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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시간이 만들어낸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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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고구마·산방산

알맞은 기후 등 최적의 재배 조건
통신정사 조엄 쓰시마서 들여와
구황작물로 효자 노릇 ‘톡톡히’

백록담과 연계된 설화 전해져
빼어난 경관에 감탄사가 절로
자연철학·자연미 담긴 영주10경

 

 

▲가파도는 제주도 고구마의 원산지

제주도는 기후와 흙이 고구마 재배에 알맞아 마을마다 고구마를 재료로 하는 전분공장들이 가동됐다. 제주도에서도 가장 많이 고구마를 생산했던 곳은 대정읍이다.

대정읍 동일리 등 여러 곳에 주정공장 등 고구마와 관련한 창고 등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 고구마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1763년 일본통신정사인 예조참의 조엄이 일본 강호(동경)로 가던 중 쓰시마에서 고구마를 발견하고 조선으로 보낸 데서 기인한다.

조엄이 지은 기행문인 ‘해사일기’에 의하면 ‘대마도에는 감저라는 것이 있는 데 효자마라고도 하고 왜음으로 고귀위마라고도 한다. 이것을 구해 동래의 서민들에게 전한다. 이것이 모두 잘 자라서 우리나라에 퍼진다면 문익점의 목면처럼 백성들을 매우 이롭게 할 것이다. 동래에서 잘 자라면 제주도 및 그 밖의 여러 섬에도 전파시켰으면 좋겠다.’라 쓰여 있다.

제주에서는 1765년(영조 41)부터 고구마가 재배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 동래부 관원들은 조엄의 지시대로 묘포(苗圃)를 만들었다. 묘가 자란 후 다시 이식해 가을에 약간의 고구마를 수확하는 데 성공했고 그 종저 일부를 제주에 보냈다. 조엄은 귀국하는 1766년 다시 대마도에 들러 고구마 일부를 취종한 후, 종저를 제주도에 보내 재배하라고 했다. 기후와 물산이 대마도와 유사한 제주도에서 먼저 종식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여겼던 까닭이다. 그 후 조엄의 지시대로 종저 일부가 제주에 보내져 재배에 들어갔다.

이에 대해 조인영(조엄의 후손으로 헌종 때 영의정 지냄)이 쓴 ‘운석유고(雲石遺稿)’에 설명하길 제주에서는 고구마가 잘 번식돼 구황에 도움이 되었으므로 제주민들은 고구마가 조엄이 전해주었다는 의미로 조저(趙藷)라 호칭하면서 조엄의 은덕을 칭송했다 한다.

 

 

 

윤시동 제주목사 당시, 제주의 보리농사가 흉작이어서 굶주려 죽은 백성이 무려 6000여 명이었다. 이에 영조임금은 육지의 관곡 6000석을 제주의 굶주린 백성들에게 보내며, 굶어 죽은 백성들을 제사 지내도록 명했다.

하지만 당시의 기록에는 고구마가 등장하지 않는다. 비밀리에 고구마를 재배하고 전파해야 하는 국가적 상황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에는 관의 명령에 의한 시험재배로 비밀스러운 지역에서 재배한 것으로 보인다. 제주에서 고구마가 본격적으로 재배 전파된 것은 1884년 이후이다. 1883년(고종 20) 일본인 어채범죄조규가 성립된 이후 제주 연해에 출어하기 시작한 일본 어민들은 우도와 성산포는 물론 가파도에 정주하면서 입어(入漁)했다. 고구마를 식량으로 가져온 그들에게서 가파도 주민들은 고구마 종자를 얻었고 또 재배법도 그들로부터 전수받았다고 한다. 이렇듯 제주도에서는 우도와 가파도가 가장 먼저 고구마의 생산지가 되었다.

 

남아메리카 멕시코가 원산지인 고구마는 맛이 달고 부드러워 가뭄에 대비하는 구황식물로 애용됐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1663년 김여휘 등이 오키나와 류쿠에 표착해 껍질이 붉고 살이 희며 맛이 마와 같은 식품을 먹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1600년 경 중국을 걸쳐 오키나와로 전해진 고구마를 당시의 조선사람들은 오키나와에 표류해 처음 맛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접한 조엄은 구황작물인 고구마에 대한 재배상식까지도 익혀 해사일기에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일본에 자주 왕래한 인사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고려시대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져왔듯 조엄만이 구황식물인 고구마에 착안해 몰래 고구마 종자를 국내에 전파한 것에서 볼 때 조엄이 지닌 목민관으로서의 자세와 구세제민(救世濟民)의 정신을 엿보게 된다.

 

 

▲산방산과 영주십경

산방산은 해발 395m의 거대한 종모양의 용암으로 이루어진 오름이다. 전설에 따르면 한라산에서 동물들을 쫓던 사냥꾼이 쏜 화살에 맞은 옥황상제가 산봉우리를 뽑아 던져 버린 것이 산방산이 됐고 뽑힌 자리는 백록담이 됐다 한다.

산방산 중허리에는 산방굴사가 있는데 천장 암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산방산의 수호신인 산방덕이의 눈물이라 전한다. 산방굴사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해 많은 사람들이 산방산을 찾고 있다. 산방산 주변의 조면암은 제주 도처의 비석의 재료로 쓰여졌다. 천연기념물 제376호로 지정된 산방산은 또한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77호로 지정돼 있다. 다음은 제주목사 이익태의 지영록(知瀛錄)에서 산방산에 관련된 부분의 글이다.

“대정현의 동쪽 10리 거리에 외로운 산이 해변에 우뚝 솟아 있다. 전체가 하나의 돌로 돼 아주 기이하고 험하다. 앞면의 반허리에 한 개의 굴이 있어 자연히 석실을 이루어 마치 방안에 들어간 듯하다. 그 천정 바위 사이에서 물이 새어나와 방울방울 떨어지는데 통을 놓아두고 물방울을 하루 종일 받아 모으면 겨우 한 동이가 되는데 맛은 매우 맑고 상쾌하다. 전설에 따르면 아주 오랜 옛날 사냥꾼이 한라산에 올라가 활을 쏘아 하늘의 배 가까이 이르자 상제가 노해 주봉을 꺾어 여기에 옮겨 세웠다고 한다. 그 남쪽에 돌구멍이 있는 데 이름을 암문(暗門)이라 하며, 그 북쪽에 또 큰 구멍이 있는데 깊이를 잴 수 없다. 송악과 형제암이 앞바다에 점철(點綴)하고 용두연대가 머리를 내민다. 산머리에는 도기(道氣)가 사람들에게 배어들고 선풍(仙風)이 길을 인도한다….”

제주의 또 다른 이름으로 쓰이는 영주(瀛洲)는 신선들이 사는 물가라는 의미이다. 추사 김정희의 제자이기도 한 매계 이한우(이한진)는 제주도 경치 중에서도 빼어난 경관들을 지역적 특색과 자연의 생성이치를 반영해 영주10경으로 선정했다. 그가 10경을 선정한 이치가 매우 오묘하고 논리적이다. 해가 뜨고 지니(성산출일·사봉낙조) 사계절이 운행되고(영구춘화·정방하폭·귤림추색·녹담만설)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지니(영실기암·산방굴사) 동식물과 사람이 태어나더라(고수목마·산포조어).

자연철학과 제주의 자연미와 우주의 생성이치를 심오하게 담아낸 것이 영주10경이라니. 영주10경에 녹아 있는 제주선인들의 지혜가 놀랍고 자랑스럽다.

다음은 매계 이한우 선생의 한시(漢詩) 영주10경 중, 대정현 소속인 영실기암과 산방굴사의 시를 발췌하여 우리말과 함께 소개한 글이다.

제7경 영실기암(靈室奇岩)-撑天護地鍾靈氣(탱천호지종영기) : 하늘 움켜쥐고 땅을 지키는 기운 한데 모아 / 五百將軍鎭巨山(오백장군진거산) : 오백장군은 한라산을 지키고 있네

제8경 산방굴사(山房窟寺)-穹林哨壁洞天幽(궁림초벽동천유) : 숲 덮인 절벽에 그윽한 동굴 뚫어 / 古寺荒凉問幾秋(고사황량문기추) : 옛 절 허물어져 몇 해련가 황량하네

제주에서는 오래전부터 산방산의 법승인 혜일스님과 의녀 김만덕 그리고 어승마 노정을 탐라3기(三奇)라 칭해왔다. 혜일스님은 중국에서 법도를 닦아 고려 우왕 시절에 제주에 들어와 산방산에 절을 짓고 불법을 전파하다가 죽었다. 1840년 대정현에 유배됐던 추사 김정희는 김만덕의 후손인 김종주에게 은광연세(恩光衍世)라는 편액을 선물할 정도로 김만덕은 조선의 대학자들이 노래한 거상이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화신이다. 노정은 제주가 낳은 어승마의 이름이다. 어승생악에서 1797년(정조 21) 낳은 용종(龍種)을 제주목사 조명즙이 이를 임금에게 바치니, 말 이름을 노정이라 지었다.

다음은 고려시대 혜일 스님이 지은 ‘제주도(濟州島)’라는 한시를 소개한다.

梅塢方殘獵(매오방잔엽): 섣달이 저무는 매화꽃 동산에 / 霜枝忽發春(상지홀발춘): 서리 내린 가지마다 봄빛이 감도네 / 冷香惟可愛(냉향유가애): 싸늘한 향기 사랑할만한데 / 地僻少遊人(지벽소유인): 후미진 곳이라 찾는 이 적소.

매화꽃 동산에 봄빛이 감돌고 향기로운 동산인 제주도, 사랑할만 한 곳인데도 후미진 곳 변방에 있어 알려지지 않은 제주도의 비경을 읊은 시로 여겨진다.

산방굴사 하면 떠오르는 스님이 곧 혜일 스님이라 할 만큼 혜일스님은 지금의 산방굴사를 있게 한 고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고려 공민왕과 우왕 시절, 완도에 거주하던 혜일 스님이 제주에 온다. 그리고 제주 전역을 유랑하며 여러 편의 시를 남겨 시승(詩僧)으로도 불린다. 특히 산방법사로도 불린 혜일 스님이 자연굴사 안에 산방굴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제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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