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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당신이 알던 박물관은 잊으라, 보지 못한 '진경'이 펼쳐진다

진주·경주 박물관 여행

 

오늘의 지층을 이루는 역사와 시간을 견디고 남은 유물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박물관이 시공간을 넘나드는 흥미진진한 여행지가 될 수 있는 이유다. 먼지 쌓인 진열장을 벗어나 새로운 관점과 구성의 전시로 나날이 진화하고 있는 요즘의 박물관, 국립진주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을 찾았다. 옛날에 가봤다고 해도 방문한 지 3년이 넘었다면 당신이 알던 그 박물관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장마와 무더위가 이어지는 여름이라면 박물관만큼 쾌적한 여행지를 찾기도 힘들다.

 

새로운 관점·구성으로 진화하는 박물관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 ‘국립진주박물관’

입체적 벽면 스크린·VR 영상 적극 활용

삼국 실물 무기 350여 점 비교 전시도

 

상설전시실 새로 꾸민 ‘국립경주박물관’

개방형 공간에 여백 살려 유물 집중 전시

관람객에게 열린 수장고 ‘신라천년보고’

 


 

■무기와 일기로 만나는 임진왜란

 

진주성에 갔더라도 국립진주박물관은 놓쳤을 수 있다. 공북문으로 입장할 경우 남강을 정면에 두고 왼쪽에 대표적인 명소 촉석루와 의암이 있고 오른쪽 끝, 기와 지붕을 목탑처럼 겹쳐얹은 나즈막한 2층 건물이 박물관이다. 진주성 경관 속에 녹아든 건축은 김수근의 작품이다.

 

국립진주박물관은 1984년 개관했고, 1998년 국립박물관 특성화 전략에 따라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으로 재개관했다. 2008년 리모델링에 이어 2018년 11월 30일 상설전시실인 임진왜란실을 확대하고 역사문화홀을 신설했다. 전시 내용과 구성, 관람 동선도 이때 대폭 바뀌었다.

 

메인 상설전시실인 임진왜란실은 임진왜란이라는 단일 주제를 과감하게 파고든다. 지역의 각종 유물을 연대기 순으로 망라하는 진열도, 민족주의적인 시각에서 국난 극복을 강조하는 서사도 여기에는 없다. ‘동아시아 7년 전쟁, 임진왜란’이라는 제목 아래 전시는 임진왜란을 16세기 대항해 시대라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한·중·일 삼국이 저마다 다른 목적으로 벌인 동아시아 전쟁으로 접근한다.

 

디지털 기술과 영상의 적극적인 활용은 전시 도입부부터 힘을 발휘한다. 지도 위에 시대별 주요 사건을 동적인 이미지로 시각화한 연표를 지나면 강렬한 색감의 그림으로 7년 전쟁을 요약한 영상이 정면과 좌우 3개 벽면 스크린에 펼쳐진다. 임진왜란이라는 책 속 역사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효과적인 프롤로그다.

 

임진왜란실은 3부 구성으로 나눠 보물 14건을 포함해 277건 700여 점 유물을 선보인다. 전쟁과 무기 마니아라면 삼국의 무기 실물 350여 점을 볼 수 있는 2부가 흥미로울 것이다. 모두 보물로 지정된 조선의 화약무기 천자·지자·현자·황자총통과 중완구·대완구는 처음으로 한데 모여 전시됐다. 총통과 조총이 등장하기 전 명대의 화려한 의장용 칼 청룡언월도와 전장의 상대를 두렵게 한 길고 무거운 일본도도 있다.

 

슬슬 다리가 아플 때쯤 상설전시실 마지막에 역사문화홀이 나타난다. 벽면을 천장까지 채우는 가로 10m, 세로 5m 초대형진열장에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400여 점 문화재를 전시하고, 계단식 휴식 공간에 설치된 모니터에서 궁금한 유물의 설명을 찾아볼 수 있게 했다. 표정이 살아있는 사람 머리 모양 토기의 설명을 보니 5세기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뮤지엄숍에서 미니어처 기념품을 발견해 얼른 샀다.

 

특별전시 ‘오희문의 난중일기 〈쇄미록〉-그래도 삶은 계속된다’(8월 15일까지)는 조선시대 평범한 양반 오희문이 9년 3개월 동안 쓴 피난 일기 〈쇄미록〉을 통해 임진왜란의 이면을 전한다. 인터랙티브 VR(가상현실) 영상으로 막내딸의 죽음 같은 책 속 장면을 재현하는 대목은 특히 감동적이다. 이밖에도 낱말 카드, 인맥 관계도 등 다양한 기법과 구성 덕분에 420년 전 조선의 가장이 이웃처럼 애틋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한다. 월요일은 휴관. 관람료는 무료지만 진주성 입장료(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 초등학생 600원)를 내야 한다. 진주성은 오후 11시(11~2월은 오후 10시)까지 개방되니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성 전투의 현장에서 밤 산책을 즐겨도 좋다. 박물관 마당의 국보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도 놓치지 말자.

 


 

■새로운 공간에서 만나는 신라 천년

 

국립경주박물관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경주역사유적지구 내에 있다. 1945년 개관했고 지금 자리로 온 건 1975년이다. 박물관 정문에서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1200여 점 유물로 신라의 천년 역사를 다루는 신라역사관이다. 신라의 태동부터 황금문화, 삼국통일과 통일신라를 다룬 4개 전시실을 2018년부터 순차적으로 리모델링했고 지난해 12월 전면 재개관했다.

 

신라역사관 전시실에 들어서면 받는 첫인상은 개방감이다. 벽면에는 천장 높이의 전면 유리 진열장 안에 유물을 시원시원하게 배치했고, 중앙에도 관람 동선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대신 전시품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볼 수 있게 했다. 나무 마루바닥과 천장 구조물, 통유리 진열장과 효과적인 조명 덕분에 딱딱하고 지루한 기운은 전혀 없고 모던하면서도 편안한 어느 저택에 초대된 느낌이다.

 

전시 방법도 인상적이다. 사로국 지배자 무덤으로 알려진 널무덤과 덧널무덤은 발굴 당시 모습을 재현해놓았고, 대표 문화재인 천마총 금관은 세심한 핀조명 아래 단독으로 감상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기와나 사람 모양 토용, 신라의 상징인 얼굴무늬 수막새는 진열장의 여백을 살려 유물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 신라 관등제와 중앙·지방 정부 간 관계를 볼 수 있는 국보 포항 중성리 신라비는 재개관과 함께 처음 상설전시됐다.

 

신라역사관 전시실을 연결하는 중앙홀은 박물관 공간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옥과 신라 토기를 모티브로 했다는 인테리어는 홀 정중앙에 진열장 없이 전시한 굽다리 접시와 토기, 천장 구조물에서 떨어지는 조명, 홀 끝 통창으로 들어오는 야외의 신록과 어우러지면서 심플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박물관이 밝힌 콘셉트는 휴식과 치유다.

 

신라미술관의 성덕대왕신종 소리체험관은 박물관 정원에 전시된 성덕대왕신종의 주종 1250주년을 맞아 올 2월 공개된 전시 콘텐츠다. 초고화질 입체영상과 몰입형 입체음향 시스템, 3D 프로젝션 맵핑 등 첨단 기술력을 동원해 신종의 제작 과정을 비언어극으로 풀어낸다. 지난해 10월 17년 만에 이루어진 타음 조사에서 녹음된 음원을 바탕으로 작업한 종소리는 1250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여전히 영혼을 울린다.

 

신라역사관 뒷편으로 옥골교라는 작은 다리를 건너면 나오는 영남권수장고 ‘신라천년보고’도 놓치면 아쉬운 공간이다. 영남 지역에서 출토된 매장 문화재 60만여 점을 보관하기 위해 국가귀속 발굴매장문화재 전용으로 신축돼 2019년 5월 개관했다. 사찰과 왕경 무덤 유적, 토기와 기와 등 수장고의 일부 유물을 일반 관람객이 볼 수 있도록 전시한 개방형 수장고와 복원, 보존 등 문화재 관리 과정을 보여주는 로비 전시실이 흥미롭다.

 

순차적인 리모델링이 시작된 신라미술관, 사찰 사진 특별전시 ‘천년 묵은 옛터에 풀은 여전히 새롭네’(10월 3일까지), 신라 왕궁터인 동궁과 월지(옛 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한 월지관 등이 모두 보석 같지만 경주국립박물관의 백미는 옥외 전시다. 국보 고선사터 삼층석탑부터 머리 따로, 몸통 따로, 대좌 따로 발견돼 합체된 구부정한 관음보살과 그저 돌무더기 같은 천년 전 주춧돌까지 ‘뱀·벌 조심’이라는 팻말 뒤에 무심히 늘어선 정원을 산책하는 것은 이 곳이 아니면 겪을 수 없는 독보적인 경험이다.

 

월요일도 쉬지 않고 평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토요일과 공휴일은 오후 7시까지 문을 연다. 관람료 무료. 3월부터 12월까지 매주 토요일과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은 오후 9시까지 야간개관도 한다. 야경이 더 아름다운 동궁과 월지, 7월이 절정인 연꽃단지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 여름 밤 여행지로 제격이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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