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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장애인 울리는 지자체…복지서비스, 소송해서 받으라고?

‘장기요양급여 받는 장애인도 활동지원급여 지급’ 판결에도 무관심
개정안 마련 전 서비스 이용 가능한데 지자체들 “소송해서 이용하라”
출산 여성 장애인 지원책 조차 몰라…실질적 혜택 챙겨주는 대책 필요

 

 

장애인들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홀대와 무관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정부와 자치단체가 복지서비스 선정 과정에서의 대상자 선택 기준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에도, 소송을 통해 부당함을 지적하는 경우에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극적 행정을 펼치면서다. 정부 조치만 기다리며 가만히 있는 사람들에겐 무관심과 푸대접만 돌아간다는 푸념이 나오는 상황이다. 복지 서비스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도 이뤄지지 않다보니 당사자가 필요한 서비스를 받지 못해 가정이 무너지는 일도 빚어지는 형편이다.
 

장애인들 스스로 자신들에게 적합한 복지서비스를 제공받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행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모두 소송해서 받으라는 얘기냐”=헌법재판소는 지난 2020년 12월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어 장기요양급여를 받는 장애인은 장애인 활동지원 급여를 받을 수 없도록 한 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는 위헌 법령을 개정할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효력을 인정하는 결정이다. 헌재는 오는 2022년 12월 31일까지 개선한 법률안을 마련토록 했고 그동안 현행법을 ‘잠정 적용’토록 했다.

예를 들면 노인성질환을 앓고 있는 장애인은 노인장기요양법에 따라 하루 4시간씩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는 등 매월 최고 149만원 상당의 지원을 받는 만큼 장애인활동지원법에 따라 하루 최대 14시가씩, 매월 최고 648만원 상당의 활동지원사 도움을 받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비스 제공 당사자인 장애인 입장에서는 도움을 받는 시간이 많은 장애인활동지원법 적용이 절실하지만 현행법에서는 서비스 변경을 제한하고 있는 실정이다.
 

광주에서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황신애(여·58)씨는 이같은 부당함을 제기하며 광주지법에 ‘사회복지서비스 변경신청 거부처분 취소’ 소송과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냈고 광주지법이 받아들여 위헌법률심판을 제청, 헌법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냈다. 법원은 또 해당 서비스 거부 처분을 최소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고 북구는 판결 결과에 승복, 황씨에게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황씨같은 서비스를 제공받을 필요가 있는 장애인만 2000명이 넘는데도, 이들에게는 여전히 서비스를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구를 비롯, 자치단체들은 “소송 결과가 나와야 지원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5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광주전라제주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30일 기준 광주·전남지역에서 65세 미만 노인장기요양급여 대상자는 총 2124명(광주940명, 전남 1284명). 이들은 ‘노인장기요양보험법상 65세 미만이지만 치매·뇌혈관성 질환 등 특정 노인성 질병을 가진 장애인들이 대부분이다.

이들 입장에서는 노인장기요양급여 대신, 장애인활동지원급여로 더 나은 복지서비스를 제공받는 게 도움이 되지만 법이 바뀌기 전이라 소송에 나서지 않으면 서비스를 갈아탈 수 없는 셈이다.

정성주 광주시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장은 “황씨와 같은 이유로 서구와 북구 등에 민원을 제기한 장애인이 잇따르고 있다”면서 “헌법 불합치 결정까지 나온 마당에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받으려면 소송을 해라’는 식의 행정을 펼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어떻게 장애인들이 일일이 챙기나=최근 광주고법에서는 태어난 지 6개월된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굶겨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엄마가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치사)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대 엄마 A(27)씨는 심한 지적장애인으로, 생후 6개월 된 둘째 아들이 수두 병증으로 손발을 떤다는 친정 엄마 말을 듣고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방치해 영양불량 등으로 사망에 이르게 했다. 첫째 아들도 치아가 썩어 음식을 제대로 씹지 못하는데도 병원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하는 등 심신 미약 상태에서 아이들을 양육하다 범행을 저질렀다.

광주시와 전남도는 A씨 같은 출산 전·후의 여성 장애인을 위한 사회복지제도로 ‘홈헬퍼 서비스’를 운영중이지만 실제 해당 장애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으면서 정책의 실효성을 떨어트린다는 지적이 거세다.

전남도의 경우 12세 미만 자녀를 뒀거나 출산 전·후의 여성장애인을 대상으로 사회복지사가 하루 최대 6시간, 주 5회 육아와 가사를 돕는 제도를 운영중이다. 광주시도 비슷하다.

A씨의 상황을 고려하면 해당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지만 직접 신청해야만 혜택을 받는 ‘신고주의’라는 점 때문에 전혀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했다.

A씨의 아동학대 업무를 담당했던 보성군 한 공무원은 “광양에서 출산 한 뒤 어머니가 사는 보성으로 옮겨왔기 때문에 보성군에서는 A씨가 전입 온 사실 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며 “광양에서도 홈 헬퍼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고, 보성에서도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판부도 이같은 점을 지적했었다. 광주고법 형사 2-1부는 당시 선고 과정에서 “장애인이 임신·출산·육아 등과 관련하여 자녀 양육이나 가사지원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사회복지제도나 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모두 당사자가 신청한 경우에 한해 지원이 가능한 제도적 한계로 인해 지적장애를 가진 A씨가 제도 등을 스스로 활용할 것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제도상 문제점을 지적했었다.

지난해 전남에서 홈 헬퍼 서비스를 이용한 여성장애인은 32명. 2020년 아이를 출산한 여성장애인이 58명, 21년 상반기(6월)까지 28명인 것을 감안하면 많은 여성장애인들이 홈 헬퍼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의 경우에는 장애인단체조차 서비스 제공 여부를 모르는 실정이다. 한 장애인단체 관계자는 “광주지역에는 여성장애인의 육아를 돕는 서비스가 없다고 알고 있었다”며 “장애인단체에서도 모르는데 앞을 못 보거나, 지적장애가 있는 여성장애인들이 해당 서비스를 이용할 턱이 있겠냐”고 지적했다.

더욱이 아이를 출산한 여성장애인 통계마저 출산지원금을 수령한 이들의 숫자로, 정확한 여성장애인의 출산 통계는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

광주시 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는 “국내 대부분의 장애인 복지 제도는 모두 ‘신고주의’다. 신고주의는 무지하면 이용할 수 없다. 장애인 콜택시만 하더라도 글자를 읽지 못하는 장애인은 이용법을 모르지 이용할 수 조차 없다”며 “여성장애인이 출산신고를 하는 순간부터 모든 서비스를 안내받고 신청하지 않더라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되야 한다”고 말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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