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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두바퀴로 달리는 경북도 명품길] ⑥이야깃거리 한가득, 문경 하늘자락길

씽씽 달릴 땐 몰랐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문경을 반으로 뚝 자른다. 종(縱)이 아닌 횡(橫)으로 재단한다. 한양으로 과거보러 가는 문경새재길을 맛 보았으나 아직 성에 차지 않는다.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인 문경땅을 땀 삐질삐질 흘리지 않고 '희희낙낙대며 거드름을 피울수 있는 자전거 길은 없을까' 하고 고심했다. 무릎을 탁 쳤다. 슬쩍 문경 땅 몸통을 살펴보니 온갖 얘기거리들이 넉넉하다. "그래! 횡(橫)으로 펼쳐진 심장 고동길을 따라서 바퀴질을 해 보자."

 

문경 몸통 하늘자락길 : 예천 소백산 하늘자락공원~경천호~주평역,불정역,진남교반,고모산성~가은역~에코랄라~선유동계곡~봉암사 80Km

 

 

◆문경 8경을 품은 자전거길

 

길은 착하고 얌전하다. 종(縱)으로 이화령 문경새재 단산을 넘는길이 남성적이고 도전적이라면, 횡(橫)으로 난 길은 여성적이고 서사시적이다. 충혈된 눈으로 지금은 추억속의 폐역이 된 간이역을 잇는다. '주평역, 불정역, 진남역, 가은역 그리고 탄광 박물관'. 탄광촌이 번성하던 옛적, 생계의 목줄이었던 석탄을 나르기위해 달렸던 열차는 진작에 멈췄고 사연담은 폐역사들은 이젠 낭만팔이에 여념이 없다.

 

 

옛 열차길은 강을 따라서 이어진다. 바로 '영강'이다. 낭만어린 강길이다. 멈춰버린 '간이역'과 '영강'이 선사하는 얘기 보따리를 여인네 가슴섶 풀듯 조심스레 하나둘씩 펼쳐간다.길은 예천 소백산 자락에서 시작한다. 애시당초 문경 예천은 한 몸이었다. 예천에서 문경땅이 가장 잘뵈는 곳으로 간다. 바로 소백산 하늘자락공원이다. 해발 730m이다. 360도 거침없이 문경땅 예천땅이 한눈에 펼쳐진다. 자전거는 위세도 당당하게 해발 730m위에 휘돌아 난 숲속 자락길을 한바퀴 돈다. 페달 아래로 구름길이 따라온다. 이윽고, 23m 높이의 전망대 위에서 다들 거친 호흡을 다듬는다. 호쾌함! 장쾌함! 통쾌함! 온갖 기개를 양 가슴과 두 손에 가득담아 품에 안는다.

 

이제부터는 냅따 내리막이다. 순식간에 예천땅 고찰 용문사를 스쳐 지난다. '문경입니다. 어서 오세요', 푯말이 선명한 동림면쪽으로 달린다. 자그마한 저수지 두곳을 가픈 숨을 고르며 지나니 쩍하고 광활한 호수가 펼쳐진다. 바로 '경천호'이다. 문"경" 과 예"천"의 한 글자씩 따와서 1983년 조성된 높이 63m의 호반이다. 저너머로 잘생긴 천주산이 구름속에 흘낏 보인다.

 

문경 8경중 하나인데 정작 잘 알려지지 않았다. 자전거는 물론이고 살풋 실비오는 날엔 드라이브 코스로도 제격이다. 욕심쟁이 마냥 호수를 독차지하며 추억의 그루브(Groove)를 남긴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문경의 몸통속으로 들어간다. 길은 쉽다. 그냥 강섶만 따라가면 된다. 초록 강풀숲을 달리는 라이더는 음유시인이 된다. 딱 그뿐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노래가 나온다.

 

 

◆화려했던 흔적만 남은 폐역사

 

이윽고 첫번째 이야기 보따리에 도착한다. 꽃과 나무가 많다는 의미를 지닌 '화수헌'이다. 300년 된 고택을 개조하여 만든 한옥카페이다. 마을 초입에 주차된 차량들의 젊은 행렬이 핫플스럽다. 자전거는 금천을 사이에 두고 그 반대편에 묻힌 한 비밀스런 정자로 향한다. 채익하 선생을 기린 '주암정(舟巖亭)'이다. 건립된지 약100년에 불과하다지만, 기암에 둘러싸인 배 모양의 바위에 자리잡은 누각은 그동안 다녔던 많은 정자중 단연 엄지척이다.

 

일반인들의 접근이 쉽지않은 이곳은 자전거 여행객에게는 특혜이다. 연못 연꽃 능소화 사이로 비치는 배 바위에 자리잡은 정자를 맘껏 즐겼다. 이제부터는 폐역사가 된 간이역 시리즈이다. '주평역'이다. 1996년 이래 더이상 제대로된 열차가 다니지 않아 스산하다. 옛적 석탄산업이 화려했던 흔적만이 뭍어난다. 곧이어, 국토종주길의 메카 였던 '불정역' 인증센터로 간다.

 

 

 

한때는 예쁜 카페와 폐열차 선로위로 만들어진 각종의 조형물이 꽤나 인기 만점이었다. 누구나 국토종주길에 맞닥뜨린 불정역을 배경으로 찍은 인생샷이 하나씩 있을 정도였다. 그것도 옛말, 사람의 손길이 멀어지니 잡풀만이 무성하다. 사라진 사람 온기에 마음마져 처진다. 하지만 이내, 거대한 협곡에 압도된다. '진남교반(鎭南橋畔)'을 만난다. 가은천 조령천이 영강과 만나 이룬 층암절벽이 선사하는 절경은 과히 경상북도 제1경이라 부를만하다.

 

고속도로가 뚫려 한적해진 진남교반 옛 국도변 사이로 차박 행렬이 즐비하다. 자전거 여행은 이제부터 본격적이다. 진남교반을 둘러싸고 있는 '고모산성(姑母山城)' 을 오른다. 한양가던 영남대로 옛길의 중심에 있다. 해발 230m의 고모산 정상에 자리잡은 성곽이다. 약1.6Km에 걸쳐 펼쳐진 성벽의 높이가 20m에 이른다. 자전거 여행은 일반 여행과는 반대로 움직인다. 진남휴게소를 빠져나와 고모산성을 뒷길로 오르는 것이다.

 

 

◆쟁여온 빛바랜 흔적만 남아

 

숨가프게 꿀떡고개를 오르자 고목속에 자리한 마을 성황당이 나온다. 이내, 짜잔하고 고모산성의 본채가 위용을 과시한다. 다들 환호성을 내지른다. 산성위로 낑낑대며 오르자 진남교반의 허리를 감아 도는 물줄기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성벽을 따라가니 '토끼비리 가는길' 푯말이 나타난다. 후백제 왕건이 견훤에 쫓겨서 막다른길에 이르자 토끼가 나타나서 인도한 길이라는 전설이 재미나게 남아있는 곳이다.

 

약 2Km에 이르는 바위 절벽위 잔도이다. 쓰릴 만점이다. 낭뜨러지 같은 길아래로 커다란 물길이 내내 보인다. 잔도위의 쫄깃함이 그만이다. 이 험준한 산길을 뚫고 한양 과거길에 올랐다는 옛적 유생들의 의기를 느낀다. 여운을 남긴채, 갈길이 아직도 한참이라 중도에서 회귀한다. 새콤달콤한 오미자를 테마로 한 오미자터널 방향으로 내려간다. 고모산성, 진남교반, 토끼비리 그 아래 오미자 체험관으로 이어지는 얘기거리의 보따리는 쉴틈이 없다.

 

또 다른 재미를 찾아서 달린다. 낙동강 길을 뒤로하고 영강에서 갈라진 조령천을 건넌다. 경관은 완연히 달라진다. 강건너 다소 요란스러웠던 풍광과는 달리 사뭇 시골스럽다. 그것도 잠시, 이내 칙칙폭폭 대는 추억음이 들린다. 바로, 레트로(retro) 냄새 물씬한 레일바이크다. 우리나라의 레일바이크의 효시다. '진남역''구랑리역' 폐역에서 출발하여 발로 휘저어가는 꼬마열차는 문경의 인기많은 즐길거리다.

 

 

 

자전거도 레일바이크의 장단을 맞추며 서서히 나아간다. 얼마가지 않아 간이역 '가은역'에 당도한다. 1956년 '은성역', 1959년 '가은역'으로 명명되어 오랜 세월동안 문경의 역사를 차곡차곡 쟁여온 빛바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간이역 가은역' 카페의 커피 한모금은 또 다른 낭만이다. 약 1킬로 남짓 떨어진 곳에 가은 영화세트장, 석탄박물관등의 테마를 엮은 에코랄라가 2018년에 자리잡았다. 문경 관광이 더욱 푸짐해졌다. 자전거는 에코랄라 앞에서 두손을 흔들며 지나간다.

 

◆선유동 계곡과 봉암사

 

이제 약60여Km를 달려온 자전거는 막바지를 향해 간다. 문경의 또 다른 자랑 '선유동계곡' '용추계곡' 이다. 내심 걱정했다. 지금까지 놀멍쉬멍 달려왔는데 막바지에 센 오르막이 있지 않을까? 왠걸, 기우였다. 평균 5~6% 정도의 완만한 업힐이다. 약20여분 달렸을까. 선유동 계곡의 이정표가 보인다. 선유계곡은 9곡 옥석대부터 1곡 옥하대까지 약1.7Km에 걸쳐 펼쳐진다.

 

하지만, 자전거는 9곡 초입에서 계곡물에 손끝만 담그고 돌아선다. 진입 불가다. 그래도, 문경을 대표하는 계곡길을 찍었으니 만족한다. 이제 오늘의 피날레인 희양산 '봉암사(鳳巖寺)'를 향한다. 봉암사 가는길은 착하고 점쟎다. 예상과는 달리 길이 험준하지도 않고 그저 얕은 계곡을 따라서 사찰로 이어진다. 879년 창건되었다는 봉암사는 스님들의 동안거 하안거등 수행도량으로 유명하다.

 

1년에 딱 한번 초파일에만 산중의 문을 개방한다. 사찰내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워 일주문 앞에서 인증샷이라도 찍으려다 초입의 스님에게 애먼 꾸지람만 잔뜩 들었다. 그래도 미소가 나오고 뿌듯하다. 문경 자전거길에 시가 더해져 풍성해진 탓이다. 매년, 문경을 또 달려야 하는 이유는 보다 확연해졌다.

 

이제 자전거는 삼백의 보물 상주로 간다.

 

글·사진 김동영 여행스케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