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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2021년 사건·사고 결산-전두환·노태우 사망] 죽음으로 진실 묻을 수 없어…5·18 규명 계속돼야

광주학살 원흉 끝내 입 안열어
회고록 통해서 되레 5·18 왜곡
5·18진상조사위 활동 성과 못내
신군부 핵심인물 조사 기회 놓쳐
사명감 갖고 진상 규명 나서야

 

 

5·18민주화운동 학살의 주범으로 꼽히는 전두환씨와 노태우씨가 올해 숨졌다. 신군부 핵심 인물들이 잇따라 사망하면서 발포명령자, 암매장·행방불명자 등 미완의 5·18 진상 규명을 기대했던 지역민들의 간절한 바람도 이뤄지는 데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하지만 전씨 사망 등을 계기로 5·18의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는 열망도 한층 더 커지고 있다.

전씨는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대구공고를 졸업했고 전씨보다 한 살 어린 노씨는 대구공고의 전신인 대구공업중을 거쳐 1951년 경북고를 졸업했다.
 

둘은 1952년 육사 제11기(정규 육사 1기) 동기생으로 만나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면서 육사출신 사조직인 ‘하나회’를 이끌었다.

전씨는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 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 보안사령관 등을 지냈다. 노씨는 전씨의 길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전씨는 특히 합동수사본부장 겸 보안사령관으로 지난 1979년 12·12 쿠데타를 주도했다. 노씨도 당시 9사단장으로 전씨의 집권을 도왔다.

전씨는 이듬해 5월 광주 민중항쟁을 유혈 진압하고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로 1981년 제11대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는 집권 기간 내내 철권통치를 하다 5·18 학살 진상 규명, 대통령 직선제 촉구 등 민주화 열기에 눌려 1988년 권좌에서 밀려났다. 노씨도 전씨의 지원으로 13대 대통령에 올랐지만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다.
 

전씨와 노씨는 숱한 기회가 있었음에도 5·18 관련 반성이나 사과를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1988년 5공 및 광주청문회, 이어진 12·12 및 5·18 사건 검찰 수사와 재판, 국방부 과거사위원회 조사 등을 거치면서도 5·18 핵심 의혹 규명에 어려움을 겪었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5·18을 왜곡했다.

노씨는 지난 2011년 출간한 자신의 회고록에 “80년 광주사태의 진범은 유언비어”라며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시민들 씨를 말리러 왔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들은 시민들이 무기고를 습격한 것”이라고 주장해 지역민의 공분을 샀다.

전씨도 ‘5·18과 자신은 무관하다’는 내용을 담은 회고록을 지난 2017년 펴내 역사 왜곡을 시도하기도 했다.

‘5월의 사제’로 불리던 고(故) 조비오 신부를 가리켜 ‘가면을 쓴 사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기술해 법정에 섰고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전씨는 항소심 진행 중 숨져 5·18 당시 헬기사격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이대로 중단될 전망이다.

전·노씨의 사망을 계기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활동 계획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출범 2년이 되도록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던데다, 신군부 핵심인물들에 대한 조사를 미적대다 소중한 시간을 날려버렸다는 비난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진상조사위는 오는 27일 대국민보고회를 예정하고 있지만 허송세월하고 있다는 여론의 지적을 의식해 ‘핵심 진상 규명과는 거리가 먼, 보여주기식 일부 조사 내용 공개’라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전·노씨가 없더라도 5·18 진상 규명은 계속돼야 한다는 것, 내년에도 바뀌지 않는 지역민들의 최우선 요구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