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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대구의 아픈 손가락?…하늘 코밑 '산격1동 서당골'·연로한 '범물1동'

[이 동네를 구하라] '하늘' 가까운 동네 산격1동의 서당골
'수성구민'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버틴다…'범물1동'

 

 

◆'하늘'과 가까운 동네 산격1동

 

▷'서당골' 이제는 산중턱에 고립된 섬

 

앞에는 신천이 흐르고 뒤에는 연암산이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역인 대구 북구 산격1동. 마치 '하늘'에 다가가듯 연암산을 한참 오르다 보면 '서당골'이 나온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달성 서씨들이 집성촌을 이뤘고 서당에다 구암서원까지 있어 서당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60년대 경북도청이 들어서고 3공단까지 개발되면서 이 마을은 한때 북적였다. 하지만 터를 잡았던 젊은 사람들이 외지로 떠나면서 서당골은 점차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다. 사람은 계속 줄어 원주민들만 남게 되면서 산 중턱에 고립된 마을로 남았다.

 

서당골에서 태어난 서석량(77) 씨는 20년 전 이곳에 되돌아왔다. 유년시절 서당골은 그에게 놀이터 같았다. 여름에는 신나게 언덕을 뛰어내려와 시원한 신천에 들어가 목욕을 했고, 겨울에는 언덕에서 얼음을 지쳤다. 하지만 서당골을 다시 찾았을 땐 이곳은 더 이상 놀이터가 아니었다. 겨울철 언덕은 얼음판으로 변해 오르기가 쉽지 않고 내려올 때도 가팔라 자칫 무릎을 다치기 쉬웠다. 서 씨는 60세가 넘은 이후부터는 아래로 내려가는 일을 줄였다.

 

오르막은 주민들을 더욱 고립시켰다. 서당골 오르막 끝집에 사는 서일수(87) 씨는 2005년 이웃에게 일어난 일을 끄집어냈다. 이웃주민 쓰러졌지만 서당골의 좁은 골목으로는 구급차가 도저히 들어올 수 없었다. 결국 시간이 너무 지체된 탓에 이웃주민은 세상을 떠났다.

 

이곳에서 가장 젊다는 주민 권오관(65) 씨는 이런 서당골의 교통환경을 개선시키고자 매번 발로 뛰고 있다.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서당골 주민들이 가장 바라는 마을버스 도입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마을버스가 운영된다는 말이 수년 전부터 돌았지만 정작 진행이 된 건 없었다. 권 씨는 미니버스라도 요구했지만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돌아오는 대답은 '안 된다'는 말 뿐이었다.

 

권 씨는 "노인들 대부분 복지관에 가려고 해도 오르막의 연속인 산이 가로막고 있다. 결국 시간이 몇 배나 걸려 산을 빙 둘러 갈 수밖에 없다. 복지관은 그림의 떡이고 서당골에 들어오는 것마저 힘든 주민들은 집에만 있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강 건너 고층아파트…옆 동네와 격차 커

 

산격1동은 노인인구와 사망자,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에서 모두 높은 비율을 보였다. 지난해 노인인구 비중은 대구의 농촌지역 3곳을 제외하면 가장 높았다. 또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비율 역시 대구 141개 동 가운데 각각 4위, 1위다. 서당골 밑자락에 있는 1천80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영구임대아파트인 '산격주공아파트'의 영향이 크다.

 

8일 정오쯤 찾은 산격주공아파트 단지에 있는 한 분식점. 5개의 테이블만 있는 좁은 이곳에는 금세 주공아파트 주민으로 가득 차 일부 발걸음이 늦은 노인들은 문밖에서 줄을 서 기다리기도 했다. 이곳의 인기 메뉴는 국수‧수제비류. 치아가 성치 못한 대다수의 노인 손님들에게는 부드럽고 소주 안주로 어울리는 시원한 국물이 있는 국수와 수제비가 제격인 것이다.

 

이갑용(가명·63) 씨는 일주일에 두 번 수제비를 먹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매일 아내에게 받는 용돈 1천500원을 고이 모아 3천원짜리 수제비를 먹는 날만 기다리는 것이다. 소주 1병을 시켜 먹고 싶지만 주머니 상황이 여의치 않는다. 이런 그가 안타까운 주인장은 다른 손님이 마시다 남긴 소주 반 병을 이 씨에게 건넸다.

 

이 씨 부부는 전자부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22년간 일했다. 그러던 중 사고로 이 씨는 오른쪽 검지손가락이, 부인은 왼쪽 팔 전체가 절단됐다. 엄청난 병원비로 수중에 돈 한푼 남기지 못한 이 씨 부부는 이제 보리밥도 못 먹는 처지가 됐다. 그들의 한 달 끼니는 라면 2 박스가 전부다.

 

이 씨와 비슷한 처지의 이들이 사는 주공아파트에 대한 '외부' 주민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30년 전 이곳에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돌자 산격동 주민들은 개발에 들떠 있었지만 '임대아파트'라는 소식에 "속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주민들은 고층아파트들이 올라가는 강 건너 동네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봐야했다.

 

부러움은 차별과 배제로 이어지고 있다. 산격1동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산격1동 내 대산초교에 영구임대아파트 거주 아이들이 몰리자 무리해서라도 강 건너 침산동과 산격2동으로 건너가려 애쓰는 것이다.

 

산격1동의 한 어린이집 관계자는 "주공아파트 내 어린이집에 다니던 아이들이 우리 쪽으로 넘어오면 기존에 있던 아이들이 나가기도 한다. 침산화성파크드림 내 학부모들 일부는 아이가 산격1동에 있는 대산초교로 배정받자 교육청에 항의하기도 했다"고 했다.

 

 

◆'수성구민 자부심 하나로 버티는 범물1동

 

 

▷노인만 남은 동네…요구르트 사는 것도 '나의 하루'

 

수성구 범물1동 용지아파트 4단지 입구. 요구르트 판매원 박경숙(51) 씨가 단지 앞에 들어서자 그를 기다린 주민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다른 아파트의 경우 주민들이 선결제를 한 뒤 집으로 요구르트를 배달받지만, 용지아파트 주민들은 요구르트를 사러 수십 개의 계단을 내려온다.

 

박 씨는 "용지아파트 밖 사람들은 직장에 나가거나 별도의 일을 하지만 이곳에는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요구르트를 사러 나오거나 시장에 가는 게 본인들의 하루 일과가 됐다. 요구르트를 구매하면서 얼굴 도장 찍는 게 '나 살아있어요'라고 안부 인사를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아파트 값이 나날이 치솟는 수성구의 끝자락에 위치한 범물1동의 시간은 과거에 멈춰 있다. 30년 전 범물1동은 금융점포와 학원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몰려든 곳이었다.

 

하지만 범어동과 만촌동이 급부상하면서 이곳 역시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2020년 말 기준 범물1동의 주민 10명 중 3명(27.8%)이 65세 이상으로 수성구에서 노인 비중이 가장 높고, 기초생활수급자 비중은 25.5%로 범어3동(1.3%)에 비해 월등히 높다.

 

동네가 쇠퇴하면서 남아 있는 주민들은 존재감마저 사라질까 두렵다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 아파트 청소나 봉사활동으로 '살아있음'을 찾아나서기도 한다.

 

아픈 몸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된 용지아파트 주민 박모 씨도 그들 중 한 명. 가족과 헤어진 뒤 아파트 외벽에서 비계를 타면서 파이프 보수와 설치를 해왔지만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용지아파트로 들어왔다. 5년 전부터 왼쪽 손에 통풍이 생겨 일을 그만두게 된 후부터는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만 했다. 그 길로 박 씨는 홀몸노인과 장애인 이웃을 위해 도시락 배달 봉사를 했다.

 

박 씨는 "장갑을 끼지 않으면 손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아프지만 봉사만을 기다리고 있다"며 "일이 끊긴 후로는 봉사만이 내가 살아있다는 걸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이렇게라도 내 존재를 증명하면서 사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정작 노인 위한 시설은 없어

비슷한 시각 용지아파트 내 정자에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매일 정자에서 이웃 주민과 모여 차 한잔을 하며 담소를 나누는 게 하루 일과라는 A(65) 씨는 정자가 없었다면 노인들이 하루를 보낼 곳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범물1동에는 종합사회복지관, 노인복지관 두 곳이 있지만 많은 사람이 모이는 탓에 매번 헛걸음을 하고 다른 공간을 찾아나서야 했다.

옆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던 B(64) 씨도 말을 보탰다. 집안에서만 지내는 노인들이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밖에 나와 즐길 수 있는 문화시설이 필요한데 복지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한정적이라 노인들이 사실상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범물1동 안에 있는 4군데의 공원마저도 죄다 어린이공원이다.

그는 "어린이는 빠져나가는데 어린이공원만 남았다. 노인들이 갈 수 있는 공원이나 마음 놓고 산책할 곳이 없다. 외롭게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홀로 있는 노인들이 나올 수 있도록 복지관과 별개로 커뮤니센터가 필요하다"고 했다.

노인을 위한 취약점은 교통안전에서도 드러났다. 범물1동과 지산동의 폭 25m 경계 도로의 횡단보도 앞. 도로 앞 정육점 사장 C(63) 씨는 "노령층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이 횡단보도에서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 도로는 시속 40㎞ 제한이 있지만 대부분 차량이 제한속도를 지키지 않는 데다 보행자를 위한 신호등도 전혀 없는 상황이다.

C씨는 "어두운 야간에도 차량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차가 쌩쌩 달리는 이 도로에 거동이 불편하거나 전동휠체어를 끄는 노인들이 지나가는 걸 보면 겁이난다"며 "신호등을 설치해야 된다고 몇 번이나 건의했지만 설치된 건 점멸등 하나뿐이었다"고 말했다.

 

허현정 기자 hhj224@imaeil.com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윤정훈 기자 hoony@imaeil.com 임재환 기자 rehwa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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