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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타임머신 여행 '라떼는 말이야~']그해 겨울 고성엔 '반공'이 울려 퍼졌다

1975년 北 간첩선 침투사건

 

 

최북단 현내면 대진리 앞바다
괴선박 폭풍우 속 유유히 남하
포위 20분만에 격침, 1명 생포

북괴 만행에 아들 잃은 여인은
오열 속에 몸부림치고…
한적하던 어촌은 애통·분노
아! 야만스러운 냉전시대여


남북 접경지역에서 살아온 강원도민이라면 간첩이란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 철책을 뚫고 내려온 간첩과의 교전, 동해안 어선 납북사건, 북 간첩선 출몰, 북 잠수함 침투사건 등 분단의 흔적이 남아 있는 강원도는 고스란히 역사에 남겨져 있다. 1975년 2월15일 고성군 앞바다에 간첩선이 나타났다. 이 사건은 2월17일자 강원일보 3면에 실려 있다. 당시 지면에 게재된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최북단인 고성군 현내면 대진리 앞바다에 북괴 무장간첩선 1척이 백주에 기습해 와 우리 해군함정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격침되고 1명이 생포돼 철통같은 동해안 경비태세의 만전을 또 한 번 과시했다.1975년 2월15일 하오 1시59분께 북방경계 한계선인 38도 37분선을 넘어 남으로 내려온 괴선박이 우리 공군 레이더망에 걸려들었다. 20노트의 속력으로 남하하고 있는 괴선박을 주시하라는 엄호가 각 경비정의 무선망을 통해 하달돼 주도면밀히 감시하던 끝에 59톤급(선체길이 15m, 높이 3m)의 하얀 철갑선인 북괴 무장간첩선은 대진 앞바다를 지나 거진항 입구까지 유유히 접근해 왔다. 때마침 이날 폭풍주의보가 발효 중이어서 우리 어선은 단 한 척도 출어하지 않은 파고 3m의 바다에서 괴선박임을 즉각 발견할 수 있었다. 2시5분께 우리 해군 57함이 200m 앞까지 접근해 정지명령을 내리자 북괴 간첩선은 갑자기 뱃머리를 북쪽으로 돌리면서 기습공격을 가하며 30노트의 전속력을 내어 지그재그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필사적인 추격전을 벌이던 57함은 육군과 공군에 지원을 요청, 합동 작전을 전개해 아군 해안포대와 공군기가 기총 소사를 퍼부으며 포격전을 개시, 20분 만인 이날 하오 2시15분에 제진리 앞 3마일 해상에서 해안포의 명중으로 격침시켰다. 배의 선미가 기울어지면서 격침되는 순간 북괴 승조원 4명이 필사적으로 탈출, 북으로 도주하는 것을 우리 해군 함정과 경찰경비정이 포위 자수를 권유하였으나 불응, 종적을 감춰 1시간 후 접근 수사한 결과 고무보트 안에는 1명의 북괴 무장공비가 실신한 채 늘어져 있어 무사히 생포했으나 3명은 물에 뛰어들었다가 익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용두(52·현내면 대진5리)씨를 비롯 200여 해안 주민은 북괴정이 우리 아군포에 맞아 검은 연기를 품으며 격침되는 순간, 서로 부둥켜안고 만세를 부르며 기쁨의 한호성과 눈물을 흘렸다면서 약탈한 북괴의 만행에 또 한 번 치를 떨었다. 이 순간 현내면 초도리 12반 박정순(47) 여인은 학교에서 돌아와 집 앞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던 막내아들 달용(11·대진국교 4년)군이 무장 간첩선이 난사한 흉탄에 복부를 맞고 쓰러져 숨진 것을 부둥켜안고 기절했는가 하면 5세 때부터 외할머니 슬하에서 자라온 같은 마을의 우두익(16·대진중 2년)군이 오른쪽 어깨에 관통상을 입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는 등 한적하던 어촌마을이 애통과 오열 속에 잠겨 몸부림쳤다.

영하의 날씨가 기승을 부린 1975년 2월21일 금요일 해안 주민들과 학생들이 학교 운동장에 모였다. 북괴의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는 현내면 부녀회, 대진국민학교 학생 등 수 백명이 반공이란 글씨를 쓴 머리띠를 한 채 북한의 침략 야욕을 성토했다.

'규탄하자 북괴만행 가다듬자 반공자세' 현수막 글씨는 당시 사회 분위기를 보여준다. 학교 주변의 야산에 자리 잡은 집 앞 울타리처럼 둘러선 사람들이 규탄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들은 추위로 곱은 손을 비비며 야만스러운 냉전시대를 힘들게 살아왔다.

김남덕·오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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