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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대구, 이 동네를 구하라] 대명3동, 비산2·3동…"재개발로 주민들 떠나"

③과거에 멈춰버린 곳: 대명3동,비산2·3동
남구 대명3동…학생들 사라진 원룸골목 침체, 시장 주변은 우범지대로 변해
인근 고층 아파트 들어서 고립, 빈민촌 취급할까 걱정만 쌓여
서구 비산2·3동…미로와 같이 비좁고 낡은 동네, 방치된 노인·1인 가구가 전부
도시재생 통해 소통공간 조성…주민들은 모르거나 이용 안 해

 

 

 

▷대명3동

 

◆정겨운 풍경 대신 낡은 모습만

 

지난 20일 계명대 대명캠퍼스 주변 원룸 골목에는 집집마다 붙어있는 '방 있어요' 전단지가 바람에 나부꼈다.

 

그곳에서 줄담배를 피던 호석환(가명·70) 씨는 자신을 '가난한 건물주'라고 소개했다. 이곳에 빌라를 지어 세를 받으며 살고 있지만 생계는 빠듯하단다. 호 씨의 빌라는 모두 8가구. 이 중 자신의 집을 포함해 4가구에만 사람이 살고 있다. 나머지는 꽤 오래 비어 있는 상태다. 과거에는 계명대와 심인중·고교 영향으로 이곳에 들어오려는 학생들이 줄을 섰지만, 이제는 기존 세입자마저 다른 곳에 갈까 걱정돼 월세를 계속 내려야할 처지다.

 

그는 "대명3동은 노후화한 건물 탓에 동네 분위기가 침체돼 더 이상 이곳을 찾는 이들이 없다"고 했다.

 

호 씨의 빌라에서 몇 걸음을 옮기자 다닥다닥 붙어있는 주택과 빌라가 눈에 띄었다. 건물 사이 간격이 50㎝도 안 되는 이러한 모습은 20년 전 이루어진 주거환경개선지구 사업의 결과물이다.

 

주민과 남구청에 따르면 당시 대명3동은 좁은 땅을 이웃과 함께 사용하자는 취지에서 주거환경개선이 진행됐다. 주민들 역시 서로를 잘 알고 있었던 터라 이웃과 좁은 간격을 두고 맞닿아있는 걸 꺼리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웃 간의 정'은 '사생활 침해'로 바뀌었다. 창문을 열면 옆집이 바로 보이는 구조라 마음 편히 씻지도 못한다.

 

계명대에서 대명시장으로 가는 길. 주택 대문의 모습은 낙후한 주거환경을 그대로 드러냈다. 계명대 인근의 '스테인리스 대문'은 대명시장 쪽으로 갈수록 '녹이 가득 한 대문'으로 바뀌었다. 도둑이 담을 넘지 못하도록 깨진 병조각을 담장 위에 꽂아둔 모습도 흔했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대명3동에서도 계명대 쪽에 비해 대명시장 인근은 더 침체돼 우범지대에 가깝다. 좁은 골목길이 많아 밤이 되면 무섭고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집도 있다"며 "인근 재개발로 주민들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대명시장 상인 대부분이 최저시급도 못 버는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했다.

 

 

◆주변 개발에 고립된 섬으로 남나

 

집 앞에서 친동생과 담배를 피우고 있던 윤미자(가명·79) 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대구대 대명동캠퍼스~성당시장네거리 구간에 들어서는 '대명3동 뉴타운 주택개발사업지'를 보고 있자니 답답함과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윤 씨와 이웃 주민들은 "개발이 싫다"고 입을 모았다. 자신들의 집을 둘러싼 지역이 개발되면서 마치 '새장'에 갇힌 기분이 들어서다. 고층의 아파트가 여기저기 올라가면서 고립감이 심해지는 것이다.

 

'물리적 고립'보다 더 두려운 건 '심리적 고립'이다. 재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서면 그나마 동네에 남아있던 이웃의 온정마저 사라질까 무섭다.

 

윤 씨는 "아파트와 낙후된 주택 간의 미관 차이가 심해 아파트 입주민들이 기존 주민들을 '빈민'으로 취급하진 않을까 걱정이 크다"며 "그래도 대명3동은 남은 노인들끼리 얘기라도 주고받으면 사는데, 개발로 모두가 흩어져 이런 문화마저 사라질 것 같다"고 했다.

 

주민들이 서로 만날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공원이라도 필요하지만, 대명3동에는 명동공원 하나밖에 없다.

 

주민 이무영(가명·52) 씨는 "아침밥을 먹고 공원으로 나오는 게 이곳 주민들의 일상이다. '고등어 어디서 샀노', '이번 김장은 언제 하노' 등의 대화가 전부지만 이를 통해 삶의 활력을 얻고 있다"며 "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복지관에서 지원해주는 '쌀'이 아니라 '대화'다. 새롭게 들어오는 주민들과도 벽을 치기보다 함께 어울리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산 2·3동

 

 

 

◆서구의 유일한 '옛정' 동네라지만

 

"그땐 젊은 사람들도 많이 살았고 아이들도 많았지…."

 

중구와 경계 지역인 서구 비산2‧3동. 미로 같은 골목의 집들 사이에서 '끼익' 소리를 내는 대문을 열고 박창식(가명·72) 씨가 걸어 나왔다. 박 씨는 지난 30년 동안 섬유염색업종에 종사했다. 이곳저곳을 옳겨다니며 아들 두 명을 키워냈고 현재 이곳에서 아내와 둘이서 살고 있다.

 

섬유산업 쇠퇴와 함께 사람의 발길이 없어지자 비산2‧3동도 낡아갔다. 집 주인들은 저렴한 값에 방을 내놓았고, 그때부터 홀몸노인과 기초생활수급자의 유입이 늘었다.

 

비산2‧3동의 한 여관. "숙박할 만한 방이 있느냐"는 물음에 여관 주인은 1층의 방 하나를 소개했다. 주인을 따라 들어선 방은 TV 한 대와 이부자리가 전부였다. 키 160㎝의 사람이 혼자 누워도 다리를 구부려야 할 정도로 좁았다. 공동화장실은 한 사람도 제대로 앉기 힘들 만큼 비좁고, 샤워기는커녕 겨우 세면대 하나뿐이었다.

 

골목 벽화와 바닥에 나뒹구는 '불법 대출' 명함은 낡은 동네의 속사정을 말해주고 있었다. 한 골목 담장에는 막장 인생을 의미하는 비속어인 '엠생'이 적혀 있고, '당일즉시대출' 등을 알리는 명함이 길거리마다 뿌려져 있었다.

 

대출 명함을 줍던 김병오(가명·77) 씨는 "돌봐주지 않는 자식 때문에 수급자 자격도 못 얻고 이곳에 방치된 노인과 40‧50대 1인 가구가 많다. 다들 형편이 안 좋으니 이런 명함이 동네에 돌아다닌다"며 "골목 벽화에 '고려장' 이야기도 있다. 어머니를 버리려던 아들이 마음을 고쳐먹고 극진히 모셨다는 내용이다. 이곳에 혼자 남겨진 노인들의 바람과 같다"고 했다.

 

 

 

◆도시재생, 정작 주민을 위한 건 없어

 

서구청은 비산2‧3동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3년 전부터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했다. 동네 분위기를 밝게 끌어올리고자 담장에 벽화를 그리고, 길에 꽃을 심어 골목 정원을 가꿨다. 주민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주민커뮤니티센터와 공유부엌, 공방 등을 만들었다. 하지만 정작 이곳을 모르는 주민들이 수두룩했다.

 

달성토성마을 이야기골목길에 사는 김혜영(가명‧70) 씨는 구청의 소식을 주민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매월 '구청 소식지'를 들고 이웃을 찾지만 정작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고, 아예 쓰레기인줄 알고 버리거나 다른 집에 던져버리는 일도 빈번하다.

 

김 씨는 "애초 이웃끼리 교류가 없는데 구청에서 만든 공간에 누가 함께 모이겠냐"며 하소연했다. 7~8년 전만 해도 계모임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다 떠나간 뒤 모임도 해체됐고, 나이가 많은 주민들은 활동을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커뮤니티센터가 프로그램 현수막을 걸어놔도 정작 이를 보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였다.

 

우편함에 가득 꽂힌 우편물, 집배원이 남기고 간 도착 확인증은 그곳에 사는 사람이 바깥세상과 얼마나 단절돼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초인종을 계속 눌렀지만 대다수 주민들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 집 옥상에 널어놓은 빨래가 매일 달라지는 모습만이 '사람 사는 곳'임을 알려주는 유일한 표시다.

 

사랑의 연탄나눔 관계자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공유부엌, 공방은 정작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들이 이용하기가 힘들다는 게 문제다. 사실상 주민 전체를 위한 공간이라고 볼 수 없다. 홀몸노인 등 취약계층이 공유부엌에 식재료를 가져와 요리를 하진 않는다. 집에서도 끼니를 거르는 사람이 많다"며 "집마다 누가 살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등을 체계적으로 파악할 방안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허현정 기자 hhj224@imaeil.com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윤정훈 기자 hoony@imaeil.com 임재환 기자 rehwa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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