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매개로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고자 하는 평창국제평화영화제가 오는 17일부터 개막한다. 3회를 맞은 올해 영화제에서는 오는 22일까지 6일간 평창 일원에서 26개국 78편이 상영된다.
특히 감자창고를 개조한 공간, 주민들의 생활체육공간으로 활용되는 대관령트레이닝센터 등 이색적인 대안 상영관이 운영돼 눈길을 끈다. 알펜시아 시네마와 평소 공연장으로 활용되는 알펜시아 콘서트홀도 상영관으로 조성된다. 이외에도 올림픽메달플라자, 지역 축제 공간인 어울마당, 월정사, 평창바위공원 등에서도 야외 상영이 펼쳐진다.
부대 프로그램으로는 안재훈 감독의 '연필로 명상하기' 전과 팀 프랑코의 'UNPERSON(언펄슨)' 사진전, 춘천마임축제 등이 참여하는 다채로운 야외 콘서트도 볼 수 있다. 평창 곳곳을 걷는 피프워크 ON 챌린지, 강원지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평화아카데미도 운영된다. 영화 프로그램은 개막작을 포함해 크게 '국제장편경쟁', '한국단편경쟁', '스펙트럼', '스펙트럼K', '평양시네마', 'POV:온 더 로드', '클로즈업:안재훈', '여름영화산책', '시네마틱 강원' 등 총 10개 섹션으로 나뉜다. 이 중 주목할 만한 작품 5편을 소개한다.
종교·갈등에 질문 던지는 개막작
■무녀도=17일 평창 올림픽메달플라자에 오를 개막작. 안재훈 감독의 장편 뮤지컬 애니메이션으로 한국에서 보기 드문 실험적인 작품이라 평가받는다.
'인간에게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갖가지 갈등의 상황이 깊어지는 요즘 더욱 볼만하다. 2020년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장편 경쟁-콩트르샹' 부문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다. 김형석 프로그래머는 개막작으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이 영화가 '갈등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점점 평화와 멀어지고 있는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을 넘어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북한·프랑스 합작 러브스토리
■모란봉=북한과 프랑스가 합작한 영화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작품이다. 올해 영화제 '평양시네마' 섹션에서 공개된다. 1958년 작으로 6·25전쟁 시기 개성을 배경으로 했다. 한 젊은 노동자와 판소리 음악가 딸의 러브스토리를 중심으로 전후 북한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장 클로드 보나르도 감독의 작품으로 한동안 프랑스와 북한 양국에서 모두 환영받지 못한 채 묻혀 있다가 재발굴돼 영화연구가와 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19일 오후 2시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상영 후 한상언 '한상언영화연구소' 대표와 이화진 영화학자가 참석한 가운데 '모란봉'에 대한 풍성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토크가 진행된다.
국민MC 아닌 '인간 송해' 만난다
■송해1927=세계 각국 다양한 화제작을 소개하는 '스펙트럼' 섹션에서 볼 수 있다. 윤재호 감독의 다큐멘터리로 최장수 국민MC 송해의 이야기를 다룬다.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웃음을 전하지만 사실은 외로웠던 희극인 송해의 인간적인 모습을 담았다.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예순의 나이에 시작한 전국노래자랑은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사회적으로 천대받았던 '딴따라'의 삶, 소중한 가족과 작별했던 삶의 여정이 뭉클하게 전개된다. 18일 평창 올림픽메달플라자에서 야외 상영되며 이날 오후 6시30분부터 송해가 윤 감독과 문성근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이사장, 방은진 집행위원장과 무대를 찾는다.
밀반입 할리우드 영화를 본 새터민
■더 판타스틱=최은영 평창국제평화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추천한 올해 영화제 기대작. 밀반입된 할리우드 영화를 본 경험을 들려주는 새터민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다. 핀란드의 마이야 블라필드 감독은 실험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현실은 어떻게 정의되고 우리는 무엇을 믿고 싶은지에 대해 질문한다. 북한 사람들은 몰래 본 서구 영화를 통해 바깥의 세상과 서구 국가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킨다. 또 서구사회의 현실적 삶에 대한 일종의 상상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최은영 프로그래머는 “통상적으로 '제3세계나 폐쇄적인 국가에 대한 서구 사회의 상상적 이미지'라는 잘 알려진 메커니즘을 거꾸로 뒤집어 보여준다”고 했다.
故 문익환 목사의 생각·삶을 좇다
■늦봄2020=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살다간 고(故) 문익환 목사의 삶을 조명했다. 현존하는 육성 자료로 문익환의 목소리를 복원, 그 시대의 생생함을 전달한다. 올해 개봉 예정작이다. 1918년 만주 북간도 독립운동가들의 이상촌에서 태어난 문 목사는 일제의 탄압 속에 어릴 적 벗 윤동주를 잃고 유신정권의 폭정으로 친구 장준하를 잃었다. 또 휴전선 회담을 직접 통역하고 분단된 조국에 손을 내밀며 한국 근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냈다.
박규현 감독은 “말은 나오는 순간 사라져버리지만, 글은 사상과 마음을 담아 박제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익환 목사의 생각과 삶을 따라가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현정기자 together@kw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