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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기고] 2021년 희망 사사성어, 일사지악(一士之諤)

전호환/부산대 교수(전 총장, 동남권발전협의회 상임위원장)

 

매해 마지막 달인 12월에 발표되는 교수 선정 사자성어는 화제가 돼왔다. 지난 20년간 선정된 사자성어는 그해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촌철살인이었다.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미래방향을 제시했다. 국민을 시원하게 해 준 사이다 역할도 했다.

 

2015년 사자성어는 혼용무도(昏庸無道)였다.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의 실정으로 나라가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이다. 2016년에는 ‘임금은 배, 백성은 물’이라는 뜻을 가진 군주민수(君舟民水)가 선정됐다. 물은 배를 뜨게 하지만 엎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한 현실이 반영됐다. 2017년에는 파사현정(破邪顯正) 이었는데 촛불의 힘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게 ‘사악한 것을 부수고 바른 것을 하라’는 민의를 담았다. 이듬해인 2018년은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라는 뜻의 임중도원(任重道遠)이었다. 개혁은 중단 없이 추진돼야 하고 그 사명은 막중하니 잘하라는 의미도 있었다. 2019년에는 ‘목숨을 함께하는 새’라는 뜻인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제시했다. 상대를 죽이면 결국 함께 죽는다는 의미로 분열된 사회상을 반영했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렵고 힘들었다. 조국과 추미애 법무장관의 내로남불 식 언행은 지친 국민을 더 피곤하게 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라는 신조어 아시타비(我是他非)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된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은데(任重道遠) 소모적인 논쟁만 반복됐음(甲論乙駁)을 꼬집었다. 비슷한 뜻을 가진 방기곡경(旁岐曲逕)이 2009년의 사자성어였는데 아시타비(我是他非)를 다시 내세운 것은 역사는 반복될 수 있음이다. 방기곡경은 샛길과 굽은 길을 뜻한다. 바르고 정당한 방법이 아닌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하는 것을 비유할 때 쓴다. 조선 중기의 학자 율곡 이이는 ‘동호문답(東湖問答)’에서 “제왕이 사리사욕을 채우고 도학을 싫어하거나 직언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구태를 묵수하며 고식적으로 지내거나 외척과 측근을 지나치게 중시하고 망령되게 기도해 복을 구하면 소인배들이 그 틈을 타서 갖가지‘방기곡경’의 행태를 자행한다”고 지적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갈등과 반목은 늘 있어 왔다.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정치(政治)다. 바른 정치(正治)는 다름을 배척하지 않고 갈등을 바로잡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에서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수준 낮은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일”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방기곡경’을 경계한 것이다.

 

필자는 최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서해맹산’을 주제로 한 서예전을 열었다. ‘서해맹산’은 충무공의 진중시 한 구절인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에서 왔다. ‘바다에 서약하니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안다’는 뜻이다. 전쟁에 임하는 충무공의 구국 결의를 느낄 수 있다. 서예전은 코로나19와 정쟁의 광풍으로 신음하는 대한민국을 ‘서해맹산 정신’으로 이겨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방문객이 가장 선호한 작품은 일사지악(一士之諤)이었다. 사기(史記) 상군열전(商君列傳)의 ‘천인지낙낙 불여일사지악악(千人之諾諾 不如一士之諤諤)’이 원전이다. ‘예라고 아부하는 천 명의 말이 노라고 직언하는 한 명의 선비보다 못하다’라는 뜻이다.

 

이순신은 능력을 보고 사람을 썼다. 싸움을 하지 않고 이기는 전략도 썼다. 필사즉생(必生則死) 선공후사(先公後私)를 솔선수범했다. 백성들은 그저 ‘배 두드리고 땅 치며 노래하는 고복격양(鼓腹擊壤)’의 세상을 원한다. 2021년에는 방기곡경하는 가신(家臣)보다 일사지악하는 현신(賢臣)을 곁에 두라고 대통령에게 부탁하고 싶다.

 

전호환 부산대 교수(전 총장, 동남권발전협의회 상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