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강릉 1.3℃
  • 서울 3.2℃
  • 인천 2.1℃
  • 흐림원주 3.7℃
  • 흐림수원 3.7℃
  • 청주 3.0℃
  • 대전 3.3℃
  • 포항 7.8℃
  • 대구 6.8℃
  • 전주 6.9℃
  • 울산 6.6℃
  • 창원 7.8℃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순천 6.7℃
  • 홍성(예) 3.6℃
  • 흐림제주 10.7℃
  • 흐림김해시 7.1℃
  • 흐림구미 5.8℃
기상청 제공
메뉴

(매일신문) [단독] '범죄 표적'된 공공임대주택…달성군 아파트 보증금 822억 증발

자본 5억 건설사 단돈 5천만원으로 908가구 매입 후 부도…3년 동안 2200가구 피해
군산, 무안 등 1천여가구도 속여…주택기금 지원 악용한 전형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도입된 공공임대주택이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 한 민간 건설사가 공공임대주택법의 허점을 파고들자 임차인들의 822억원대 보증금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7일 찾은 대구 달성군 유가읍 한 공공임대주택. 908가구 규모의 대단지 아파트지만, 입구에 있는 경비실은 아무런 안내도 없이 잠겨있었다. 사람이 북적여야 할 아파트 커뮤니티센터 안의 도서관, 탁구장, 놀이방에도 불이 꺼져 있고 드나드는 사람이 없었다. 이 아파트는 대규모 사기 사건에 연루된 이후 유령도시처럼 적막해졌다.

 

지난해 11월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이 아파트(전체 908가구) 임차인 중 263명을 속이고 분양 전환 대금 약 73억원을 빼낸 A건설사 직원 3명을 기소했다. 이들은 "분양 전환 대금 잔금을 주면 아파트 소유권을 이전해 주겠다"고 속였다.

 

재판 중이던 지난달 23일 A건설사가 최종 부도 처리되면서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5년 임대 계약 후 분양전환이 가능한 해당 공공임대아파트값(분양전환가·84㎡기준)은 1억3천500만원이다. 보증금 9천100만원에 분양 전환 대금 4천400만원을 납부하면 건설사로부터 소유권을 이전받을 수 있다.

 

그러나 A건설사가 부도를 내면서 임차인들의 모든 보증금(822억원대)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일부 회복만 가능하다. 분양 전환 절차도 수천만원씩 손해를 보거나 포기해야 한다. 특히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가구의 피해가 심각하다.

 

A건설사의 부도에는 공적자금인 주택도시기금이 범죄 수단으로 쓰이기 쉬운 구조적 배경이 있다. 이 아파트 입주가 시작된 건 지난 2015년 4월이다. 입주 후 3년 동안은 큰 문제가 없었지만 2018년 6월쯤 건물을 짓고 임대사업을 하던 기존 건설사가 A건설사에게 건물을 매각했다.

 

A건설사는 단돈 5천만원으로 908가구에 이르는 아파트를 손에 넣었다. 비결은 주택도시기금이다.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하거나 매입하려는 건설사는 공공주택 특별법에 따라 주택도시기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국가 예산으로 편성된 공적기금이 범죄에 악용된 것이다.

 

이 아파트의 매각 대금은 약 1천392억원으로 추정된다. 이전 건설사가 집을 지으며 빌렸던 주택도시기금 570억2천240만원과 임차인에게 돌려줘야하는 보증금 822억2천666만4천원 등이 포함된 가격이다.

 

하지만 A건설사는 2019년 기준 자본금이 5억원에 불과했고, 2020년 4월부터 나가는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했다. 같은 시기 전북 군산과 무안 등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공공임대주택 1천292가구를 사들인 A건설사는 결국 이 지역 임차인들에게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보증 사고를 냈다.

 

민간임대주택도 아닌 '공공임대주택'이 이렇게 쉽게 깡통이 될 수 있었던 건 당시 임대주택법이 허술했기 때문이다. 2020년 12월 공공임대주택법이 개정되면서 지금은 지자체가 매각에 관한 내용을 반드시 검토해야 하지만,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구 임대주택법에 따르면 임대사업자는 지자체에 '신고'만 하면 임대주택 소유권을 매각할 수 있었다.

 

최재훈 달성군수는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이 문제를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달라고 요청했다"면서도 "달성군이 할 수 있는 건 고발, 시정조치, 임대사업자에 대한 행정지도, 국토교통부에 대한 협조 요청 정도라 안타깝고 주민들에게 송구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