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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유럽 인문학 기행] 리스본 트램, 꼬불꼬불 골목길 이어주는 여행의 추억

〔유럽인문학기행-포르투갈〕 리스본 트램

 

 

리스본에 가면 반드시 체험해야 하는 교통수단이 있다. 리스본을 고풍스럽고 이색적인 도시로 꾸미는 데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하는 트램이다.

 

버스, 지하철, 트램, 택시, 푸니쿨라 등 리스본의 대중교통 시스템은 매우 뛰어나다. 도시 중심부에서부터 구석구석까지 아주 치밀하게 연결하다. 하지만 이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대중교통은 역시 트램이다.

 

리스본에서 트램이 처음 운행한 것은 1873년 11월 17일이었다. 올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벌써 148년이나 된 셈이다. 처음에는 말이 객차를 끌었다. 1901년 들어 첫 전기 트램이 상업운행을 시작했다. 1년 만에 리스본의 모든 트램은 전기 객차로 바뀌었다.

 

언덕으로 이뤄진 리스본의 골목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트램은 성당, 기념물과 함께 리스본의 훌륭한 문화적 유산이다. 그래서 매일 수많은 관광객이 트램에 몰려든다. 트램을 타고 다니며 리스본을 돌아다니는 것은 가장 아름답고 재미있는 여행의 추억이 된다.

 

 

 

전성기에는 리스본에 27개 트램 노선이 있었다고 하다. 지금은 5개의 트램 노선에서 객차 58대가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이중 40대는 아주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객차를 자랑한다. 다섯 개의 노선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노선은 28번과 15번이다.

 

28번 트램은 루아 다 팔마, 상조르주 성, 리스본대성당을 거쳐 바이로 알토까지 이어진다. 총 길이 10km 구간은 정말 로맨틱하고 그림 같은 환상 속의 공간이다. 풍경이 너무 고색창연하고 이국적이어서 매일 관광객 수천 명이 이 트램을 이용한다.

 

28번 노선이 시작하는 마르팅 모니즈 정류장 앞에는 늘 수십 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다들 리스본 여행을 온 외국 관광객들이다. 대부분 중간에 내리지 않고 종점까지 가려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앉아서 가려고 빈자리가 없는 객차에 오르지 않고 다음 트램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손님들이 가득 찬 가운데 트램 28번이 출발한다. 모두 얼굴에 즐거움과 기대가 가득하다. 28번 트램은 나무로 만든 객차다. 내부도 모두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나무로 된 창을 보니 오래된 호텔 창문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 덕분에 트램을 타고 계속 달리다 보면 마치 다른 시대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트램 의자는 매우 좁다. 1인승 의자에 둘이 앉으면 엉덩이가 삐져나올 정도다.

좁은 골목으로 트램이 들어간다. 뒤에는 차들이 따라온다. 트램이 느리게 달리지만 누구도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급할 게 없기도 하거니와 경적을 울려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맞은편에 28번 트램이 서 있다. 골목이 좁아 두 대가 동시에 지나가지 못하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한쪽 트램이 먼저 지나가자 그제야 맞은편 트램이 지나간다.


 

 

골목 벽에는 온갖 그래피티가 가득하다. 어떤 건물 벽은 얼마나 낡았는지 곧 허물어질 것 같은 정도이다. 그런데 다 부서진 것 같은 건물에서 묘한 향수랄까, 아련한 그리움이랄까? 어쨌든 그런 감정이 느껴진다. 이것이 리스본 여행의 특별한 맛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트램 운전수는 계속해서 경적을 울린다. 아무 생각 없이 골목길을 걷는 행인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이다. 트램이 다가오는 걸 알면서도 느릿느릿 골목길을 건너는 사람들도 있다. 운전수는 그래도 아무 말 없이 그냥 운전만 한다.


 

 

빈티지한 노란색 객차를 단 트램 28번은 도시 중심부 골목길을 꼬불꼬불 달린다. 때로는 약간 넓은 길로 나왔다가 잠시 후에는 다시 좁은 골목을 지난다. 얼마나 좁은지 트램이 지나가면 골목길에는 사람 하나가 서기도 힘들 정도다. 트램은 속력을 최대한 줄여 사람에게 부딪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트램 백미러와 사람의 빰 사이에는 겨우 주먹 하나 정도의 공간밖에 없다. 그래도 용케 사람을 치지는 않는다.

 

타고 내리는 사람들도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리스본에 사는 현지인들이다. 트램은 관광 상품이기도 하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실생활에 유용한 현실 교통수단이다. 갑자기 트램 앞쪽이 시끄럽다. 두 리스본 아주머니가 싸운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외국인들 때문에 복잡해서 트램을 탈 수가 없어. 외국인 관광객들은 트램에 못 타게 하거나, 리스본에 못 오게 해야 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이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모른다는 거야?”

리스본 여행을 온 나그네들을 욕하던 아주머니는 도중에 내려버린다. 화가 풀리지 않았던지 내려서도 소리를 지르고 있다.


 

 

 

바로 앞에 28번 트램이 한 대 가고 있다. 길이 막히는 바람에 운행이 지연된 모양이다. 트램 두 대가 앞뒤로 나란히 달린다. 이색적인 장면이다.

 

28번 트램을 타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지붕이 뚫린 투어버스가 가지고 있고, 또 가지고 있지 못한 모든 장점을 다 즐기는 것이다. 원하는 곳이 어디든 내리거나 탈 수 있고, 도로나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과 각종 건축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15번 노선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트램이다. 시 중심가와 벨렘지구를 연결하기 때문이다. 카이스 두 소드레 역에서 출발해 프라사 두 코메르시우(코메르시우 광장)까지 이어진다. 트램 15번은 그다지 낭만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대신 아주 유용하고 현대적이다. 하루 종일 손님들로 꽉 차 있다. 물론 대부분 관광객들이다. 이 트램을 탈 때는 항상 소지품에 주의해야 하다. 소매치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4월에는 23년 만에 24번 트램이 운행을 재개했다. 캄폴리드에서 루이지카몽이스 광장까지 4km를 연결하는 트램이다. 원래 24번 트램은 1901년 운행을 시작해 캄폴리드~호시우 역까지 달렸다고 하다. 그러다 캄폴리드에 주차장이 생기는 바람에 1995년 운행을 중단했다.

 

트램은 포르투갈어로 엘렉트리코스다. 그래서 트램 28번의 공식 이름은 엘렉트리코 28이다. 트램 표는 시내 전역의 매점에서 살 수 있다. 지하철역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24시간짜리 표를 사면 ‘돈 값’을 한다. 표는 특정 교통수단에만 쓰도록 제한돼 있지는 않다. 트램은 물론 버스, 지하철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빈 트램이 종점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건물 옆으로 누르스름한 가로등 아래에서 달리는 노란 트램의 모습은 정말 이국, 낯선 땅에 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외롭고 불안한 감정이 아니라, 정말 신기하고 짜릿하면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선한 느낌이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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