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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유럽 인문학 기행] 뮌헨 라트하우스 춤추는 인형의 비밀은?

[유럽 인문학 기행-독일] 뮌헨 글로켄슈필

독일 뮌헨 중심지인 마리엔 플라츠(마리엔 광장)에는 1년 내내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곳에 가면 고개를 들고 위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이 시선을 빼앗긴 것은 새 시청사인 노이에 라트하우스의 벽에 설치된 글로켄슈필이다.

 

1908년에 만들어진 글로켄슈필은 이른 바 편종이다. 음악을 연주하려고 종 여러 개를 설치해 만든 장치다. 음악이 이어지는 동안 인형들이 차례로 튀어나와 재미있는 춤을 추는 기계다.

 

글로켄슈필에서는 매일 11시와 정오, 오후 5시에 15분 동안 편종을 이용한 인형극이 진행된다. 종 43개와 실물 크기 인형 32개가 80m 높이의 탑 중간 부분에서 매일 춤을 춘다.

 

인형극은 3가지로 진행된다. 먼저 빌헬름 5세의 화려한 결혼식 이야기다. 이어 마상 창 대결이 진행되고, 새플러탄츠라는 ‘통 제조업자의 춤’이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황금 새가 나타나 세 번 짹짹거리면 쇼는 끝난다.

 

그런데 글로켄슈필에서 공연하는 세 인형극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거기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는 것일까.

 

 

■빌헬름 5세 세기의 결혼

 

마차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길고 가느다란 도로는 서쪽에서 동쪽을 향해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는 수많은 마차들이 일으키는 먼지에 뒤덮여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도대체 마차 행렬의 시작과 끝이 어디야? 마차가 몇 대나 되는 거야?”

 

“뮌헨 시청 공무원에게 물어보니 결혼식에 초대받은 사람이 무려 5000명이라고 하더군. 대공만 해도 1500명이라고 하니 행사에 참석하는 마차도 그 정도는 되지 않겠어?”

 

1568년 2월 뮌헨에서 바바리아 공작 빌헬름 5세와 ‘로레인의 레나타’의 결혼식이 열렸다. 당시로서는 유럽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세기의 결혼식이었다.

 

레나타는 로레인 공작 프랑수아 1세와 덴마크의 공주 크리스티나의 딸이었다. 어릴 때부터 유럽 귀족 가문의 자제들은 물론 여러 왕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정도로 빼어난 미인이었다.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는 청혼 편지가 물밀 듯이 밀려올 정도였다.

 

레나타의 부모는 처음에는 프랑스 북부 오렌지 공국의 지도자인 빌렘 반 오란제와 딸을 결혼시키려 했다. 하지만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2세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결혼을 반대하는 바람에 없었던 일이 됐다.

 

나중에는 덴마크의 프레데릭 2세 국왕과 혼담이 오갔지만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결혼은 무산되고 말았다. 스웨덴 국왕과 결혼 이야기가 나왔을 때에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페르난도 1세가 반대하는 바람에 허탕을 쳤다.

 

결혼이 미뤄지는 사이 레나타의 나이는 스물네 살이 되고 말았다. 당시 미혼여성으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였다.

 

결국 레나타의 부모는 딸을 당시 스무 살이던 바바리아 공국의 빌헬름 5세와 결혼시키기로 했다. 둘은 외가 쪽으로 먼 친척이었다. 빌헬름 2세는 페르난도 1세의 외손자였고, 레나타는 페르난도 1세 누나의 외손자였다.

 

 

양가 모두 유럽에서 큰소리를 치던 대단한 가문인 만큼 결혼식은 성대할 수밖에 없었다. 두 가문의 결혼식은 당시 유럽에서 최고라는 소리를 들었다. 뮌헨으로 마차 바퀴 소리가 끊이지 않고, 말발굽 소리가 하루 종일 이어진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결혼식은 열엿새 동안이나 이어졌다. 다양한 행사와 축제가 진행되고, 유럽에서는 보기 드문 공연이 펼쳐졌다. 하객들에게 대접하려고 소 500마리를 도축해야 할 정도였다. 닭과 돼지는 몇 마리를 잡아야 했는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결혼식 기간 중에 연주한 음악은 벨기에 출신의 르네상스 작곡가 올란드 데 라수사가 작곡했다. 당시 결혼식이 얼마나 화려하고 인상적이었던지 행사에 참가했던 이탈리아의 음악가, 시인, 소설가였던 마시모 트로이아노는 <다이알로기>라는 책에 결혼식 내용을 기록할 정도였다.

 

신부는 결혼식 당일 뮌헨 인근 다차우의 한 저택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기사 3500명의 호위를 받으며 결혼식장으로 마차를 몰았다.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는 크뢴들스테첸이라는 마상 창 대결이었다. 경기는 마리엔 플라츠 광장에서 벌어졌다. 치열한 토너먼트를 벌인 끝에 카스파르 노사트프라는 바바리아의 젊은이가 우승자가 됐다.

 

결승전은 카스파르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 청년 기사의 대결이었다. 결혼식에 참석한 뮌헨 사람들은 카스파르가 이기기를 기대했다.

 

둘은 치열하고 격렬하게 경기를 벌였다. 여러 차례 격돌했지만 좀체 승패가 가려지지 않았다. 가스파르는 마지막 격돌에서 겨우 프랑스 기사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자존심을 살린 뮌헨 사람들은 환호성을 올렸다. 이 때문에 글로켄스피엘의 인형 창 경기도 카스파르가 이기는 것으로 늘 마무리된다.

 


 

■역병 아픔 씻은 시민들의 춤

 

1517년 뮌헨에 끔찍한 전염병이 발생했다.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을 만큼 비극적인 전염병이었다.

 

다행히 날씨가 쌀쌀해진 덕분에 역병도 사라졌다. 죽는 사람은 더 이상 죽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들 너무 무서워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염병은 사라졌다. 비극은 이제 끝났다.”

 

전염병이 물러갔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게 된 사람은 맥주통 제조업자였다. 그는 혼자 마리엔 플라츠로 달려가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얼마나 기쁘고 즐거웠던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당시 맥주통 제조업자들이 모임을 가질 때마다 즐기던 ‘통 제조업자들의 춤’이었다. 그 춤을 새플러탄츠라고 불렀다.

 

맥주통 제조업자가 환호성을 질렀지만 다른 사람들은 좀체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전염병이 정말 사라졌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거리로 나가기를 다들 꺼려했다.

 

혼자 춤을 추는 게 지겨웠던 맥주통 제조업자는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소리를 질렀다.

 

“정말이에요. 전염병은 정말 사라졌다고요.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병균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어요? 다들 나오세요. 악몽에서 벗어난 기쁨을 함께 누려요. 마리엔 플라츠에 모여서 춤을 추어요. 새플러탄츠를 가르쳐 드릴게요. 저와 함께 밤새도록 춤을 즐겨요.”

 

뮌헨 사람들은 그제야 문을 열고 하나둘씩 마리엔 플라츠로 모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창문을 조금 열고 밖을 내다보면서 한참이나 머뭇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도 다른 사람들이 마리엔 플라츠로 나가는 모습을 보고는 두리번거리면서 광장에 모였다. 그날 광장에서는 뮌헨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 즐거운 춤 잔치를 벌였다.

 

 

 

시민들이 마리엔 플라츠에 모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바바리아 공작 빌헬름 4세도 광장으로 달려갔다. 빌헬름 5세의 할아버지인 그는 시민들이 즐겁게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껄껄 웃었다. 그는 곁에 서 있던 신하에게 지시를 내렸다.

 

“전염병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고통, 그리고 긴 고통에서 벗어난 주민들의 즐거움을 영원히 잊지 않아야 한다. 앞으로 7년마다 통 새플러탄츠 축제를 열도록 하라.”

 

이때부터 7년에 한 번씩 새플러탄츠 축제가 펼쳐졌다. 최근에는 2012년와 2019년에 행사가 열렸다. 빌헬름 4세가 왜 축제를 7년마다 열게 했는지 이유는 불투명하다. 전염병이 평균적으로 7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추측만 나올 뿐이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