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강릉 28.1℃
  • 맑음서울 22.4℃
  • 맑음인천 20.4℃
  • 맑음원주 24.8℃
  • 맑음수원 21.8℃
  • 맑음청주 25.0℃
  • 맑음대전 23.9℃
  • 맑음포항 28.0℃
  • 맑음대구 26.7℃
  • 맑음전주 22.5℃
  • 맑음울산 24.4℃
  • 맑음창원 21.4℃
  • 맑음광주 24.7℃
  • 맑음부산 20.2℃
  • 맑음순천 21.0℃
  • 맑음홍성(예) 21.9℃
  • 맑음제주 21.3℃
  • 맑음김해시 22.4℃
  • 맑음구미 23.6℃
기상청 제공
메뉴

(매일신문) [박미영의 '코로나 끝나면 가고 싶은 그 곳'] 지안(集安), 백두산(白頭山)

 

1851년 9월 12일,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이렇게 일기에 썼다. '하루에 한 번은 꼭 지평선의 산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 천상의 장막인 창공을 통해 내려다보는 땅. 산맥은 대지의 이마 위로 솟은 천연의 사원이다. 그것을 바라보기만 해도 누구나 자연스럽게 고양되고 영묘해질 것이다. 대기를 잔뜩 머금은 창공과 대지를 사이에 두고 대기를 통해 대지를 보고 싶다.'

 

이 한 구절 때문에 나는 지평선에 대한 열병을 앓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춘기의 다른 이름이었겠지만 나는 10대 후반이었고 1980년대로 막 접어드는 격동의 시절이었다. 연약한 정신은 그 갈망에 너무 쉽게 마취되어 '마적의 딸이나 되어 만주벌이나 두만강가를 말을 타고 달리고 싶다.'는 일기까지 쓸 정도였다.

 

그 열병은 서른을 훌쩍 넘겨 사막과 황야를 떠돌며 자연스럽게 나았지만 늘 마음 한구석엔 무언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 실체를 나는 키르키스탄 이식쿨호수 앞에서 깨달았다. 백두산 천지(天池)에 가질 못했던 것이다.

 

 

◆지안(集安), 잃어버린 왕국의 흔적들

 

2019년 여름, 대구의 한 단체에서 '백두산, 용정 독립운동 유적지 5일 기행'을 진행했고 흔쾌히 나는 참가했다. 8월 8일, 한여름의 심양에서 청나라 누르하치의 고궁을 한나절 둘러보고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였던 지안(集安)의 국내성으로 갔다. 서기 3년(유리왕 22년) 졸본성에서 이곳으로 천도하여 427년(장수왕 15년) 평양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무려 400년 동안 고구려의 궁성이었던 옛터는 초라하기 그지없이 아파트 단지 앞 초록색 펜스만 설치된 채 차곡차곡 쌓여 있는 돌무더기 흔적으로만 남아 있었다.

 

사실 그 직전에 들렀던 광개토대왕릉비와 태왕릉 그리고 장수왕릉인 장군총도 동북공정의 프레임 속에 갇혀 무덤의 씌어진 문구 '태왕의 능이 산처럼 평안하고, 큰 산처럼 굳건하길 기원합니다.'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룽 산(龙山) 자락의 장군총처럼 원형 그대로 보존되었더라면 그보다 4배는 더 컸을 거라는데 계단식 화강암 석실묘는 온데간데 없이 거대한 자갈 무더기와 주변의 돌조각으로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비감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계단식 돌무지돌방무덤 그대로 거대한 호분석을 기대 놓은 형세가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닮아 '동방의 피라미드'란 별명이 붙은 장군총과 함께 200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중국 당국의 집중 관리를 받는다니 다행인가. 잃어버린 왕국의 흔적들이 서로 말 없이 둘러보는 후손들의 마음을 아릿하게 저며든다.

 

 

◆백두산(白頭山), 박달나무 아래

 

1285년(충렬왕 11년)에 일연은 삼국유사 고기(古記)에 이렇게 기록했다. '아득한 옛날, 하느님의 작은아들 환웅(桓雄)께서 여러 차례 인간세계에 내려가고자 하자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의 뜻을 아시고 하계를 두루 살피시더니 태백(太伯) 곧 백두산이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 곳으로 여기시어, 곧 아드님에게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고 내려가서 그곳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께서는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마루 박달나무 아래에 내리시어 그곳을 신시(神市)라 하시니, 이 분이 곧 환웅천황이시다.'

 

드디어 오르게 될 백두산의 북파산문(北坡山門)을 향해 합리하에서 청산리대첩지와 신흥강습소를 둘러보고 퉁화(通化)에서 5시간을 달려 왔다. 다시 천지(天池)까지 지프차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야 한단다.

 

브레이크가 없는 지프차에 수도 없이 나타난다는 U자형 커브길 때문에 멀미약을 먹었다. 북한과 국경이 맞닿은 서파(西坡)는 야생화 군락지로 이맘때는 큰원추리, 하늘매발톱꽃 등 1,800여 종의 야생화가 만발한 지상의 천국, 고산 화원(高山花园)이라는데 북파길로 가장 쉽게 천지를 볼 수 있는 길을 택한 댓가 아니겠는가.

 

백두산은 봉우리는 총 16개로 최고봉은 해발 2,744m인 병사봉(兵使峰, 북한에서는 장군봉으로 부른다.)으로 각 봉우리 정상 사이에 칼데라 호수인 천지를 품었다. 북한 양강도 삼지연시와 중국 지린성 사이에 있다. 누군가 애국가를 나지막히 부른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문득 인천 앞바다의 평균 해수면을 수준원점으로 삼은 우리 기준으로는 백두산의 높이가 2,744m가 되지만, 원산 앞바다의 평균 해수면을 수준 원점으로 삼은 북한 기준으로는 2,750m, 톈진 앞바다의 평균 해수면을 수준 원점으로 삼은 중국 기준으로는 2,749.2m가 된다는 백두산의 높이가 생각난다.

 

 

용이 승천한 모습을 닮았다하여 이름 붙여진 비룡폭포(장백 폭포, 长白瀑布)를 보고 북파에서 가장 높다는 천문봉(2,679m)에 오르니 드디어 백두산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백두대간이 여기서 시작되어 지리산까지 이어져 있다는 '머리가 하얀 산', 화산활동으로 흰색 부석(浮石)이 온 산을 뒤덮고 있어 붙여졌다고도 하고, 1년 중 겨울이 230일 이상으로 정상에 흰 눈이 쌓여 있는 기간이 길어 붙여졌다고도 한다. 중국인들은 백두산을 '창바이산(长白山)'이라고 부르는데 그 뜻은 같다.

 

쾌청한 날씨에 면경처럼 맑고 푸른 천지가 발아래 펼쳐져 있다. 천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분화구 호수다. 수면 고도가 2,194m로 세계에서 가장 높고, 가장 깊은 수심이 384m로 세계에서 가장 깊다. 이 백두산의 비탈진 면에서 압록강과 두만강이 시작되고, 천지의 물이 북쪽으로 흘러내려 쑹화강(松花江)이 된다. 중국과 한반도의 수원지인 셈이다. 그럼에도 1962년 중국과 북한이 영토의 경계를 나누어 백두산의 60%는 중국땅, 40%는 북한땅이 되었다.

 

동쪽은 북한에 속해서 갈 수 없고, 날은 수시로 궂어져 천지의 면적 9.17㎢, 둘레 14km를 이렇게 완벽하게 바라볼 수 있는 날은 별로 없다고 조선족 가이드가 목청을 높인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천지를 보신 여러분들은 조상 선대 몇 대에 걸쳐 덕을 쌓은 기막힌 운을 타고난 분들입니다.

 

 

오래 전부터 천지에는 괴수가 산다는 소문이 있었다. 네스호의 괴물을 닮았다고 하고, 머리가 황소를 닮았다고도 했다. 산해경 17권에 '비질(蜚蛭)이 있는데 날개가 넷이다. 짐승 머리에 뱀 몸통을 한 것인데 이름을 금충(琴蟲)이라 한다.'라는 기록도 있다. 실제로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의 까만 점을 손가락으로 확대하니 괴물과 같은 형상이 나타나 의견이 분분하기도 했다.

 

역시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한다는 백두산 날씨인지라 우리가 중간 캠프로 내려올 즈음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쌩쌩 찬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나중에 들으니 그날 이후 며칠 입산 금지령이 내렸다고 하니 그 가이드의 말이 사실 같기도 하다. 이도백하(二道白河)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는 잠시 침묵이 흐른다. 아마도 중국의 천지 경계비를 살짝 지나쳐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가 북한 땅을 잠시나마 밟아본 감회를 각자 생각하는 것이리라. 내일은 용정 윤동주 시인의 생가 탐방이 예정되어 있으니 마음은 점점 무거워진다.

 

글= 박미영(시인),사진=서담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