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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박미영의 '코로나 끝나면 가고 싶은 그 곳'] 키르기스스탄 이식쿨 호수

"임금님 귀는…" 외쳤더니 물이 넘쳐 호수가 되었다더라
고구려 출신 장수가 대패한 곳…삼국유사와 비슷한 전설 전해
118개 물줄기 모여 수심 700m…세계 두 번째로 큰 '지구의 눈'
별자리 보며 이동 유목민 많아

 

◆탈라스, 고선지의 흔적을 찾아서

 

751년 7월 고구려 유민 출신의 장군 고선지가 이끄는 당나라군은 탈라스에서 압바스군과 마주쳤다. 두 군대는 탈라스 강가에서 대치했다. 고선지의 병력은 2만, 압바스 이슬람 연합군의 수는 20만이었다. 고선지는 이미 서역을 세 차례 정벌해 성공한 명장이었다.

하지만 당 조정이 석국(오늘날의 타슈켄트) 왕을 죽인 큰 실수로 카르룩((葛邏祿, Karluk), 발한나(拔汗那)를 비롯한 서역 민족들이 전쟁 중 후방에서 이탈하고 말았다. 고선지는 사면초가에 빠졌고 대참패했다. 역사학자들은 '이 역사적인 날이 중앙아시아의 운명을 바꾸었다.'고 말한다.

 

 

카자흐스탄에서 마치 시골 기차역 개찰을 하듯 국경을 넘어 도착한 키르기스스탄 탈라스언덕은 풀이 우거져 있었다. 지금도 땅을 파면 화살촉 등속의 무기류가 발견된다고 하니 탈라스전투의 치열함이 느껴지는 듯하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탈라스강이 처연했을 그 전쟁터의 비감을 몸소 표현하듯 굽이굽이 흘러간다. 755년 고선지는 당 현종에 의해 좌천되었다가 안녹산의 난에서 토벌군을 이끌고 수도인 장안을 지켰다. 그러나 전투 중 모함을 받아 진중에서 참형되고 만다.

'신당서'에 따르면 고선지는 용맹한 장수 같다기보다는 말쑥하고 수려한 외모였지만 전쟁터에선 그리 용맹할 수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선지의 전적지를 직접 답사한 영국 탐험가 슈타인(M. A. Stein)은 고선지를 '세계에서 가장 천재적인 전략가'로 칭송했고 서구에서 고선지는 제지기술을 이슬람을 통해 유럽에 전파해 준 문명부흥가로 평가받는다.

압바스군에 끌려간 당의 패잔병들 중 제지기술자가 있었던 것이다. 749년 일찍이 고선지의 기개를 알아본 시성 두보(杜甫)는 그와 그의 말 한혈마(汗血馬)를 찬양하는 시를 이렇게 지었다.

 

 

안서도호의 서역산 푸른 준마/ 명성을 떨치며 홀연히 동쪽으로 왔네./

이 말은 전장에서 오래도록 무적이었고/ 주인과 한 마음으로 큰 공을 세웠네./

공을 이루니 은혜롭게 보살펴져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니/

표표히 먼 사막으로부터 이르렀다네./ 씩씩한 자태는 말구유에 엎드려 은혜 입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사나운 기상은 아직도 전장의 승리를 생각하네./ 발목 짧고 발굽은 높아 쇠를 딛고 서 있는 것 같으니/

교하에서 몇 번이나 겹친 얼음을 발로 차서 깨트렸던가?/

오색 꽃무늬가 온 몸에 구름처럼 흩어져 있어/ 만리를 달리면 바야흐로 피땀 흘리는 것을 보겠네./

장안의 장사들도 감히 올라탈 엄두를 못내니/ 번개보다 빨리 달려감을 온 성에서 다 알고 있기 때문이라/

푸른 실로 갈기 땋고 주인을 위해 늙어가니/ 어찌하면 다시 전쟁터로 길을 나설 수 있을까?

 

 

키르기스스탄은 국토 전체의 40%가 해발 3000m를 넘는 산악지대로 동서로 길게 톈산산맥과 아라이산맥이, 남쪽으로는 파미르 고원이 펼쳐져 있다.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중국과 접경하고 있다. 주변국과 달리 국내에 사막은 존재하지 않고 동서로 뻗어있는 계곡 부분은 사람이 거주하기 적절하며 온대 지중해성기후로 로마와 샌프란시스코와 기후는 비슷하다.

산지는 아한대 습윤기후, 고지대는 고산기후, 북쪽으로 스텝기후와 사막기후 등 다양한 기후가 한 나라 안에서 펼쳐진다. 고대 40개 부족국가로서 철륵, 흉노, 유연, 돌궐, 위구르, 몽골의 지배를 받다가1863년 재정러시아에 병합, 1991년 8월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지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수도 비슈케크는 중세 이슬람풍 구시가와 러시아 식민지시대의 신시가로 나뉘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곳이지만 국기의 붉은 바탕 가운데 이동식 주거지 유르트(Yurt)를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진 것처럼 유목국가다. 현재도 많은 국민들이 유르트 천장에 난 창을 통해 태양을 보고 밤 하늘 별을 보며 하늘을 지도 삼아 살아간다.

그들은 계절과 풀의 위치를 별로 읽어내며 말과 양, 소 등 가축과 함께 옮겨 다닌다. 탈라스의 소박한 호텔 벽에 걸린 노인의 사진이 있어 누구냐고 물었더니 '마나스'라고 했다. 중앙아시아 투르크계 유목민의 영웅인 마나스 3대에 대한 20만 행이 넘는 서사시로 마나스치라는 독특한 낭송자들에 의해 공연되고 구전되어온 우리 판소리 같은 구비문학의 주인공이다. 나는 곧바로 그들에게 애정이 느껴졌다.

 

 

◆중앙아시아의 알프스, 열해(熱海) 이식쿨 호수

키르기스스탄에는 바다가 없는 대신 1923개의 호수가 있다. 해발 1,600m에 위치한 카라콜의 이식쿨은 '뜨거운 호수', 열해(熱海)라는 뜻이자 남미의 티티카카호수 다음으로 높고 시베리아의 바이칼 다음으로 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고 큰 산정 호수다. 길이 180km, 폭 70km로 수심 700m로 경상북도 만한 흐르지 않는 이식쿨에서 배를 타고 오래 건너가면 저 멀리 텐산산맥이 보일 정도여서 바다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호수 물에 약한 소금기가 있고, 대류현상과 강한 바람, 깊은 수심이 독특한 기후를 형성하여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마치 눈처럼 보인다하여 '지구의 눈', '중앙아시아의 알프스' 등 여러 별명으로 일컬어지는 이식쿨은 태양의 위치에 따라 연한 녹색에서 푸른색까지 하루에도 여러 번 빛깔을 바꾸며 만년설로 뒤덮인 텐산을 물 표면에 담는다.

이 아름다움으로 구 소련의 휴양지로 각광을 받았다. 당시 중국과의 국경과 군사비밀기지 탓에 외국인들에겐 출입금지였다고 한다. 디이르갈란강과 튜프강 등 118개의 강과 물줄기가 흘러들어와 형성된 이식쿨은 세계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1975년 람사르협약, 2000년 유네스코의 세계 생물권 보전지역망으로 지정되었다.

 

 

이식쿨에는 희안하게도 당나귀 귀를 가진 왕의 비밀을 이발사가 어떤 우물에 털어놓자 물이 넘쳐 이식쿨이 되었더란 삼국유사의 경문왕편과 유사한 전설이 있다. 또 바닥에 도시가 잠겨 있다는 전설도 있는데, 이는 조사에서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났다고도 한다.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뱃머리에서 너무 맑아 바닥이 훤히 보이는 호수를 계속 내려다 봤다. 물에 잠긴 도시의 어느 첨탑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싶어.

키르기스스탄, 온 나라의 거의 90%가 붉은 살갗을 내민 민둥산이며 강제 이주를 당한 고려인 2만여 명이 살고 있어 가끔 여기가 우리나라 아닌가 싶은 착각에 빠질 때가 많았던 곳이다. 말을 타고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는 사람들은 순박했고, 드넓은 산정 초원에 달랑 한 채만 있던 유르트 바깥 평상에 널어 말리던 치즈는 우리 시골의 고추 말리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 무더운 여름, 코로나 따위는 꿈에도 없던 그 날들, 그 광활한 자연의 품이 그립지 않을 이 누가 있으랴만, 진실로 되돌아가고 싶은 날들이다. 가곡 '가고파'가 문득 듣고 싶어진다.

 

시인 박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