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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대구 골목 예술 여행… 병원부터 창고까지 일상 쓰다듬는 예술

 

일상. ‘매일 반복되는 보통의 일’. 2년 가까이 아득히 멀게 느껴지던 이 단어가 어느새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곳곳에서 단계적 일상 회복을 준비하는 긴장감과 설렘 속에서 대구로 향했다. 한순간 믿을 수 없을 만큼 거리가 텅 비었으나 이제 다시 여느 때처럼 인파로 넘치는 활력의 대도시. 이곳의 오래된 골목이라면 보통의 일상을 마중하기에 맞춤이다. 길잡이는 예술이다.

 

동산병원 외벽엔 지친 시민 위로하는 사진 전시

‘대구의 인사동’ 봉산문화거리엔 화랑과 카페 즐비

대구문화예술회관, 눈길 잡는 대구사진비엔날레

연초제조창 고친 수창청춘맨숀, 공간 자체가 전시

 

 

 

■대구동산병원에서 청라언덕으로

 

여정의 시작은 대구 중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앞이다. 대로를 사이에 두고 서문시장 입구와 마주보고 있는 일자 모양의 붉은 벽돌 건물은 등록문화재다. 대구 최초의 서양의학병원인 제중원을 전신으로 선교사 플레처가 1931년 신축했고,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 때는 경찰병원으로 사용됐다. 그리고 지난해 코로나19 1차 대유행 극복의 중심지였다. 계명대 동산병원은 2019년 4월 본원을 달서구로 이전하고 이곳에 일부 기능만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병원 전체를 격리 병동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 병원 건물 뒤편 옛 선교사사택에서 시작해 3.1만세운동길로 이어지는 청라언덕은 중구 골목투어의 핵심 코스이기도 하다.

 

 

올해 8회를 맞은 대구사진비엔날레는 코로나 사태로 지친 시민을 위로하기 위해 전시장을 일상 속 생활 공간으로 확대하면서 대구동산병원과 청라언덕 일대를 야외 전시장으로 택했다. ‘대구 근현대의 역사적 배경 위에 시간적, 공간적 층위가 축적돼 시민들에게 소속감과 정체성을 부여한다’는 주최 측의 설명은 이 공간의 의미를 요약한다. 응급실 외벽부터 시작된 전시는 병원 주차장 입구와 야외주차장, 옛 어린이집까지 이어진다. 집에서 혼자 고립된 사람(줄리아 풀러튼-배튼)이나 거대한 혹등고래(장남원) 사진과 의료진 등이 직접 찍은 사진들로 꾸민 기획전시(히어로즈2020)를 보면서 걷다보면 청라언덕 입구가 나온다.

 

 

청라언덕은 100년의 이야기를 품은 아름다운 언덕이다. 계명학교 선교사들이 거주한 벽돌주택들은 각각 선교와 의료, 교육역사박물관으로 남았다. 언덕 서쪽의 계성학교 학생이던 작곡가 박태준이 언덕 아래 신명여학교 학생을 짝사랑한 이야기로 이은상이 노랫말을 쓴 가곡 ‘동무생각’의 무대도 이곳이다. 두 학교 학생들이 경찰의 감시를 피해서 만세운동 현장으로 향하던 3.1만세운동길 계단을 내려서면 곧바로 1902년 건축된 계산성당과 일제강점기 저항시인 이상화의 고택이다. 시인은 여기에서 ‘일생 가운데 오는 젊음은 복스럽다는 인간의 못 감출 설움일러라’로 끝나는 시 ‘서러운 해조’를 쓰고 마흔 셋에 요절했다.

 

 

■봉산문화거리와 대구사진비엔날레

 

다음 목적지는 ‘대구의 인사동’이라 불리는 봉산문화거리다. 대구도시철도 1·2호선 환승역 반월당역 지하상가를 통과해 9번 출구로 나온 뒤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된다. 600m 남짓한 거리 좌우로 화랑 20여 곳이 늘어서있고 오래된 필방과 새로운 감각의 카페가 어깨를 맞대고 있다.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조성된 거리 곳곳의 조각 작품들도 거리의 활기를 돋운다.

 

 

갤러리들은 연중 다양한 전시를 선보이고 있으니 마음 닿는 대로 들어서면 된다. 지금은 ‘숯의 작가’ 이배 전시(우손갤러리)에서 ‘이수 뒤 푸(Issu de feu, 불에서부터)’ 시리즈의 압도적인 검정색을 만날 수 있다. 한국 1세대 추상 작가 이세득 탄생 100주년 기념 순회전시(갤러리CNK)에서는 말년으로 갈수록 단순하고도 역동적으로 변해가는 추상을 따라가본다. 건들바위역사공원 위 복합문화공간 클리프1912에서는 알고리즘 이미지와 태양계 행성 데이터 등을 예술로 표현한 ‘코드 데이터 아트’ 전시(보이드갤러리)를 보고 정원과 함께 붙어있는 서점 ‘대봉산책’과 베이커리 카페를 즐겨도 된다.

 

대구사진비엔날레의 주 전시장은 대구문화예술회관이다. 올해는 ‘누락된 의제-37.5도 아래’라는 주제전시를 중심으로 32개국 351명 작가가 참여했다. 코로나 사태로 제시된 ‘표준’ 이면의 이야기들이라는 테마는 고깔 모자의 남자가 등장하는 ‘2020년 만우절’ 시리즈(어윈 올라프)와 노숙자를 열화상 카메라로 기록한 ‘바이러스’(앙투완 다가타) 등에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패션화보와 범죄현장을 결합한 ‘하이패션 범죄 현장’(멜라니 풀렌), 전쟁과 여성성을 표현한 마사 로슬러의 포토몽타쥬 작품도 있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히치하이킹으로 예루살렘까지 가는 ‘여행 중인 신부’ 퍼포먼스 도중에 납치, 살해된 피파 바카의 모습 앞에서는 쉽게 발걸음을 떼기 힘들다.

 

특별전시 ‘신념’에서는 기록 매체인 사진의 박력을 느낄 수 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김경훈 로이터 기자의 ‘중남미 이주민, 캐러밴’, 북극의 변화를 기록한 에스더 홀바트의 사진, 무속 사진을 전문으로 작업하는 박찬호 작가의 ‘귀’ 시리즈 등이 눈길을 끈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이 있는 두류공원에는 놀이공원 이월드와 한바퀴 걷기 좋은 성당못도 있다.

 

 

■수창청춘맨숀에서 서문시장으로

 

수창청춘맨숀과 대구예술발전소는 붙어있다. 각각 KT&G 연초제조창 직원 아파트와 창고가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경우다. 수창청춘맨숀은 1976년부터 1996년까지 관사로 이용되다가 1999년 전매청 폐쇄 이후에 20년 가까이 방치됐다. 그러다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의 폐산업시설 활용 문화재생사업에 선정돼 리노베이션을 했는데, 낡은 건물 외벽과 관리동을 사이에 두고 디귿 자 모양으로 이어지는 건물 내부 구조를 그대로 살려서 전시실과 청년예술가 입주 창작 공간, 공연장과 아카이브실 등으로 꾸몄다. 대구예술발전소도 마찬가지로 전시실, 아카이브, 창작 스튜디오 등으로 활용된다.

 

지금 수창청춘맨숀 전시실에서는 예술과 삶의 연속성을 주제로 15명 작가가 참여한 기획전 ‘스파이럴 라이프’가 열리고 있다. 매체도 표현 방식도 다른 전시도 흥미롭지만 공간의 매력이 상당하다. 시멘트 벽돌과 배관, 거친 콘크리트 벽과 좁은 계단, 뜯어낸 배전함 공간 등 옛 ‘맨션’의 특징을 그대로 살린 공간은 공간 그 자체로 하나의 전시다. 재생 과정과 이 곳에 살았던 주민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공간에서는 없애지 않고 남겨둔 것들이 도시 전체에 얼마나 뚜렷한 인상을 남기는지 새삼 깨닫는다.

 

대구예술발전소는 더 크고 본격적인 전시공간이다. 지금은 대구근대역사관의 소장유물과 입주 작가들의 콜라보 전시 ‘모던타임즈’와 가창초등학교 우록분교를 리노베이션한 가창창작스튜디오의 현대미술 작가들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우리 곁의 모든 곳’을 선보이고 있다. 4층 홀의 커다란 달 소재 작품 ‘문 플라워’(변지현 작가) 앞에는 주말이면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수창청춘맨숀에서는 대구도시철도 3호선 달성공원역이 가깝다. 3호선은 2015년 전국 최초로 개통한 모노레일 지상 열차다. 달성공원역에서 서문시장역을 지나 청라언덕역까지는 짧지만 도심 공중을 달리는 모노레일을 경험하기 좋은 구간이다. 청라언덕역에서 낮과는 또다른 운치가 있는 청라언덕의 야경을 통과해 서문시장 야시장에서 허기를 해결할 수 있다. 유서 깊은 전국 3대 시장 서문시장은 야시장으로도 유명하다.

 

 

■대구 여행 팁

 

제8회 대구사진비엔날레는 11월 2일까지 계속된다.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는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된다. 단, 낮 12시부터 2시간 동안은 방역 관리를 위해 관람을 할 수 없다. 백신 접종 완료자에게는 관람료를 50% 할인해준다. 우손갤러리의 이배 작가 전시는 11월 19일까지, 갤러리CNK의 이세득 탄생 100주년 기념 순회전시는 10월 31일까지, 보이드갤러리의 ‘코드 데이터 아트’ 전은 10월 30일까지 계속된다. 갤러리마다 운영 시간이 다르니 확인해보고 가는 게 좋다. 수창청춘맨숀과 대구예술발전소는 사전에 관람을 예약해야 한다. 월요일 휴관. ‘스파이럴 라이프’는 11월 28일까지, ‘우리 곁의 모든 곳’은 10월 28일까지 계속한다. 대구미술관이 프랑스 매그재단과 공동으로 마련한 개관 10주년 기념전 ‘모던 라이프’도 지난 19일 개막해 내년 3월 27일까지 이어진다. 마르크 샤갈의 대표작 ‘삶’을 비롯해 자코메티, 칼더, 이우환 등 세계적인 작가 78명의 작품 144점을 선보인다.

 

글·사진=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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