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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그림 같은 풍경 속에 숨겨진 신비로운 이야기

(101) 답회·김광종 수로 주변 경관
화순리 답회는 2000년대까지
모내기 마친 후에 별포제 올려
황개창 물 떠다 치성 드리기도

관개수로 주변은 경관도 수려
도깨비 나온다는 도채비빌레
장군을 닮은 세 바위 장군석

기암괴석 골짜기인 암마긍골
폭포·래소·계단식 담장 백미

 

 

논이 귀했던 제주도에서는 대개 논농사에 필요한 물을 관리하는 사람을 ‘답하니’라 부른다. 또한, 논과 논들을 연결하는 물골에서 논으로 물이 흘러 들어가는 곳을 ‘물코’라 부른다. 물고랑의 흙으로 물코를 열기도 닫기도 하며 물의 양을 조절했다.

답하니는 모내기에서 수확까지 논을 관리하고 물을 조절하는 일과 논에 우마가 다니는 것을 막는 일을 담당했다. 답하니의 품삯으로는 벼를 주기도 했는데, 이를 ‘켓곡식’이라 했다.

▲답회 후손들과의 면담

지난 6월, 안덕주민자치위원회 양재현 위원장의 소개로 답회의 전 회장인 이광언(1939년생)님과 전 재무·총무인 고완수(1945년생) 부부와 면담을 할 기회가 있었다.

이광언씨는 1927년부터 기록된 답회 회칙과 회장단 명단 등, 여러 장부를 간직하고 있었다. 답회 회칙에는 수감(水監:물감독관)과 역원(役員:노동자), 수동수율(水洞修律:물웅덩이 수리공 규칙)의 역할 등이 제시되고 있었다.

1830년대 김광종은 지금의 17㏊(5만여 평)의 논밭보다 더 많은 논을 개척하려 했으나, 화순리 서쪽 지경은 조상의 혈과 정기가 전해지는 곳이라 하여 더이상 확장할 수 없었다고 전한다.

고완수 부부는 30년 동안이나 별포제라 불리어온, 도채비빌레에서 행해져 온 제사 준비를 위한 음식 등을 준비하였다.

화순리 답회에서는 모내기를 마친 후 좋은 날을 택해 한밤중 별이 빛나는 자정에 대표자 10여 명이 도채비빌레 제당에 모여 전조(田祖)신과 토지신께 2000년대까지 제를 올렸다. 당시 황개창에서 잡은 은어 등 여러 민물고기를 제사음식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별포제 시에는 황개창의 ‘산받은물’로 치성을 드리곤 했는데, 수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도 산받은물의 수량은 변함없이 지금도 졸졸 흐르고 있다.

한라산 백록담 남쪽 아래에 있는 ‘산벌른내’를 연상케 하는 산받은물은 안덕계곡 황개천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면서 받는 물이라 하여 마을에서는 신성한 물로 여긴다.
 

 

 

▲김광종 관개수로 주변의 역사문화가 묻어나는 수려한 경관들

이곳에는 나랏님을 연상시키는 ‘임금내’라는 곳이 있다. 안덕계곡에서 한 줄기로 흘러오던 물줄기가 이곳에서 두 줄기로 나뉘는데, 이를 이곡내(二曲川)라 한다. 세월이 지나 변음이 되어 이곡내가 임금내로 불리는 이곳에서부터 ‘번내(犯川)’가 시작된다. 번내는 화순리의 옛 이름이다.

올해부터 불리는 도로명인 김광종로는 도막은소에서 도채비빌레 사이에 있는 도로의 이름이다.

도채비빌레에는 두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하나는 이곳 주변에 조성된 어린아이들 무덤 주변에서 비 오는 초저녁이나 늦은 밤이면 도깨비(도채비는 제주어임)가 나타난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다른 하나는 이곳에서 돌을 깨었다는 데서 유래한 돌채비빌레라는 설이다.

빌레는 너럭바위를 일컫는 제주어이다. ‘보(洑)막은소’라고도 불리는 ‘도막은소(沼)’는 논밭에 물을 대기 위하여 흐르는 물길을 막는 둑으로, 도채비빌레 계곡에 있는 저수지의 이름이다. ‘도’는 입구를 뜻하는 제주어이다.

경관이 일품인 이곳 계곡 주변에는 장군석이라 불리는 커다란 바위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도막은소 동북쪽 절벽에 있는 세 바위의 모습이 마치 장군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옛날 중국의 지관 호종단이 이곳에 있는 장군석의 지혈을 파괴했다는 설화가 이곳에서도 회자되고 있다. 사계리 용머리 바위의 전설처럼, 호종단의 도력으로 인물이 제주에서 출현하지 않는다는 속설은, ‘날개달린 아기장수’ 전설처럼 변방을 무력화하려는 데서 생긴 설화라 여겨진다.
 

 

 

▲월라봉의 비경 암마긍골

월라봉 동쪽에 숨어 있는 계곡을 ‘암마긍골(앞막은골)’이라 하고, 앞막은골을 흐르는 내를 ‘앞막은골내’라고 부른다.

앞막은골은 감산지경인 서근이목 아래에 위치한 명소인 래소에서 대평포구 사이의 골짜기를 이르는 지역으로, 앞에 있는 바다로 막힌 골짜기라는 의미를 지닌 제주어이다. 바다로 이어지는 해변에 산재한 높고 낮은 바위와 자갈들로 막혀 있다는 골짜기 입구를 행인들은 그냥 지나쳐가곤 한다. 예전에 염전 지대가 있던 이 주변에 별다른 표식이 없기 때문이고 비경이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산책하듯 시간의 여유를 갖고 앞막은골로 발길을 옮긴다면, 행운의 주인공처럼 사시사철 골짜기를 채우는 조용한 물소리와 새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조용하게 들려오는 영혼의 소리에 끌려 찾아간 앞막은골 도처에는 탐방객들이 보면 놀랄 만큼의 비경과 비사가 들어차 있다. 기암괴석으로 막혀 더이상 통로가 없다는 의미를 지닌 마궁굴 암자와 마궁굴 안쪽에 위치한 안마궁굴폭포와 래소, 그리고 계곡 남서 급경사 수림지역에 숨겨진 계단식 담장은 암마긍골의 백미이다.

수풀에 가려있던 계단식 농경지와 질로 이어지는 담장길을 찾아내어 드러내는 일은, 지역의 향토사는 물론 제주 역사문화를 제대로 밝히는 데도 일조를 하리라 기대된다.

제주일보 jjnews1945@jejusin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