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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걷다가 철과 불을 만났다…걷다가 동해 물 위에 섰다

걸어서 만난 포항

 

걷기 좋은 계절, 경북 포항을 두 발로 걸어서 만났다. 한 번은 폐철도에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도심을, 또 한 번은 영일만을 끼고 바다 위와 어촌 마을을 걸었다. 2019년 포항시 승격 70주년을 맞아 시민과 관광단체가 재선정한 포항 12경 가운데 새로 진입한 포항 철길숲과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이다. 대한민국 최동단의 바다, 철강과 해병대의 도시 포항을 가장 가까이 느끼기에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포항 철길숲

시내 관통하는 폐철도에 조성한 산책로

66톤 얼굴 실루엣 비롯 곳곳 철 조형물

꺼지지 않는 ‘불의 정원’ 신기한 볼거리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해안선 따라 호미곶까지 이르는 덱로드

지질공원 방불케 하는 기암괴석 경연장

걷는 내내 영일만 포스코·시가지 풍경


 

 

 

 

 

 

■포항 철길숲과 불의 정원

 

폐철도를 산책로와 공원으로 만든 사례는 멀리로는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 가까이로는 부산 그린레일웨이가 있다. 포항 철길숲은 부산 그린레일웨이와 연원이 같다. 부산에서 출발해 포항을 지나던 동해남부선이 KTX 고속철도 신설로 이전한 자리에 포항시가 조성했다. 2011년 1단계(옛 포항역~유성여고) 2.3km 구간에 이어 2019년 2단계(효자역~옛 포항역) 4.3km 구간까지 총 6.6km 구간이 개통했다. 연간 1000만 명의 시민과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면서 포항시는 오는 10월 포항공대를 지나 형산강 인도교까지 2.7km 구간을 연장할 계획이다.

 

부산 그린레일웨이가 동부산 해변을 따라 관광지와 아파트숲을 지난다면 포항철길숲은 아파트 단지와 상권이 밀집한 포항 남구 시내를 동서로 관통한다. 이 중에서도 대잠아델리아 아파트 앞에서 출발해 북쪽 방향으로 대잠고가차도 아래를 지나 ‘불의 정원’ 앞까지 가는 구간을 소개한다. 포항철길숲의 매력을 느끼기에 최적의 구간이다. 길이는 약 1km, 천천히 왕복해도 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다.

 

기본적으로는 철길을 따라 만든 직선 산책로지만 좁거나 단조로운 느낌은 없다. 부지 너비 자체가 꽤 넓어서 아스팔트 산책로를 중심에 두고 오른쪽 위로는 곳곳에 경사로가 있는 자전거도로(보행 겸용)를 따로 만들었다. 왼쪽으로는 오솔길 같은 흙길이 있는 구간도 많다. 팽나무숲, 유아놀이숲, 오크정원 같은 녹음의 테마 공간을 걸을 수도 있고 음악분수 광장을 비롯해 벤치와 휴게시설도 많아서 공원에 더 가깝다.

 

모든 길에는 두 줄 철로의 흔적을 그대로 남겼고, 곳곳에는 일련번호가 선명한 콘크리트 침목 사이 자갈이 깔린 옛 철길도 살렸다. 특히 철을 소재로 한 조형물을 비롯한 다양한 조각작품들은 걷기를 풍요롭게 만드는 동시에 포항 철길숲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철강기업과 함께하는 공공미술 축제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출품작을 비롯한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다.

 

포스코와 이용덕 작가가 협업한 ‘만남 2017’은 철판 수백 장을 겹겹이 쌓아올려 사람 얼굴 모양 실루엣의 터널을 만들었다. 그 아래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커플의 모습에서는 66톤이라는 철판의 위압감은 느낄 수 없다. 이이남 작가의 ‘코가 길어진 피노키오’가 서있는 야트막한 언덕도 아이들의 놀이터다. 힘차게 걷는 거대한 사람 모양의 ‘두두프로젝트-내일로’(박발륜 작가) 아래로 남녀노소 반려견도 함께 걷는다.

 

화장실이 있는 관리동을 지나면 대잠고가차도 아래 너른 한터광장이다. 자전거와 보드를 타는 아이들을 지나치면 하늘을 향해 달리는 증기기관차 모형이 있는 소공원이 나오고, 이어 ‘불의 정원’이 나타난다. 2017년 3월 철길숲 공사 과정에서 굴착기로 지하 200m까지 지하수 관정을 팠는데 천연가스가 올라오더니 불이 붙었고, 불이 꺼지지 않자 당시 모습을 재현해 볼거리로 만들었다.

 

이 불은 3년 9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6시간 30분 동안 꺼졌다가 저절로 재점화됐다. 불꽃에 꺼지지 않는 희망을 투사한 포항 시민들도 아쉬워하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불꽃은 아직까지는 활활 타오르고 있다. 주변은 방화유리벽으로 에워싸서 전혀 위험하지 않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한반도를 호랑이 형상으로 볼 때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호미곶은 대한민국에서 해가 가장 빨리 뜨는 곳으로 유명하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영일만을 이루는 호미반도의 해안선을 따라서 호미곶을 향해 동쪽으로 뻗어나가는 걷기 길이다. 포항시가 2015년부터 조성해 2017년 7월 포항 남구 청림에서 호미곶광장까지 이르는 코스를 완전 개통했다. 총 길이 24.4km는 4개 코스로 나뉜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줄여서 호미둘레길 중에서는 1코스의 일부와 2코스, 4코스를 걸었다. 2코스는 동해면 입암리에서 흥환간이해변을 지나 흥환어항까지 이어지는 선바우길(6.5km), 4코스는 구만리 독수리바위에서 호미곶 해맞이광장까지 가는 호미길(5.3km)이다. 1코스 연오랑세오녀길(6.1km)에서는 해병대 복지시설인 청룡회관에서 종점까지 0.6km 구간을 포함했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의 ‘썸네일’은 바다 위에 기암괴석을 따라 만든 덱로드다. 이 풍경은 2코스의 시점인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에서 출발해 2km 이상을 걸어가야 나온다. 절벽 아래 위태로운 자갈길 구간을 포함해서 입압마을 어촌풍경을 지나서 드디어 삐죽하게 솟은 ‘선바우’를 수문장처럼 두고 해상 덱로드가 시작된다. 말 그대로 ‘바다 위’를 걷는 구간은 선바우~하선대, 흥환간이해변 직전 구간을 더해 1km 남짓이다.

 

이 길의 매력은 여럿이다. 우선 바다다. 왼쪽으로 동해의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데, 바다 건너로는 영일만의 포스코와 그너머 포항 시가지 풍경이 내내 따라붙는다. 동그렇게 파들어간 포항의 상징 영일만을 바라보면서 바다 위를 걷는 것이다. 게다가 이 바다는 거리는 물론 높이도 가까워서 바람이 센 날에는 부서지는 바닷물이 목재 덱을 넘어 발목까지 튀어오른다. 그야말로 물 위를 걷는 느낌이 물씬하다.

 

절벽과 바다에 줄줄이 나타나는 기암괴석은 이 길이 조성되기 전에는 접근은 물론이고 관람조차 불가능했던 명물이다. 수천만년 전인 신생대 화산활동의 결과물이다. 선바우를 비롯해 일부는 자갈 모양이 드러나는 검은 바위고, 사람도 숨을 만큼 크게 구멍이 패인 힌디기는 화산성분의 백토로 형성돼 흰 색을 띤다. 여왕바위, 군상바위처럼 모양 따라 이름이 붙은 기기묘묘 바위들은 지질공원이라 하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4코스는 호미곶 해맞이광장에서 출발해 역방향으로 걷는 게 낫다. 거대한 원 모양의 새천년기념관과 바다에서 솟아오른 ‘상생의 손’ 조각을 뒤로 하고 구만리 어촌마을 해안 도로변을 따라 ‘까꾸리개’라 불리는 독수리바위까지 간다. 포항에서도 바다가 거칠어서 풍파가 심하면 청어떼가 갯바위까지 떠밀려와 까꾸리(갈고리)로 쓸어담았다는 게 이 바위 이름의 유래다. 도중에는 대보항 등대 방파제의 트릭벽화도 있다.

 

시간이 많지 않거나 보행 약자가 포함된 가족이라면 1코스의 끝 부분인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청룡회관 구간을 추천한다. 완만한 경사로 일부를 제외하면 평탄한 무장애 산책로가 울창한 솔숲 사이로 평화롭게 이어진다. 청룡회관 카페에서 차 한 잔을 하고 돌아오면 딱 좋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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