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에서 초·중·고교가 잇따라 폐교하면서 '지방소멸'이 현실화되고 있다. 폐교에 따른 청소년 부재로 미래를 짊어질 세대가 사라지고, 이에 따른 지방소멸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에 따르면 지난 1999년 49만4천593명이었던 경북의 학생 수는 올해 29만6천917명으로 40%가량 급감했다. 해마다 1만명씩 학생이 줄어든 셈이다. 같은 기간 경북에서만 353곳의 학교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폐교 여파가 본격화되지 않은 대구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올해 기준 학생 수가 28만8천291명으로 1999년(47만6천552명)보다 크게 줄었다. 매일신문 기획탐사팀은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두 번째로 폐교가 많은 경북 시·군을 찾아 폐교와 지방소멸의 현실을 취재했다. ◆잡초로 뒤덮인 폐교 지난 15일 오후 경북 군위군 화본리 옛 산성초교 건물은 곳곳에 금이 간 채 을씨년스럽게 방치돼 있었다. 한때 아이들이 뛰어놀던 운동장은 잡초로 뒤덮인 채 주차장으로 변했고, 공사 자재와 잡초에 엉망이 된 조회대에는 '1988년 9월 26일, 전교어린이회 부회장 아버지 최○○ 씨께서 세워주셨읍니다'라는 표식만 남아 쓸쓸함을 더했다. 학교 내부는 각종 공사 장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화되면서 일부 업종 자영업자들이 낭떠러지로 내몰리고 있다. 한 발짝만 더 밀리면 아득한 절벽으로 떨어질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한숨을 몰아쉬고 있다. 누가 이들의 손을 잡아줄 것인가? 매일신문 기획취재팀은 이들의 사연을 '내러티브 저널리즘'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기구한 운명의 50대 단란주점 사장 "언니들, 남한테 폐 끼치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어. 그럼에도 기구한 운명이 수년째 몇 번이나 나를 괴롭혀. 너무 억울해. 억울해서 못 살겠어…." 지난 25일 오후 6시. 손님이 끊겨 사실상 폐업한 단란주점에서 직장 동료 언니들과 맥주를 마셨다. 팔지도 못할 술, 이렇게라도 마셔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다. 단란주점 업주에서 청소 용역업체 직원으로 전업한 지 반 년째. 이젠 이 주점 곳곳이 지옥만 같다. 지난해 초부터 최근까지 대구 달서구 한 전통시장 일대 지하상가에서 단란주점을 운영했다. 생활비와 자녀 학비를 벌려고 빚을 내 고생 끝에 차렸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점포를 하루빨리 팔아치워 빚이나 갚자는 생각뿐이다. 올해 나이 57세. 공무원 출신 남편이 수년 전 정년퇴임하면서 생활비가 급했다. 남편은 부동산에 투자한다며 우리가
대구시민은 2020년 2월 18일을 기억한다. 코로나19 대규모 집단감염의 시작이었던 '31번 환자'가 발생한 날이다. 확진자 수는 이튿날 11명, 그 다음 날 34명으로 급증했다. 2월 23일 처음으로 세 자릿수를 기록했고, 29일 741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한동안 두 자릿수로 내려오지 않았다. 도시는 멈춰섰고, 시민들의 일상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시민들로 붐비던 동성로는 텅 비었고, 서문시장도 적막감에 휩싸였다. 자영업자들은 문을 닫아걸었고, 직장인들은 고용 불안에 떨었다. 한동안 숨죽였던 코로나19는 8월 들어 다시 확산됐다. 시민들은 실낱같은 희망마저 재확산과 동시에 사라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매일신문 기획탐사팀은 막다른 골목에 내몰려 힘겨워하는 자영업자와 취업준비생들을 만났다. 그들의 이야기를 '내러티브 저널리즘'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 낮술로 답답함 달래는 60대 여행사 대표 오전 9시가 넘어서야 눈을 떴다. 햇살이 쏟아지는 바깥과 대조적으로 집안은 고요했다. 가족들은 모두 직장으로, 학교로 흩어진 뒤였다. 천장을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일어나봤자 할 일도 없을 텐데…." 다시 눈을 감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어거지로 눈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