에 큰 어려움이 닥칠지도 모른다네.”

 

젊은이들은 노인들의 만류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날 밤 횃불을 들고 동굴로 갔다. 동굴 앞에 쌓인 잡초와 덤불을 걷어내고 동굴 깊숙이 들어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젊은이들 앞에 아주 넓은 호수가 나타났다. 그들은 호수 아래에 정말 용이 잠들어 있는지 확인하려고 횃불을 던져보았다.

펑!

횃불이 호수에 떨어지자 갑자기 큰 불길이 일었다. 호수의 물이 마치 기름처럼 활활 불타올랐다. 뜨거운 불길 사이로 용이 솟아올랐다. 불길은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으악! 용이다. 진짜 용이 살고 있어!”

노인들의 말처럼 동굴에는 정말 용이 살고 있었다. 그는 수백 년 동안 깊은 잠에 빠져 있었지만 젊은이들이 던진 횃불에 깜짝 놀라 깨어난 것이었다. 편안하게 쉬던 용은 사람들이 잠을 깨우는 바람에 매우 화가 났다.

“나의 숙면을 방해하다니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용의 머리는 세 개인데다 몸은 날카로운 비늘로 덮여 있어 보기에도 흉측했다. 분노한 용은 입에서 불을 내뿜어 바벨 언덕의 나무를 모두 태워버렸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언덕 아래로 날아가 마을도 잿더미로 만들었다.

용 때문에 사람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용이 더 이상 화를 내지 않도록 달래기 위해 사람들은 매일 동굴 앞에 양 한 마리를 먹이로 바치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자 양 한 마리로는 용의 허기를 달래기에 충분하기 않게 됐다. 나중에는 소를 바쳐야 했다. 더 시간이 지나자 폴란드에 있는 모든 양과 소가 다 떨어져 버렸다. 닭이나 토끼로는 용의 배를 채울 수 없었다. 용은 더 화를 냈다.

“작은 가축 대신 한 달에 한 번씩 소녀를 제물로 바치도록 하라.”

사람들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용에게 맞서 싸울 수도 없었고 달아날 수도 없었다. 그들은 어쩔 도리 없이 매달 추첨을 실시해 누군가의 딸을 용에게 제물로 바쳤다. 한 달에 한 번씩 크라쿠프에는 통곡이 끊이지 않았다.

소녀들을 용에게 제물로 바치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모든 소녀가 용에게 제물로 바쳐지고 이제 남은 소녀는 왕의 딸인 완다 공주뿐이었다. 더 이상 소녀가 없었기 때문에 이제 공주를 용에게 제물로 바쳐야 했다.

 

 

“용을 물리치는 기사에게는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주겠다.”

공주를 희생시킬 수 없었던 왕은 용을 무찌를 사람을 찾으라고 명령했다. 용을 물리치면 무엇이든 다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외국에서 많은 기사가 달려왔다. 그러나 그들조차 용을 이길 수는 없었다. 오히려 용의 주린 배를 채우는 희생물이 되고 말았다. 더 이상 왕과 백성들에게 희망은 없었다. 결국 왕은 완다를 용에게 제물로 바칠 날짜를 정하고 매일 눈물만 흘려야 했다.

그때 크라쿠프에 아주 부지런한 신기료장수가 있었다. 그에게는 아주 머리가 좋고 일을 잘 하는 크라쿠스라는 조수가 있었다. 크라쿠스는 며칠 동안이나 용을 물리칠 방안을 강구하다 왕을 찾아갔다.

“왕이시여! 제가 용을 물리치러 가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왕은 신기료장수의 조수가 나선 걸 보고 기가 막혔다. 아무리 최악의 상황에 몰렸다지만 저런 자에게까지 일을 맡겨야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다른 대안이 없었던 그는 물에 빠진 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네가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다면 용과 싸워보거라.”

크라쿠스는 곧바로 용과 싸울 준비를 했다. 그는 푸줏간 주인에게서 양가죽을 달라고 했다. 시장에 가서 유황, 소금, 후추, 송진을 산 뒤 양가죽에 넣어 실로 꿰맸다. 그가 만든 것은 살아있는 양처럼 생긴 인형이었다. 그는 가짜 양을 동굴 입구에 가져다 놓았다.

 

 

다음날 아침, 용은 양을 잡아 먹으려고 동굴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밤새 굶은 탓에 몹시 배가 고팠다. 그래서 양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둘러볼 여유도 없었다. 그는 가짜 양을 덥석 삼켜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용은 배에서 무엇인가 타는 느낌을 받았다. 목도 매우 말랐다. 그는 동굴로 돌아가 호수의 물을 들이켰다. 호수 바닥이 드러났지만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용은 바벨언덕 아래의 비스와 강으로 날아가 강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물을 얼마나 들이켰는지 강바닥이 보일 정도였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속이 타는 느낌과 갈증을 지울 수 없었다. 용은 계속 물을 마셔야 했다. 급기야 용의 배는 마치 복어처럼 빵빵해지더니 나중에는 뻥~ 하고 터지고 말았다.

“만세, 용이 죽었다. 이제 우리는 모두 살았다. 국왕 만세~ 크라쿠스 만세~”

왕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용을 물리친 크라쿠스를 왕궁으로 불렀다.

“내가 직업만 보고 자네를 무시했군. 미안하네. 원하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지 말하게. 자네에게 사과하는 뜻에서 무엇이든 받아들이겠네.”

크라쿠스는 완다 공주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공주님과 결혼하게 해 주십시오.”

왕은 껄껄 웃었다.

“자네는 신기료장수의 조수에 불과하지만 능력만큼은 나보다 100배는 나은 인물일세. 자네가 나중에 왕 자리를 물려받으면 폴란드는 지금보다 훨씬 평화롭고 강한 나가라 될 걸세. 자네와 내 딸의 결혼을 허락하겠네.”

왕의 생각대로 크라쿠스는 나중에 폴란드의 왕 자리에 올랐다. 그가 다스리는 동안 폴란드는 매우 번성했다. 후세 사람들은 그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그가 살던 도시에 그의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이 도시가 크라쿠프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크라쿠스 덕분이었다.

 

 

크라쿠스는 나라를 평온하게 다스린 뒤 세상을 떠났다. 백성들은 위대한 왕을 위해 성대한 장례식을 열어 주었다. 또 용을 죽여 세상을 구한 왕을 잊지 않기 위해 흙을 조금씩 가져와 왕의 무덤 위에 뿌렸다. 흙은 쌓이고 쌓이더니 나중에는 작은 언덕으로 변했다. 이 언덕은 아직도 크라쿠프에 남아 있다. 크라쿠프 사람들은 이곳을 ‘크라쿠스의 언덕’이라고 부른다.

크라쿠스의 언덕은 크라쿠프 시내에서 남쪽으로 3km 떨어진 포드구세 지역에 있다. 포드구세라는 말 자체가 ‘작은 언덕’이라는 뜻이다. 폴란드 정부는 1930년대에 언덕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그런데 크라쿠스 왕의 유해는커녕 무덤 흔적도 나오지 않았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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