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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유럽 인문학 기행] 정어리만 귀 기울인 산투 안토니우의 안타까운 설교

[유럽 인문학 기행] 포르투갈 리스본 산투 안토니우 성당과 정어리 축제

해마다 6월 12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는 리스본 출신 성인(聖人)인 산투 안토니우를 기념하는 축제가 열린다. 그의 탄생일에 펼쳐지는 ‘정어리 축제’다. 이 기간에 리스본 여행을 가면 카페, 식당 등 거리 곳곳에서 정어리를 구워 팔거나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기독교 성인의 탄생일과 정어리는 무슨 관계가 있기에 정어리 축제를 여는 것일까?

 

 

■산투 안토니우의 고행

 

산투 안토니우는 리스본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페르난두 마르틴스 데 불로에스였다. 집안이 제법 부자였기 때문에 그는 어릴 때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산투 안토니우는 당시 수도였던 코임브라의 산타크루즈 수도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사제 서품을 받은 뒤에는 수도원에서 손님들을 접대하는 일을 맡았다. 그곳에는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수도사들이 자주 들렀다. 그는 수도사들의 간결하면서도 깔끔한 종교 생활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1220년 모로코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프란체스코 수도사 5명이 참수형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국왕 아퐁소 2세는 협상 끝에 가까스로 몸값을 치르고 수도사들의 시신을 고국으로 송환해 산타크루즈 수도원에 묻었다.

 

주검으로 돌아온 수도사들을 본 산투 안토니우는 더 이상 산타크루즈 수도원에 머물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수도원에서 편안한 잡무만 하면서 살 수는 없고, 격랑의 파도가 일렁이는 세상으로 나가야 하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산투 안토니우는 산타크루즈 수도원을 떠나 프란체스코 수도회에 가담했다. 그는 목숨을 잃은 수도사들을 대신해 선교 활동에 뛰어들려고 모로코로 건너갔다.

 

산투 안토니우는 그곳에서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는 바람에 귀국해서 치료를 받아야 할 처지가 됐다. 그는 할 수 없이 리스본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아쉬움이 적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산투 안토니우를 태운 배는 바다를 건너던 도중 태풍을 만나고 말았다. 며칠 동안 높은 파도에 시달린 배는 엉뚱하게 리스본에서 직선거리로 2000km 떨어진 이탈리아 시칠리아로 떠내려가고 말았다. 산투 안토니우는 이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포르투갈이나 모로코가 아니라 이탈리아에 오게 된 것은 다 하느님의 생각일 거야. 여기에서 신학 공부를 더 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도록 하자.’

 

산투 안토니우는 포르투갈로 돌아가지 않고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수도사 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다. 신도들 앞에서 설교를 하는 게 그의 주요 활동이었다.

 

그런데 산투 안토니우에게는 큰 고민이 있었다. 그가 설교를 할 때는 신도 참석률이 매우 저조했고, 설상가상으로 참석한 사람들마저 설교에 감명을 받기는커녕 귀조차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어리가 귀 기울인 설교

 

이탈리아에 리미니라는 도시가 있었다. 아드리아 해에 접한 작은 해안마을이었다. 산투 안토니우는 그곳에 설교를 하러 갔다가 틈을 내 바닷가에 산책을 하러 갔다. 이날도 사람들이 그의 설교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매우 의기소침한 상태였다.

 

‘내 설교를 아무도 듣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한단 말인가? 나는 수도사로서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이야기 아닌가!’

 

산투 안토니우는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날씨가 좋았던 덕분에 많은 사람이 곳곳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그런 모습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들에게 다가가 대화를 나누고 하느님의 말씀을 설명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때 산투 안토니우의 발밑으로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다가왔다. 자세히 보니 정어리였다. 그는 하소연하듯이 정어리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내 말을 알아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은 내 설교에 전혀 관심이 없어.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지. 내 직업이 수도사이고 소명이 설교인데, 사람들이 듣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존재이지 않겠니?”

 

산투 안토니우가 말을 마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정어리가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머리를 끄덕인 것이었다. 그는 화들짝 놀라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처음에는 잘못 봤거나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어리는 바다로 돌아가기는커녕 그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머리를 흔들거나 꼬리를 치며 장단을 맞추곤 했다.

 

정어리의 기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잠시 후에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바다로 돌아간 정어리가 잠시 후 더 많은 정어리를 몰고 돌아온 것이었다. 그들은 머리를 치켜든 채 산투 안토니우의 입을 쳐다보고 있었다.

 

 

산투 안토니우는 신기하기도 하고 신나기도 해서 정어리들을 대상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가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사이 바닷가 모래사장에 몰려든 정어리는 더 많아졌다. 처음에는 수십 마리였던 게 나중에는 수백~수천 마리로 불어났다. 해변에서 산책하던 많은 사람이 정어리의 기적을 목격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정어리들이 정말 저 수도사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단 말인가?”

 

마을로 돌아간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목격한 내용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본 그대로 이야기하다가 나중에는 살과 뼈를 덧붙여 과장해서 이야기했다. 모여든 물고기가 바다를 가득 메워 산투 안토니우가 그들의 등을 밟고 걸어 다닐 정도였다느니, 물고기들이 그의 설교에 감명을 받아 눈물을 흘렸다느니 하는 등의 내용이었다.

 

다음날 더 많은 사람이 바닷가로 몰려들었다. 산투 안토니우는 정말 정어리들을 상대로 설교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기적의 현장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렸다.

 

“아, 이건 기적이야! 하느님이 이루신 기적이야! 저 수도사는 하느님이 보낸 진짜 심부름꾼임에 틀림없어.”

 

다음날부터 산투 안토니우가 설교하는 교회에는 미어터질 정도로 신도가 모여들었다. 그날 이후 그의 설교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게 됐다. 덕분에 그는 당대 여러 설교자 중에서 최고의 설득력을 자랑하는 수도사가 될 수 있었다.

 

산투 안토니우는 고국 포르투갈로 돌아가지 않고 이탈리아에서 설교 활동에만 전념하다 1231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영향력을 잘 알고 있던 교황청은 이듬해 그를 성인으로 시성했다. 교회 역사상 세상을 떠난 지 1년 만에 시성된 사람은 산투 안토니우 뿐이라고 전해진다.



 

 

■포르투갈의 정어리 문화

 

포르투갈 사람들은 정어리를 정말 즐겨 먹는다. 어디에서나 손쉽게 정어리를 볼 수 있다. 산투 안토니우를 구한 정어리를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구운 정어리는 대개 감자와 함께 잘게 썬 빵에 얹혀 나온다. 사람들은 정어리를 뜯어먹으며 이렇게 말한다.

 

“산투 안토니우가 성경 구절을 설명하기 시작했을 때 물고기 배에서 손이 튀어나와 기도를 드릴 지경이었다고 하잖아!”

 

정어리 요리만이 아니다.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보면 곳곳에서 정어리 기념품을 많이 볼 수 있다. 자기로 구워낸 정어리 인형이 있는가 하면 정어리 배지, 자석도 있다.

 

‘정어리 축제’ 전날 저녁에는 미혼여성이 백지를 접어 밤새 물에 띄워놓는 풍습이 있다. 아침에 종이를 펼쳐보면 미래에 남편의 될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다고 한다. 물론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비슷하면서 다른 종류의 이야기도 있다. 미혼여성이 물을 가득 채운 채 입을 다물고 있을 때 가장 먼저 듣는 남자의 이름이 미래 남편의 이름이라고 한다.

 

정어리 축제 당일 리스본 시내에 있는 산투 안토니우 성당과 리스본 시청에서는 초대형 합동결혼식이 열리기도 한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이곳에서 결혼식을 치른 신부들은 차에 올라 리스본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인다.

 

지금까지 글에서 봤듯이 산투 안토니우는 정어리와 관련된 전설을 가진 성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정어리를 잡는 어부나 정어리의 수호성인인 것은 아니다.



 

 

 

산투 안토니우는 잃어버린 사람과 잃어버린 물건의 수호성인이다. 그가 헤어진 부부, 연인을 달래 재결합시켜 주었다는 전설 때문에 포르투갈에서는 결혼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기도 한다. 그는 또 돼지 치는 농부, 장애인, 보트 운전수, 우편배달부, 반려동물, 말, 노인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