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은 나지막한 도시이다. 215㎞ 해안선을 따라 대체로 평지가 가득하다. 중심가에 들어서면 대도동·송도동·해도동처럼 이름에 '섬 도(島)'가 들어간 동네가 많다. 모두 옛 포항종합제철이 들어서면서 간척사업을 통해 육지로 변한 곳이다.
바다를 메운 마을이니 치솟은 오르막은 보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포항의 최신 여행 트렌드는 '하늘길'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육지와 바다 구분 없이 하늘로 높이 걸어 오르는 여행을 포항으로 떠나보면 어떨까.
포항 영일대해수욕장은 경북 유일의 도심형 해수욕장이다. 부산 광안리처럼 너른 백사장과 휘황찬란한 도심 불빛이 왕복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교차한다. 그만큼 해양스포츠를 즐기거나 바다를 바라보며 맛집을 찾는 등 역동적인 재미가 가득해 사시사철 젊음의 열기가 뜨겁다.
영일대해수욕장에서 바다를 마주하고 왼편을 바라보면 동산 위 우뚝 솟은 롤러코스터를 발견할 수 있다. 푸른 바다와 대비되는 차가운 철제 조형물이다. 왠지 어촌마을에서 철강도시로 변모한 포항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2021년 지어진 '스페이스워크'(SPACE WALK)는 포항 환호공원(포항시 북구 환호동 산 56-1번지) 안에 지어진 국내 최대 체험형 철제 조형물이다. 동서로 60m, 남북으로 57m, 높이 25m 크기를 자랑한다. 포스코가 117억원을 들여 건설해 포항시민에게 기부채납했다. 디자인은 독일의 세계적인 부부 작가 하이케 뮤터와 울리히 겐츠가 맡았으며, 독일 뒤스부르크 앵거공원의 롤러코스터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전해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철재로 만든 작은 롤러코스터다. 차이라면 아무런 도구없이 맨몸으로 올라야 한다는 점이다. 총 333m 길이에 모두 717개 계단이 있다. 포스코의 글로벌 기술이 투입된 만큼 단단하고 야무지다.
다만 높이 오를수록 세찬 바람과 사람들의 무게로 점차 흔들리는 감각이 머리 끝을 쭈뼛 서게 만든다. 철조망처럼 얽힌 메시 형태 바닥이다보니 발쪽을 쳐다보면 수십 m 아래 멀찍한 땅이 고스란히 보인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느라 흘린 땀이 바닷바람과 함께 등골 서늘한 오싹함에 금세 말라 버린다.
그렇게 계단을 따라 조금씩 오르다보면 흔들리는 철제 위에서 이름 그대로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가운데쯤 360도 회전하는 구간이 있지만 당연히 올라갈 수 없다. 360도 원형 트랙을 배경으로 연인끼리 사진을 찍으면 그 사랑이 오래도록 지속된다는 속설이 요즘 젊은세대 사이에서 유행한다고 한다.
사람이 오를 수 있는 정상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영일대해수욕장 앞 바다의 너른 풍광과 저 멀리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한 눈에 담긴다.
한가지 팁을 준다면 포항제철소의 야경이 무척 아름답다. 포스코는 2016년부터 제철소 경관조명사업을 추진해 왔다. 굴뚝과 공장건물이 이어지는 약 6㎞ 구간에 3만개의 LED 조명이 설치됐다. 포스코는 이 조명을 활용해 매 시간 정각부터 20분간 다양한 테마 조명과 음향이 어우러진 '포항제철소 LED Light show'를 선보인다.
기다란 제철소를 따라 동해 밤바다를 물들이는 불빛이 실제로 보면 제법 감탄이 나온다. 오죽하면 관광객에 의해 호미곶 일출광장,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 등과 함께 포항지역 12경에 뽑혔을까. 포항 남구 해도동에서 북구 환호동까지 어느 곳이든 빛에 물든 포항제철소를 볼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스페이스워크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바다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포항시에 따르면 스페이스워크는 개장 후 지금까지(12일 기준) 226만4천787명이 다녀갈 정도로 높은 인기를 구가 중이다. 그 덕에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 '한국관광 100선', '대한민국 밤밤곡곡 100선 야경 명소', '한국관광의 별 신규관광자원' 등 다양한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설계상 500명이 동시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지만, 안전 관리를 위해 1회 150명으로 인원수가 제한된다. 이용료가 공짜인 덕분에 평일이면 평균 2천명, 주말이면 6천명까지 몰려 조금의 기다림은 각오해야 한다.
운영시간은 평일 기준 하절기(4~10월) 오전 10시~오후 8시, 동절기(11~3월) 오전 10시~오후 5시이다. 주말은 모두 1시간씩 연장 운영된다. 강우와 강풍 등 기후가 험악하면 자동 출입 차단되며, 안전을 위해 키 110㎝ 이하는 이용할 수 없다.
걷기만 하다보니 어느덧 배가 고프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자. 스페이스워크와 스카이워크가 여기 포항시 북구 환호동에 위치한 이유가 있다. 환호공원이 맞닿은 영일만바닷가는 포항지역 토박이말로 '설머리'라 불린다. 하얀 백사장이 마치 머리에 눈(雪 눈 '설')이 내린 것 같다고 해서 신라시대부터 지어진 말이다. 이 설머리에 포항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 중 하나인 물회거리가 있다. 영일대해수욕장부터 스카이워크까지 길게 이어진 곳이다.
포항 물회(사진)는 동치미 국물을 쓰는 강원, 된장을 쓰는 제주 등지와 달리 고추장이 맛을 좌우한다. 원래는 집에서 만든 고추장에 제철 생선을 썰어넣고 얼음 또는 맹물을 부어 먹는 방식이었으나 요즘은 젊은세대 입맛을 반영해 조금씩 변주가 이뤄졌다.
그래도 광어·우럭·오징어 등 동해안 대표 생선에 살얼음 동동 띄운 고추장 육수를 비벼 생선뼈 매운탕과 함께 먹는 그 맛 자체는 늘 기대를 충족한다.
KBS 인기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에서 가수 은지원이 설머리 물회를 즐기는 모습이 방영되는 등 방송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 인기를 끌어 주말이면 설머리물회거리 맛집마다 대기자와 차량이 얽혀 길게 줄을 잇는다.
더욱이 최근에는 설머리 주변으로 '힙'한 카페까지 들어서며 동해바다와 맛집, 분위기 좋은 커피향이 어우러진 말 그대로 '핫플레이스'가 형성됐다.
■ 영일만 해변을 걷는다 '스카이워크'
발밑으로 부서지는 파도… 바다위로 산책
스페이스워크 즐긴뒤 동쪽으로 3㎞… 463m 특수유리 보도 백미
스페이스워크를 찾았다면 환호공원을 한번 둘러보고 동쪽 언덕길로 내려오는 것을 추천한다. 미니 동물원과 미술관 등 각종 볼거리를 지나치며 산책을 즐긴 뒤, 동해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스카이워크(SKY WALK)도 함께 들르기 위해서다. 2001년 지어진 환호공원은 총 51만6천여㎡ 규모의 포항 최대 도심공원이다.
대폭포와 잔디광장, 프로그램 분수, 전망대, 간이동물원, 종합놀이대, 게이트볼장, 야외무대, 연못, 야생화단지, 포항시립미술관 등 30여가지의 시설들이 아기자기 들어차 있다. 중간중간 놓인 쉼터도 돛과 닻처럼 선박 모양을 흉내내며 바다도시 포항의 이미지를 살렸기에 적잖은 흥미를 준다. 환호공원에서 산책로를 따라 영일만 바닷가로 넘어오면 조금 북쪽방향에서 스카이워크를 발견할 수 있다.
스페이스워크에서 동쪽으로 약 3㎞ 떨어져 있다. 영일만 해변에서 바다로 뛰어들 듯 놓인 총 463m의 해상 보도이다. 바다 위로 펼쳐진 직선과 동그라미의 도보길을 돌아오는 다소 단조로운 코스지만, 스카이워크의 재미는 발밑 바닥이다. 특수유리로 제작된 바닥 아래로 파도와 해초, 갈매기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7m 높이의 투명바닥을 걷는데 나름 용기가 필요하다.
스페이스워크와 스카이워크 모두 비슷한 시기에 개장해 매일 수천명의 관광객이 모여들며 어느덧 포항지역 최고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