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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강원의 혈관 국도를 살리자]바비큐파티 즐길 수 있는 휴게소 들어보셨나요?

(16·完) 횡성 시루봉 휴게소

 

 

정수인 소장 아버지 돕기 위해 귀농
농장서 퀴노아 먹여 직접 기른 돼지
정육점·전문 식당 등 운영하며 판매

돼지고기 전 부위·돈가스 등 선보여
방문객들 바비큐세트 예약 구입 시
뒤뜰 바비큐장서 구워먹을 수 있어


차를 타고 이동을 하다 보면 급하게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출출할 때, 몸이 찌뿌둥할 때를 겪는다. 그럴 때 휴게소만큼 고마운 존재도 없다. 운전에 몰두하다가 잠시나마 쉬었다 갈 수 있는 장소.

군사분계선에 막힌 철원부터 화천, 춘천, 홍천, 횡성을 지나 원주까지 이어지는 국도 5호선에도 그런 곳이 있다. 국도 교통량이 줄어들면서 문을 닫는 국도변 휴게소가 늘어나고 있지만 오며 가며 들르는 이들 외에도 이곳만을 방문하러 오는 고객이 늘고 있다는 곳. 횡성 공근면 시루봉 휴게소다.

`돼지'에서 특별함을 찾을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올가을, 시루봉 휴게소를 찾았다. 외관부터 세련됐다. 왼쪽 동은 `퀸즈포크 전문판매장 POKR STATION'이라는 정육점이 있었고 `농부가 차린 식탁 FARMERS' TABLE'식당이 있었다. 오른쪽 동에는 `깨끗한 화장실'이라는 글씨와 편의점, 카페가 자리했다.

젊은 휴게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정수인(40) 소장은 도시에서 일하다 횡성에서 돼지농장을 하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귀농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돼지농장은 이제 정 소장의 언니인 정수정씨가 맡았다. 휴게소에서 200~300m 떨어진 곳에서 7,500~8,000두 규모로 운영 중이다. 시루봉 휴게소의 특별한 점은 이 돼지농장에서 퀴노아를 먹여 길러낸 돼지고기를 팔고 그 돼지로 요리를 한다는 점이었다.

정수인 소장은 “이전에 휴게소를 운영하시던 노부부는 작은 구멍가게처럼 물건을 팔고 계셨다. 힘에 부친다고 하셨고, 농장 진입로를 위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2019년 휴게소를 사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도의 교통량이 줄어들면서 쇠락해 가는 중이긴 했지만 시루봉 휴게소는 국도 5호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곳이었다. 휴게소 운영을 시작하기 전 한 달 정도 문을 닫았는데 이용객들의 원성이 자자했단다. 30년간 한자리를 지켜 온 곳이다 보니 으레 문을 열었을 것이라고 여긴 운전자들이 닫힌 휴게소를 보며 당황했고, 곳곳에 쓰레기와 배설물(?)을 버려 빠르게 황폐화됐었다고.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정 소장은 그때부터 휴게소를 제대로 운영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가족들은 돼지를 키워 왔지만 소매를 해본 적은 없었다. 정 소장은 몸으로 부딪히며 카페, 편의점 문을 하나하나 열었다. 퀴노아를 먹고 자란 돼지고기를 `퀸즈포크'로 브랜딩하고 돼지고기 전 부위와 함께 퀸즈포크숙성돈가스, 생돈 김치찌개, 퀸즈포크 불고기 등을 선보였다. 돼지구이 식당은 아니지만 바비큐세트를 예약해서 구입하면 휴게소 뒤뜰에 마련된 셀프 바비큐장에서 구워먹을 수 있다.

정 소장은 “휴게소에서 돼지고기를 사간다는 것이 신기하기 때문인지 점차 입소문이 났다. 혼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택배 주문이 밀려 들어와 밤새 물량을 포장하던 때도 있었는데 시행착오를 겪으며 점차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휴게소는 전국 각지에서뿐 아니라 인근 주민들도 자주 찾는 곳이 됐다. 이날 주민들은 휴게소에서 돼지고기를 사가기도 하고, 담소를 나누는 사랑방의 역할로도 활용하는 모습이었다.

시루봉 휴게소는 철원에서 시작한 국도 5호선이 춘천, 홍천을 거쳐 횡성으로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만난 휴식처다. 이날 취재진은 홍천 방향으로 운전하면서 휴게소로 진입하는 길을 찾기 힘들었다. 안내판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도로 사람들을 유입하기 위해선 안내판 설치, 국도 우선 내비게이션 등 세심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도 곳곳에서 만난 풍경들은 어쩌면 조금은 느려 보였다. 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사연들은 이 길을 다니며 살아온 선조들의 생활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 느리게 가는 길, 국도는 우리의 미래를 바라보는 터전이며 강원의 미래를 설계하는 시작점이다.

횡성=이현정기자 / 편집=홍예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