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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박미영의 '코로나 끝나면 가고 싶은 그 곳']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학도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왕가의 역사 살아있는 곳…에든버러성엔 전쟁 영웅 동상·대포·유물 고스란히

 

 

런던에서 에든버러까지는 고속열차로 4시간 20분이 걸린다. 에든버러로 가기 위해 런던 킹스크로스역에서 고속열차를 탔을 때 후두둑 빗방울이 듯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잉글랜드 날씨답게 10분쯤 지나자 맑은 하늘이 드러났고 차창 밖으로 보라빛 섞인 옅은 주홍 노을이 끝없는 풀밭 위로 펼쳐졌다. 가끔 늦은 귀가를 서두르는 양치기를 둘러싸고 양 떼가 지나갔고, 드문드문 하얀 페인트칠이 된 농가들이 풀숲에서 불쑥 나타났다.

 

객실엔 두런두런 낮게 대화하는 승객들의 '영국식 영어'와 가벼운 식사를 위해 부스럭거리는 샌드위치 포장지 뜯는 소리만 간간이 들린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맬 깁슨이 주연한 스코틀랜드 독립 영웅 윌리엄 윌레스의 일대기 브레이브 하트 그리고 미리 좀 읽고 온 월터 스콧을 생각하며 스코틀랜드 역사를 되짚어 본다.

 

 

◆ 메리1세의 생생한 역사가 살아있는 곳

이번 일정에 맥베스의 코더성과 월레스의 스털링성은 빠져 있다. 엘리자베스1세와 5촌 사이인 스코틀랜드의 메리1세를 생각하는 것이 옳겠다.

 

숙명의 라이벌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엘리자베스와 메리는 각각 튜더와 스튜어트왕가의 여왕이 되었다. 프랑스의 왕비였던 아름다운 메리가 남편 프랑수아2세가 죽자 친정인 스코틀랜드로 돌아왔지만 토착 귀족들과의 투쟁에서 패해 엘리자베스에게로 망명하던 때가 1568년이었다.

그녀가 런던을 향해 말을 달렸던 것도 이 길이었을까. 아버지 헨리8세에게 목이 잘린 어머니 앤 불린, 요절한 남동생 에드워드6세 그리고 이교도 처단으로 블러디 메리(Bloody Mary)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으로 불린 언니까지 런던의 엘리자베스 또한 그 삶의 부침이 만만치 않았다.

이후 18년 동안 망명지 런던에서 온갖 정치적 역경을 겪으면서도 왕위를 향한 음모를 몇 번이나 벌이던 메리는 반역죄로 참수당하고 만다. 다행히 그녀의 아들 제임스1세(스코틀랜드 제임스6세)는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1세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었다. 그들의 생생한 역사가 살아있는 곳이 에든버러다.

밤 열 시가 넘은 에든버리 웨이벌리역은 스산했다. 그믐이었던지 달도 없는 하늘과 호텔을 가는 내내 희미한 가로등 아래 어두운 길은 객의 마음을 한없이 멜랑콜리하게 만들었다.

에든버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축제와 셜록 홈즈, 지킬박사와 하이드, 해리 포터의 도시, 1947년 2차세계대전 이후 척박해진 유럽의 인간성을 일깨우고자 시작되었다는 축제는 아직 시작 전이었고,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학도시는 밤이 깊어 로버트 번스의 올드 랭 사인이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리는 걸 보니 시민들은 모두 귀가를 한 모양이다.

 

 

◆에든버러의 상징, 스콧 기념탑

아침 햇살이 환하게 비추는 에든버러는 며칠 묵었던 런던보다 투박했다. 두터운 역사의 두께라는 오래된 건물 외벽의 검은 더께들이 계속 안쓰럽고 거슬린다. 이 나라에 오래 살았다는 이가 런던보다 건물 정비 재정이 부족한 탓이라고 살짝 귀띔한다.

로열 마일, 높은 바위언덕에 세워진 에든버러성과 홀리루드궁전을 잇는 1,100년 된 구시가지 중심로다. 처음에는 왕족들만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서민들은 어디로 다녔지. 종교개혁을 이끌었다는 존 녹스의 집과 상인 글래스톤의 집 사이엔 온통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하다.

유럽의 여느 오래된 도시들처럼 직사각형 돌로 짜 맞춘 길바닥으로 후두둑 또 비가 쏟아진다. 급하게 뛰어든 상점에서 울 스웨터를 들고 흥정을 하는 일행을 보고 웃다가 빨간 타탄 체크 문양 우산을 사들고 또 걷는다. 길을 잃을 염려는 이 곳에선 안 해도 좋다. 어디서나 멜빌과 일종의 파빌리온 같은 스콧 기념탑이 보이는 까닭이다.

조앤 롤링이 유모차에 아이를 데리고 나와 차 한 잔을 시키고 해리 포터를 써내려갔다는 엘리펀트 하우스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냥 지나쳐 좁은 골목길 클로즈(Close)를 걸어 들어가자 성 자일스 대성당이 나타난다. 우리 무궁화처럼 스코틀랜드의 나라 꽃 엉겅퀴 모양으로 지은 성당으로 스테인드 글라스가 역시 인상적이다.

 

 

 

빗물이 튀어 오르는 길을 다시 걷는다. 비 내리니 더욱 비감한 느낌이 드는 에든버러성 입구엔 잉글랜드에 끊임없이 대항한 독립영웅 로버트 부르스와 윌리엄 월레스가 성벽 감실에 나란히 양각되어 있다.

중세의 그 참혹한 전쟁들을 비롯하여 나폴레옹 전쟁과 1. 2차 세계대전까지 무수한 전쟁을 치른 성은 마치 요새 또는 전쟁박물관 같다.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성루의 대포와 전쟁 영웅들의 동상, 전쟁견, 전쟁화, 전쟁 유물들을 보니 더욱 비감해진다.

성을 내려와 스카치위스키 익스피어리언스에 들렀다. 시음도 하고 위스키 판매도 하는 대형 매장인데 이 날씨에, 이 비감함에 젖은 몸을 달래기엔 더없이 어울리는 싱글 몰트 위스키를 종류 별로 네 잔이나 받아 홀짝거렸다. 하이랜드, 로우랜드, 아일레이, 캠벨타운이라 바텐더가 나직하게 읊으며 잔을 바꿔가며 따뤄 주는데 향이 조금씩 다르던가. 어쨌든 몸은 따뜻해진다. 그날 에든버러에는 계속 비가 내렸다.

이튿날 숙취엔 산책만한 것이 없다는 것으로 일정이 시작되어 에든버러대학교에 들렀다. 즐거운 편지로 유명한 시인 황동규 선생의 모교다. 나중에 그 대학교를 들러봤다고 말씀드렸더니 파안대소하셨다. 역시 비는 내렸고 잔디는 더욱 푸르러 신발은 흠뻑 젖었지만 내친걸음으로 칼톤언덕을 올랐다.

런던 트라팔가광장에서 보았던 넬슨제독의 거대한 기념탑이 거기 있었다.멀리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그리스 파르테논신전을 본뜬 거대한 기념물이 있다. 나폴레옹군과 싸우다 죽은 병사들을 위한 모뉴망이란다.

 

 

◆에든버러로 다시 오리라

언덕을 내려와 국부론을 쓴 아담 스미스와 철학자 데이비드 흄 동상의 발을 한 번 만지고 전통복장을 한 백파이프 연주자를 지나 현재 엘리자베스2세의 여름 체류지인 홀리루드궁전으로 가려다 망설인다. 메리1세의 남편 단리가 그녀의 애인 리치오를 칼로 찔러 죽였고 그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곳이다. 스코틀랜드왕의 왕좌도 있어 왕을 알현하는 의식도 치러볼 수 있다는데 비에 지친 일행은 포기하고 에프터눈 티타임을 갖기로 한다.

찻집은 좀 전의 백파이프 연주자와 가까운 곳에 있어 달팽이가 기어가는 듯한 그 음색을 들으며 차를 마셨다. 에든버러는 무언지 런던과 다르다는 그 생각을 계속 했는데 저 묘한 음색이 그것을 자꾸 증폭시킨다. 그러고 보니 여행한 그 해 가을에 스코틀랜드의 잉글랜드와의 분리 독립 찬반투표를 했는데 결과적으론 반대표가 많아 부결되었고, 2022년 6월 현재 재투표를 실시하자는 주장이 계속 대두된다는 뉴스를 보았다.

남의 일 같지 않은 건 또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그날 저녁 글래스고우를 향해 떠나는 버스 안에서 나는 필히 에든버러로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어두워져가는 도시를 향해 혼자 살며시 손을 흔들었다.

나중에 아일랜드까지 함께 여행한 큰 회사의 회장님 부부가 더블린공항에서 선물로 사준 짙은 청록색 아일랜드 스웨터에 프랑스자수 전문가에게 부탁하여 팥색깔의 스코틀랜드 엉겅퀴 자수를 넣은 것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그리고 아일랜드의 안녕과 평화를 비는 내 나름의 기원이었으리라 또 혼자 생각해본다.

 

시인 박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