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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박미영의 '코로나 끝나면 가고 싶은 그 곳'] 해리 포터 스튜디오

 

20년 전 나는 대구세계문학제를 기획했다. 알렉산드로 솔제니친과 움베르토 에코, 밀란 쿤데라, 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해리 포터를 쓴 조앤 롤링을 초청해 문학축제를 대구에서 펼치려고 했다. 고(故) 기형도 시인이 산문에서 밝힌 것처럼 대통령을 몇 명 배출하고 문학계 거물들이 포진해 무섭다는 대구를 '세계문학의 성지'로 만들고 싶었다. 결론을 미리 밝히자면 '세계문학제를 위한 한국문학인대회'를 단발 개최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그동안 솔제니친과 에코는 유명을 달리했고, 쿤데라는 고령이며, 하루키는 은둔하다시피 하며 롤링은 왕족을 만나는 것만큼 어려워졌다. 하지만 언젠가 나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세계적인 작가들을 대구로 불러와 문학축제를 열고 싶다. 흥부와 놀부, 홍길동, 도깨비만큼이나 우리에게 친숙해진 해리 포터와 헤르미온느, 도비를 연오랑과 세오녀, 비형랑과 함께 대구, 경북의 큰 거리를 행진하며 까르륵 즐겁게 웃는 소리를 듣고 싶은 것이다. 세계 곳곳의 해리 포터 스튜디오는 나름 그런 심정을 품고 찾아다녔다.

 

 

◆런던 해리 포터 스튜디오

 

'진정한 용기는 쉬운 일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해리 포터의 문장이다. 마법학교 호그와트의 교장 덤불도어가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자' 볼드모트에게 혼신의 힘을 다해 대항하는 살아남은 아이(The boy who lived) 해리 포터에게 이 말을 했다. 나는 이 말에 감명을 받아 어린이 인문학강좌에 철학과목을 추가하기도 했다. '해리 포터로 철학하기'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로 철학하기', 이 과목들은 공전의 히트를 쳤고 나는 강사들과 책을 만들자는 제안도 받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에딘버러에서 성을 하나 사 해리 포터 후속작을 집필 중이라는 조앤 롤링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20세기 최고의 판타지를 만든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런던에서 스튜디오를 본 뒤 곧장 에딘버러 당신의 성 앞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잠시 시간을 내 주실 수 있을런지요. 이메일은 읽혔으나 답장은 없었다.

 

런던 외곽 북서쪽 왓포드 정션은 해리 포터 특수를 누리고 있었다. 스튜디오는 영화 제작사 워너 브러더스가 영국인 배우, 영국 촬영, 스크립트 전체 검토를 내세운 롤링의 조건을 받아들여 실제로 촬영한 현장과 특수분장 소품은 물론 호그와트와 다이애건 앨리 등 영화 속 건물들의 정교한 미니어처로 생생한 리얼리티를 느낄 수 있게 조성되어 있었다.

 

 

먼저 50명 선착순으로 입장하면 드라마틱한 음악과 함께 마법사 복장을 한 해설사가 안내를 시작한다. 소설과 영화제작 히스토리 영상을 섞어 10분쯤 영어로 진행하는데 간간이 웃음이 터져 나온다. 영어 농담이 익숙하지 않아 따라 웃지는 못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그리핀토르나 슬레데린 복장을 한 아이들도 많다. 그보다 진지한 표정의 청년들은 또 훨씬 많다. 독자층이 두텁다는 건 역시 정설인 모양이다. 이윽고 호그와트의 육중한 정문이 열리고 다이닝 홀이 마법처럼 눈 앞에 펼쳐진다.

 

허플퍼프와 레이븐 클로우 복장도 전시된 연회장은 멋지지만 좀 좁은데, 실제 영화에서는 더 넓은 옥스퍼드의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10분가량 지나면 다음 관람객을 위해 그곳을 나와야 한다. 다음 관객을 위해서라는데 휴일에는 그 줄이 어마어마하다고. 부모를 잃은 고아 해리는 야박하기 짝이 없는 머글(인간) 이모 내외에게 맡겨지는데 호그와트에 가기 전까지 학대를 당한다. 해리가 천덕꾸러기로 구박받으며 자란 이모네 집 그 계단 아래 방앞엔 관람객 줄이 끊이질 않아 결국 포기하고 호그와트 기숙사 해리의 침실과 덤불도어 교장실, 스네이프교수의 마법약 실험실로 간다.

 

 

손에 땀을 쥐게 하던 퀴디치 경기와 용의 심장을 넣었다는 딱총나무 지팡이, 날아다니는 빗자루에 몰려든 인파를 보니 문화와 예술이 한 나라를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BTS 보유국 국민이 되어보니 알 것도 같다. 볼드모트와 추종자들의 테이블을 지나니 킹스 크로스역 9와 3/4 플랫폼에 호그와트행 급행열차가 서 있다. 모두 열차에 올라타 창밖을 보거나 길게 늘어서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그날 달아나는 개구리 초콜릿과 귀지 맛이 나는 젤리를 파는 역무원이 지나갔던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버터 맥주(Potter Butterscotch Beer)는 해그리드의 오두막이 있는 금지된 숲을 형상화한 듯한 야외 펍에서 판다. 이 또한 줄이 너무 길어 맛을 보진 못했다. 호그와트의 나무다리, 해리 포터가 태어난 고드릭골짜기의 집, 나이트 버스, 플라잉 카, 거대한 체스 말들을 지나 다이에건 앨리로 들어간다. 마법사들의 숙소와 그린고트 은행, 프레드와 조지의 장난감 가게도 지나며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린다. 리키 콜드런이란 펍에서 지팡이로 벽돌을 두들기면 나타나던 곳이다. 물론 머글들은 드나들지 못 하지만 이곳에 들어서면 모두 마법사가 된 것이니 무사통과다.

 

호그와트와 주변의 벼랑 그리고 스네이프가 덤불도어 교장을 밀쳐 떨어뜨린 천문대까지 모두 정교하게 제작된 미니어처 동산에는 수시로 조명이 바뀐다. 도대체 얼마 만인가. 이렇게 책과 상상과 영화와 현실이 혼재된 공간에서 즐거웠던 적이, 내 기억엔 없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LA, 오사카

 

익스펙토 페트로눔(Expecto Patronum), 해리 포터가 '죽음을 먹는 자들'을 물리칠 때 쓰는 마법 주문이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불러 와 모든 나쁨과 불행을 물리치는 주문이다. 물체를 날아오르게 하는 주문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Wingardium Leviosa)를 비롯해 마법사의 주문을 알파벳별로 정리해 스터디를 하는 그룹도 본 적이 있다. 지팡이끝에 불을 만들어 주위를 밝게 해주는 주문 루모스(Lumos)처럼 참으로 행복하게 보이기도 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와 일본 오사카의 유니버설 스튜디오(Universal Studios)를 들렀을 때의 내 마음도 그랬다.

 

많은 영화를 테마로 한 헐리우드와 오사카의 스튜디오에서 특히 해리 포터관을 꼼꼼히 둘러봤는데 올리밴더의 완드(마법 지팡이) 체험 교실 외엔 런던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물론 대부분 비슷하거나 많이 생략되었다고 해야 하나, 원작 촬영지인 런던보다는 구성이 다소 치밀하진 않았다. 가보지 않은 싱가폴의 그곳도 거의 일본과 비슷하다고 하고, 중국 베이징엔 최근에 개장했다고 하나 내가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은 런던이거나 플로리다 올랜드에 새롭게 재해석하여 확대했다는 해리 포터 스튜디오다. 젊은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늘 나오는 이야기가 대구 도심에 트램이 다니고 올랜드를 뛰어넘는 해리 포터 스튜디오가 생긴다면 시쳇말로 '대박'이 날 거라는 말이다. 나도 동의한다. 코로나가 끝난 어느 해, 대구에 조앤 롤링이 오고 해리 포터 축제를 열어본다면, 상상만 해도 즐겁다.

 

 

박미영(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