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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일보) [동해 묵호]못생겨도 ‘속풀이 끝판왕'이라오

동해 사람들의 생명력 담은 ‘곰칫국'

 

 

논골담길 곳곳 이색풍경 담아낸 카페
수제 캐러멜부터 다쿠아즈 한입
인스타 감성 그대로 품은 힐링 명소


(전략)
언제나 가난하던
묵호 사람들의 아침 밥상
어제도 오늘도
곰칫국은 단골로 올랐었다
워낙 미끈거리고 못난이라
늘 선창 바닥에 마구 내동댕이쳐지던
곰치 녀석들
장광에 쌓인 눈 걷어내고
잘 익은 김치 한 사발 푸짐하게 썰어 내면
곰칫국은 얼큰한 해장국으로
다시 태어났지
(후략)


이동순 시집 묵호 中 ‘곰칫국'

■동해 바다 담은 ‘곰치' 그리고 ‘곰칫국'=생선 한 마리에 주민들의 고된 삶과 생명력이 담겼다. “늘 선창 바닥에 마구 내동댕이쳐지던” 생선을 “얼큰한 해장국으로 만들어낸 생명력이다” 생김새가 낯설고 투박해 아무도 찾지 않았던 곰치는 그렇게 해장 하면 빠질 수 없는 얼큰한 한 그릇이 됐다.

흔히 ‘곰칫국' 혹은 ‘물곰국'이라고 불리는 이 메뉴는 사실 ‘곰치'로 만든 요리가 아니다. 이 탕 안에 들어가는 생선은 ‘미거지' 로, 주로 남해안 일대에서 잡히는 ‘꼼치'와는 사촌지간인 생선이다. 강릉, 속초를 비롯한 강원도 동해안 시·군에서 모두 잡히고, 동해·삼척지역에서 어획량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해나 서해 바닷가 식당에서는 종종 ‘미거지탕'을 팔지만, ‘미거지'는 동해안에서만 잡히기 때문에 여기 들어간 생선은 ‘꼼치'가 주재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해뿐 아니라 강릉·속초·삼척에서도 잡히는 생선이니만큼 조리법도 동네별로, 집안별로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전통적으로 동해·삼척 지역에서는 김칫국을 끓이듯이 양념한 뒤 생선을 넣는 조리법이 대세다. 이후 센 불에서 확 끓고 나면 고춧가루와 고추를 넣어 얼큰하게 조리한다. 일부 식당에서는 무를 넣어 시원한 육수를 만든 뒤 얼큰한 청량고추를 팍팍 넣는 맑은 ‘지리'를 끓여내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속을 확 풀어주는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도째비골 아래쪽 해랑전망대 맞은편 길에는 이런 ‘곰칫국'을 파는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과거에는 못생겼다며 버려졌어도, 지금은 이 맛을 잊지 못해 연신 관광객을 불러대는 ‘질긴' 생선이다. 얼큰하게 절절 끓는 한 그릇을 받아 숟가락으로 호로록, 떠먹으면 ‘시원한' 온도에 땀이 쭉쭉 흐르고 얼얼해진 입안에는 금세 침이 고인다.

일출을 볼 수 있는 아침 시간대부터 문을 열어 ‘일출곰치국'이라고 이름 붙인 가게는 2002년부터 황순애(62) 사장이 20년째 일궈온 곳이다. 특별한 비법은 없지만 묵은지와 신선한 곰치를 넣고 푹 끓여 국물 맛이 텁텁하지 않고 깔끔해 속이 풀리는 기분이다. 이래서 뱃사람들이 진탕 취한 다음 날 곰칫국을 찾았겠구나 생각하며 국물에 이어 숟갈로 곰치 살을 떠먹어 본다. 입에서 살살 녹으면서도 부드럽게 씹히며 목젖으로 넘어가는 맛이 일품이다.

도째비골 곰치 식당에서는 곰치 말고 다른 음식도 놓쳐서는 안 된다. 바다의 보물을 가득 담은 정성 담긴 밑반찬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점순(62)씨 내외가 운영하는 ‘거북이횟집곰치국'도 그런 집이다. 젓갈을 잔뜩 넣어 바닷마을 스타일로 곰삭힌 깍두기는 곰칫국과 어우러져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손수 담근 새우장은 입안에 넣으면 쫄깃한 뒷맛을 남긴 채 스르르 녹아 없어진다. 생 시금치를 양념해 무친 밑반찬과 생선 알로 만든 젓갈은 봄철 식탁 입맛을 쭉쭉 돋운다. 2인분 이상 주문하면 곰치 간을 따로 양념해 자박하게 끓여주는데, 향미 가득한 양념과 함께 크림처럼 퍼지는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묵호가 좋아 자리 잡은 사람들=바닷가 맞은편 알록달록 소박한 슬레이트 지붕 집들이 자리 잡은 논골담길에는 정감 가는 풍경만큼 발길을 끌어들이는 카페와 쉴 곳도 가득하다.

논골담길 중 논골 1길 언덕에 자리한 ‘103LAB 카페 겸 게스트하우스'는 카페 벽에 쓰인 글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어 손님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들어서는 곳이지만,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자리잡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며 수제 캐러멜을 하나 입에 넣으면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은 2019년 결혼한 임진희(30대)·김홍석(40대)씨 부부가 운영한다. 바닷가에 살아보고 싶었던 이들은 동해안을 돌아다니다가 2020년 우연히 찾아온 묵호항에 반해 이곳에 정착했다. 자신들이 느꼈던 묵호의 조용한 분위기를 손님과 숙박객들에게 전하고 싶어 하는 부부의 마음이 느껴지는 조용한 공간으로, 동네 고양이들도 이곳을 찾아 마치 자기 집처럼 자유를 누린다.

임진희 대표는 “편안한 공간이라 그런지 퇴사하기 전이나 이직 준비를 하는 분들이 특히 게스트하우스를 많이 찾아온다”고 소개했다. 묵호진동 해맞이길에 자리한 카페 겸 숙박시설 ‘내게와 묵호'도 아기자기한 주거지 골목 속에서 여유 있는 하루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게스트하우스 곳곳 동해 토박이인 고승희(26) 사장의 꼼꼼한 손길이 닿아 깨끗하고 조용하다. 묵호항 인근에 자리한 ‘여행책방 잔잔하게'도 채지형 여행작가와 조성중 사진작가 부부가 동해 묵호가 좋아 자리잡고 운영하는 공간이다. 지난해 문을 열고 지금은 책방의 가능성을 점치는 시기라고. 조성중 대표는 “묵호는 변하는 속도가 되게 더딘데 그 더딘 속도가 매력 있는 곳”이라고 묵호에 자리 잡은 이유를 설명했다.

예쁜 풍경 속에서 제법 내공 있는 디저트를 내놓는 카페도 있다. 묵호등대 인근 꼭대기에 위치한 카페 ‘묵호287'이 바로 그런 집이다. 바다가 보이는 풍경에 반해 그저 ‘인스타 감성' 사진만 기대했다면 오산. 머랭은 바삭 촉촉하고 크림은 녹진한, 제법 본격적인 다쿠아즈가 입맛을 사로잡는다. 아메리카노는 산미는 덜하고 구수한 맛이 강해 긴장감을 내려놓고 느긋하게 즐기기에 제격이다.

동해=이현정·박서화·김현아기자 / 편집=김형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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