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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타임머신 여행 '라떼는 말이야~']물폭탄 맞은 동강변 폐허로 변한 시가지 고달팠던 그해 여름

1972년 8월 영월 수해

 

 

영월 시가지 80% 물에 잠겨…3만여 주민 중 이재민 1만7천명
교통·통신·전기 끊겨…고사리손 학생들까지 나서 복구 도와
큰 재난 속 희망 잃지 않은 이유…역경 함께 극복한 이웃 덕분


강원도 기자들은 1년 동안 겪어야 하는 통과 의례(?)가 있다. 봄철은 강풍과 더불어 오는 대형산불, 여름·가을은 수해, 겨울은 폭설이다. 반복해서 일어나는 자연재해는 기자들을 단련시켜 4년 차 기자가 되면 스폿뉴스 취재 달인으로 성장한다.

과거 물관리가 전무했던 시절, 폭우는 인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재해였다. 1972년 8월 폭우는 3만여명의 영월군민 중 1만7,000여명을 수해민으로 만들었다. 생명과 집을 비롯한 자재도구는 불어난 동강이 휩쓸고 갔다. 신문이란 타임머신을 타고 그날 자연재해 속으로 들어간다.

아래는 강원일보 1972년 8월22일자 1면에 실린 기사다.

지난 18~19일 도내 전역에 내린 폭우는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내고 도시를 휩쓸어 처참한 모습을 만들었다. 특히 영월읍내는 전국에서도 제일 처참한 수마의 화를 당해 3만여명의 주민 중 1만7,000여명의 이재민을 냈으며 36시간동안 '하늘에서 동이로 물을 붓는 것'처럼 내린 폭우는 동강을 가로질러 함백선을 연결하는 동강철교와 청령포철교를 동강내면서 영월읍 영흥리, 하송리, 방절리 일대와 영월역 주변 덕포리 일대를 휩쓸었다.

영월화력발전소가 물에 잠겨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민들은 암흑의 바다 속에서 밤을 지새웠다. 이로 인해 영월을 비롯한 정선, 평창, 석항, 예미, 함백, 영동 등 일부 탄전지대는 영월화전에서 송전되는 모든 전력이 끊겼다.

양일간의 폭우로 동강의 수위는 시간당 최고 6m까지 불었다. 20일 상오 이재민들은 영월국민학교에 수용돼 구호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교통과 통신은 완전히 끊겼으며 정부 보관 양곡도 1만4,000여 가마니가 침수됐고 90가마니가 유실됐다. 또한 농협 보관 비료도 2만포가 침수돼 못쓰게 됐다.

18일 상오 10시부터 퍼붓기 시작한 폭우는 19일 밤 10시까지 36시간 동안 영월지방에 280.4㎜ 강우량을 보여 영월시가지의 80%가 물에 잠김으로써 인명피해 6명, 가옥침수 1,200여채, 영월화력발전소를 비롯한 군부대 등 8개 기관이 침수됐고 동강을 이은 철교 11개 구간이 끊기고 교각 8개가 부러지는 등 수억원대의 피해를 냈다.

18일 하오 4시에 이르러서는 동강물이 갑자기 불기 시작, 읍내를 가로지르던 오목천하구가 범람하기 시작, 이때부터 동강 상류에서 목재를 비롯한 각종 물품이 떠내려 오기 시작했다. 이어 하오 5시부터 오목천이 넘치면서 덕포를 비롯한 영월읍 중앙시장 부근의 동강천변의 물이 노한 듯 넘어서면서 덕포시장 1,300여채와 읍내 중앙시장, 덕포에 물이 밀려들어 왔다. 물은 계속 불어나면서 6시께는 이미 시장을 휩쓸었고 읍내는 상품을 비롯한 귀중집기를 꺼내 옮기려는 시민들의 아우성으로 아비규환을 이뤘다.

하오 7시께는 불어난 물이 동강철교를 넘어서면서 철교복판토막이 끊기기 시작, 마침내 철교는 11개 토막이 났다. 물은 10분마다 1m씩 불어나면서 시민들을 불안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는데 하오 8시께는 이미 시가지의 80%가 침수 이재민을 내고 1차 옮겼던 이재민들은 이삿짐 보따리를 다시 옮길 장소를 찾기에 갈팡질팡했고 애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사진 속의 영월은 폭탄을 맞은 듯 폐허다. 인파 대신 진흙이 가득 메운 시장 골목에서 고사리손들이 복구 작업에 여념이 없다. 전염병 예방을 위해 예방주사를 맞는 이재민과 소방차 앞에서 길게 줄을 서며 식수를 길어 가는 사람들 표정엔 넉넉함 묻어 있다.

시간이 흘러 그 시절이 그리운 건 가진 것이 없이도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됐기 때문인 듯하다. 큰 재난에도 희망을 잃지 않은 것은 역경을 함께 극복하는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흑백 사진 속 기록으로 남은 영월수해민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재난을 이겨냈다.

김남덕·오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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