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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속속 문 닫는 경북 초·중·고교… '지방소멸' 시작됐나

(上) 지방소멸 앞당기는 폐교… 아이들 사라진 운동장에 잡초·메뚜기떼
학생 감소 못 견디고 통폐합에 몇 안 되는 학생들 20-30분씩 통학
경북 729곳 폐교, 전남 이어 두 번째…안동 65곳 최다, 의성 김천 順

 

 

대구경북에서 초·중·고교가 잇따라 폐교하면서 '지방소멸'이 현실화되고 있다. 폐교에 따른 청소년 부재로 미래를 짊어질 세대가 사라지고, 이에 따른 지방소멸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에 따르면 지난 1999년 49만4천593명이었던 경북의 학생 수는 올해 29만6천917명으로 40%가량 급감했다. 해마다 1만명씩 학생이 줄어든 셈이다. 같은 기간 경북에서만 353곳의 학교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폐교 여파가 본격화되지 않은 대구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올해 기준 학생 수가 28만8천291명으로 1999년(47만6천552명)보다 크게 줄었다.

 

매일신문 기획탐사팀은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두 번째로 폐교가 많은 경북 시·군을 찾아 폐교와 지방소멸의 현실을 취재했다.

 

 

 

◆잡초로 뒤덮인 폐교

 

지난 15일 오후 경북 군위군 화본리 옛 산성초교 건물은 곳곳에 금이 간 채 을씨년스럽게 방치돼 있었다. 한때 아이들이 뛰어놀던 운동장은 잡초로 뒤덮인 채 주차장으로 변했고, 공사 자재와 잡초에 엉망이 된 조회대에는 '1988년 9월 26일, 전교어린이회 부회장 아버지 최○○ 씨께서 세워주셨읍니다'라는 표식만 남아 쓸쓸함을 더했다.

 

학교 내부는 각종 공사 장비로 난장판이었지만 학생들의 흔적은 아직 남아 있었다. 화장실에는 영어 숙어가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교실에는 낙서와 함께 시간표가 적혀 있는 칠판도 보였다. 복도에는 '산성초등 5학년 고○○'이라는 이름이 적힌 그림 작품이 새카만 발자국이 찍힌 채 버려져 있었다.

 

1921년 개교한 산성초는 3천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지만 학생 수 감소를 견디지 못하고 지난 2012년 부계면 부계초와 통폐합됐다. 마지막 졸업생은 단 1명. 이곳을 마지막으로 산성면에는 유·초·중·고교가 모두 사라졌다. 인구 1천300여명 중 상당수가 65세 이상 고령층인 탓에 학교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산성면사무소에서 만난 박태섭 면장은 "매년 군위군수 명의로 각 학교 우수 졸업생들에게 표창장을 주는 행사가 있는데, 올해 부임해 행사를 치르려고 보니 산성면에는 대상자가 한 명도 없더라고요. 학교가 하나도 없으니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며 시름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면서 "산성면에 등록된 20세 이하 인구가 45명뿐인데, 이 조차 등록상 인구일 뿐 실제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며 "올해도 출생 인구가 3명에 불과한데, 역시 출산장려금 때문에 주소를 둔 것이고 실제 사는 사람은 아니다. 군위군 8개 면 중에 산성면의 평균연령이 제일 높고 그 여파가 폐교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올 5월 기준 군위군의 소멸위험지수는 0.133으로 의성군(0.135)과 함께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산성면은 군위군에서도 소멸 위험 가능성이 가장 높다. 지난 8월 기준 산성면 인구 1천203명 중 65세 이상 고령층은 619명(51%)에 이른다.

 

폐교로 인한 고생은 산성면 학부모와 학생들 몫이다. 초등생의 경우 경북도교육청에서 제공하는 스쿨버스를 타고 인근 부계초에 다녀야 하는데, 여러 마을을 들르는 탓에 시간 소모가 많다. 면 소재지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학생의 경우 20~30분씩 걸어와 버스를 30분 넘게 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둔 학부모 정희(42·산성면) 씨는 "아침 8시에 버스를 타면 8시 35분쯤 학교에 도착한다. 아직 어린 나이에 30분씩 통학하며 졸음과 멀미를 겪는 모습이 안쓰럽다"며 "초등학교는 그나마 낫지만 중학교부터는 학생 수가 너무 적어서 대구나 군위읍으로 이사 갈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초교만 남기고 문 닫은 중·고교

 

경북 김천시 지례면 옛 김천상고와 병설 지례중 운동장 역시 풀만 무성했다. 흙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마른 풀과 잔디로 가득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놀란 메뚜기 수십 마리가 곳곳에서 날아올랐다.

 

굳게 잠긴 학교 건물 출입문 안팎에는 거미줄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김천상고 본관 옆엔 지은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강당 건물이 쓸모를 잃은 채 서 있었다. 건물 앞에는 '이곳은 경상북도교육감 소유 공유재산이므로 무단 점유(농작물 경작, 쓰레기 무단투기, 야적 등) 행위를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규모가 작았던 두 학교는 학생 수 감소로 지례중이 2017년, 김천상고는 2019년 각각 폐교했다. 구곡초는 1993년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올해 기준 지례면에 남은 학교는 전교생 32명에 불과한 지례초교 한 곳뿐이다. 지례초 졸업생들은 버스로 1시간가량 걸리는 대덕면 지품천중이나 김천 시내에 위치한 김천중앙고, 김천고, 성의고, 율곡고, 김천생명과학고 등지에 다닌다.

 

이 지역의 몇 안 되는 학부모들은 장거리 통학과 부족한 교우 관계, 학습·여가 기회 부족 등을 아쉬워했다.

 

2013년부터 지례면에서 치킨 전문점을 운영하는 윤은주(49) 씨는 구미에 살다 지난 2009년 남편과 함께 이곳에 정착했다. 자녀는 고1 아들(16)과 초4 딸(10)이 있다. 아들은 오전 7시쯤 첫 버스를 타고 1시간 40분쯤 걸리는 김천생명과학고에 통학한다. 그는 지례초, 지품천중을 거쳐 고교에 진학했다. 딸은 지례초에서 3명뿐인 4학년 동급생과 함께 공부한다.

 

윤 씨는 "아들이 먼 학교에 다니는 것은 도시나 농촌이나 비슷한 사정의 학생들이 많으니 큰 불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문제는 딸이다. 중·고교에 진학할 때쯤 장거리 통학에 따른 사고·범죄 우려가 있고, 기숙사형 학교에 보내자니 한창 예민한 시기의 학생들끼리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댈 때의 스트레스도 걱정된다"고 했다.

 

 

 

◆ 경북에서만 732곳 '폐교' 운명

 

경북은 전국에서 폐교 수가 가장 많은 지역 중 한 곳이다.

 

경북도교육청에 따르면 1982년부터 올해까지 경북에서만 729곳의 학교가 폐교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남(828곳)에 이어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수준이었다. 세 번째로 폐교가 많은 경남(582곳)과도 150곳 가까운 차이가 났다.

 

시·군 별로는 안동이 65곳으로 폐교 수가 가장 많았고, 의성(63곳), 김천(47곳), 상주(44곳), 포항(43곳) 등 순이었다.

 

이런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상당수의 학교가 통폐합 됐음에도 여전히 도내 학교 상당수가 학생 수 부족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경북도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4월 1일 기준 도내 초등학교 510곳 중 학생 수가 60명 미만인 곳은 232곳(45.5%)에 달했다. 중학교 266곳 중에서도 학생 수가 60명 미만인 곳이 103곳으로 38.7%였다. 그나마 고등학교는 185곳 중 15곳만 학생 수가 60명 미만으로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경북도교육청 관계자는 "경북은 광역자치단체 중 면적이 가장 넓은 탓에 인구밀도가 낮고 정주 여건도 나쁜 산간지역이 많다"면서 "특히 근대까지 인구가 한반도에서 가장 많았던 만큼 학교 수도 많았는데,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인구가 빠르게 줄면서 폐교 수도 더 많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득환 대구경북연구원 연구위원은 "경북에서는 유독 '학부형' 세대 계층이 사라지는 경향이 강하다"며 "젊은 층이 유입돼야 지역도 활력을 찾을 수 있는데, 폐교가 많아지면 자녀들 통학 불편 등으로 악영향으로 젊은 층을 몰아내는 역효과가 나타난다"고 했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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