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림강릉 1.3℃
  • 서울 3.2℃
  • 인천 2.1℃
  • 흐림원주 3.7℃
  • 흐림수원 3.7℃
  • 청주 3.0℃
  • 대전 3.3℃
  • 포항 7.8℃
  • 대구 6.8℃
  • 전주 6.9℃
  • 울산 6.6℃
  • 창원 7.8℃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순천 6.7℃
  • 홍성(예) 3.6℃
  • 흐림제주 10.7℃
  • 흐림김해시 7.1℃
  • 흐림구미 5.8℃
기상청 제공
메뉴

(부산일보) 가을 극장가 물들이는 부산 출신 두 배우 김혜수·장혜진 인터뷰

 

부산 출신 배우 김혜수와 장혜진이 가을 극장가를 다채롭게 물들인다. 두 사람은 12일 개봉한 영화 ‘내가 죽던 날’과 ‘애비규환’의 주연으로 관객을 찾았다. 이들이 나선 영화는 탄탄한 이야기와 배우들의 호연으로 이달 스크린을 가득 채울 기대작들. 영화의 다른 분위기만큼 두 사람이 연기한 개성 있는 캐릭터도 눈에 띈다. ‘차분한’ 형사로 변신한 김혜수와 ‘유쾌한’ 엄마로 돌아온 장혜진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각각 만났다.

 

영화 ‘내가 죽던 날’ 김혜수

“고통 속에서도 희망 찾길”

 

“저도 마음이 죽었던 날이 있었어요. 절망감에 휩싸여 위로가 절실할 때 이 작품을 만났죠.”

배우 김혜수(50)는 영화 ‘내가 죽던 날’과 만남을 ‘운명’이라고 했다. 수년 전 그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때 이 작품을 만났고, 연기를 하며 마음의 짐을 덜어 낼 수 있어서다. 그는 “삶의 벼랑 끝에 선 주인공에게 동질감을 느껴 출연을 결심했다”고 했다.

 

영화는 유서 한 장을 남기고 사라진 소녀를 추적하는 한 형사의 이야기를 그린다. 김혜수는 극 중 신체 마비와 이혼 소송 등으로 심신이 피폐한 형사 ‘현수’를 연기했다. 김혜수는 “작품 제목이 마음에 와닿았다”며 “많이 아팠던 사람이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손길을 내미는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고 했다. 그는 “살다 보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에 맞닥뜨린 순간이 있지 않나”라며 “그런 상황에 처한 현수의 감정이 저와 닮았다고 느꼈다”고 회상했다.

 

심신 피폐한 형사 현수 역 맡아

벼랑 끝 주인공 동질감에 출연

경험 녹이고 대사 직접 제안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희망 찾아”

 

 

김혜수는 지난해 오래전 연을 끊은 모친의 억대 채무 문제가 다시 불거지면서 홍역을 치렀다. 배우 생활 34년간 당당한 이미지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그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던’ 시기였다. 그는 “밖에 알려진 건 지난해지만 제가 처음 안건 2012년이었다”며 “일할 정신이 아니었다. 영화에 나오는 현수 대사처럼 ‘왜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털어놨다. 그의 경험은 이번 작품 곳곳에 녹아들었다. 수면제를 먹어야 겨우 잠드는 현수에게서 실제 자신의 모습을 봤다는 김혜수는 영화 대사를 직접 제안하기도 했다. “‘난 매일 꿈을 꿔. 꿈에서 난 죽었더라고. 죽어 있는 나를 보면서 누가 좀 치워라도 주지’라는 대사를 직접 썼어요. 제가 고통스러웠던 그 시간에 반복해서 꿨던 꿈이거든요. 현수의 마음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 싶어 대사를 추가했죠.”

 

이번 작품을 하면서 김혜수는 치유의 시간을 가졌다. 주인공이 사라진 소녀의 마지막 행보를 따라가며 자기 자신을 되찾는 걸 보며 마음의 위안을 느꼈단다. 극 중 ‘순천댁’을 연기한 이정은, 친구 ‘민정’으로 나온 김선영과 인간적인 교류도 상처를 치유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그는 “위로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만난 것도 행운인데 좋은 인연까지 만난 건 그 자체로 축복”이라고 말했다.

 

부산이 고향인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상경했다. 1986년 영화 ‘깜보’로 데뷔한 이후 38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올해 만 50세인 그는 “숫자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촬영 현장에선 여전히 내 것을 제대로 하기 바쁘다”며 웃었다. “요즘 SNS를 하는데 재미있어요. 사람과의 관계에서 희망을 찾았죠.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영화 제목대로 ‘내 마음이 완전히 죽던 날’이지만 다시 살아갈 희망이 있다는 걸 관객이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영화 ‘애비규환’ 장혜진

“고향 부산은 친정 같은 곳”

 

“고향은 제게 친정 같은 곳이에요. 힘들 때면 찾아가 포근히 안기곤 하죠.”

 

부산 출신 배우 장혜진(45)은 고향을 이렇게 말했다. 올 초 영화 ‘기생충’의 일원으로 미국 아카데미상 수상의 기쁨을 누린 그는 부산에서 나고 자란 ‘진짜 토박이’. 부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 고향을 떠나 본 적 없다.

 

영화는 5개월 차 임신부 ‘토일’이 15년 전 연락 끊긴 친아빠를 찾아 나서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재혼 가정과 한부모 가정, 혈연 가정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유쾌한 서사로 풀어낸 작품이다.

 

화끈하고 냉철한 엄마 선명 역

다양한 가족의 유쾌한 이야기

부산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연기에 진정성 담아 전하고파”

 


 

장혜진은 극 중 ‘토일’의 엄마 ‘선명’으로 변신했다. 그가 그린 화끈하고 냉철한 엄마 캐릭터는 작품에 재미를 더하고 이야기를 더 다채롭게 한다. 장혜진은 “전작 ‘니나내나’에 이어 다시 한번 새로운 가족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하게 됐다”며 “누군가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면서 힘을 전하는 이야기가 매력적”이라고 했다.

 

부산 출신인 그가 선보인 대구 사투리 연기도 인상적이다. 장혜진은 “감독님 고향이 대구라 사투리 억양을 잡는 데 도움을 받았다”면서도 “대구와 부산 사투리가 꽤 많이 달라 애를 많이 먹었다. 어느 순간 고향 사투리를 쓰고 있더라”며 웃었다.

 

극 중 선명은 ‘재혼 가정’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고향인 대구를 떠나 서울로 올라온다. 사회의 편견을 피해 도망치듯 올라온 그는 ‘임신 사실’을 알린 대학생 딸에게 또 다른 사회적 잣대를 들이댄다. 장혜진은 “완성된 작품을 본 뒤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며 “엄마로서 잘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더라”고 털어놨다.

 

“실제로 전 철없고 많이 부족한 엄마예요. 소위 ‘날라리 엄마’랄까요. 이번 작품을 한 뒤에 ‘당당한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을 살다 보면 기쁜 일보다 힘든 일이 많잖아요.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에게 힘든 시간을 스스로 이겨 낼 힘을 길러 주고 싶어요.”

 

장혜진에게 고향은 ‘늘 그 자리에 있는 곳’이다. 장혜진은 “어릴 적 매일 〈부산일보〉를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지금도 친정 가족과 친척들이 부산에 계셔서 그런지 고향만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하고 편안하다”고 했다.

 

오래전 연기 생활을 하다가 녹록지 않은 생활에 서울을 떠난 그가 다시 연기할 힘을 다져 일어선 곳도 ‘부산’이다. 그는 “부산에 도착하면 특유의 바다 냄새가 나는데 그게 참 좋다”며 “힘이 들 때 혼자 기차 타고 쓱 내려와서 고향을 보고 올라갈 때도 있다”고 했다. “고향은 배우 생활을 단단히 할 수 있게 하는 마음속 ‘집’이에요. 앞으로도 계속 고향에서 힘을 얻어 연기에 진정성을 담아 전하고 싶어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중년의 로맨스를 한번 꼭 찍어 보고 싶어요. 기회가 오겠죠? 하하.”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