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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상추 농사로 돈방석 앉았다고?… “밭 갈아엎었어요”

마트서 150g에 3000원 ‘금상추’

산지서 4㎏ 박스에 2600원 출하

인건비 등 올라 가격 맞추지 못해

땅 갈아엎거나 빈땅으로 놀려

농민 “고물가 주범 취급에 억울”

 

“인건비도 안 나와 상추밭을 갈아엎었는데, 횟집 가니 비싸서 상추를 많이 못 준답디다. 이게 말이 됩니까?”

부산 강서구 맥도강 옆 상추밭에서 만난 농부 이정희 씨는 대뜸 시내 상추 가격부터 물었다. ‘집 근처 마트에서 150g 한 봉지를 3000원 정도 줬다’고 답했더니 한숨부터 쉰다.

이 씨를 따라 밭으로 내려가자 휑한 상추 하우스가 눈에 들어온다. 하우스 5동 중 4동이 가격을 맞추지 못해 이미 땅을 갈아엎은 것이다. 그나마 남겨둔 한 동에서는 무성한 잡초 사이로 웃자란 상추가 꼿꼿하다. 상품(上品)은커녕 중품(中品)도 될까 말까 한 작물. 이 씨는 “얼마 전에 40만 원을 들여 ‘풀매기(잡초 제거)’를 한 밭이라서, 그 돈이 아까워 차마 엎질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통 여름 상추는 심은 지 30~40일이면 출하한다. 모종을 심고, 잡초를 제거하고, 출하를 위한 상하차 작업을 거친다. 150평짜리 하우스 한 동에 작업마다 인부 넷은 써야 하지만 일당이 1년 사이 1만 원 더 올랐다. 코로나로 외국인 노동자가 사라져 인력회사에서 사람을 댄다. 점심 식대를 제외하고도 하루 일당으로 7만 5000원에서 8만 원을 준다. 이 씨는 “모종 가격부터 박스값까지 안 오른 게 없다. 일일이 다 말하려면 입만 아프다”고 말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인건비에 반해 출하된 적상추 가격은 형편없다. 늦봄까지만 해도 공판장에서 9000원을 부르던 4kg 한 박스가 5000원 아래로 추락했다.

이 씨가 보여 준 스마트폰에는 공판장에서는 보내온 매정한 문자만 가득하다. ‘적포기/상/40개/2600원’. 적상추 상품 4kg을 40박스 출하했는데 박스당 2600원에 팔아주겠다는 뜻이다. 40박스를 팔아봐야 10만 원 남짓 수중에 떨어지는 셈이다. 풀매기 일꾼 한 사람 불러 점심 한 끼 대접하면 끝날 돈이다.

이웃에서 상추 재배를 하는 백남규 씨는 6월에 마지막 출하를 마치고 땅을 놀리고 있다고 했다. 요소수 대란 이후 오르는 비료 가격을 보고 올해는 도저히 비용을 못 맞추겠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맥도강 일대는 부산과 경남 일대를 먹여 살리는 상추 재배지다. 이 씨네처럼 대저동 일대에서 출하한 상추는 보통 농산물도매시장 공판장으로 가서 경매를 거친다. 경매 후에는 중도매인을 통해 곧장 전통시장으로 가거나, 중간 업자를 거치고 거쳐 일반 마트로 향한다.

 

같은 날 반여농산물도매시장에서 거래된 적상추 경매 낙찰가는 얼마였을까. 4kg도 아니고 2kg 한 박스를 기준으로 최저가가 5000원, 최고가가 1만 2900원. 산지 출하가에 비하면 경매만 거쳤는데도 4배 이상 뛰었다.

 

상추 같은 엽채류는 로스율이 15% 수준이어서 유통마진도 상당하다. 중도매인이 보통 경매가의 5%를 더 부르고, 이후 중간 유통업자는 단계별로 10% 정도씩 이문을 남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농산물 도매 관계자는 “복잡한 유통 구조 탓에 산지 가격과 다른 소매가가 형성될 수 있다. 폭염에 상추가 적게 생산된 것도 이유이지만 인건비, 운반비, 보관비 등 주변 물가가 올라 상추가가 급등했다. 대량 구입한 농산물이 폭락하더라도 구제해 주는 시스템이 없으니, 도매상도 경매가를 크게 올려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대저동 사람들은 애써 길러낸 상추가 물가를 폭등시킨다는 말에 황당해했다. 이 씨는 “‘상추 농사로 돈방석 앉았겠다’는 타지 친구들의 속 모르는 소리까지는 참겠는데, 주변에서 상추와 배추가 물가를 올린다며 이를 키우는 농부를 고물가 주범 취급을 하니, 그게 진짜 황당하다”고 말했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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