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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마스크 미착용 과태료?…대구시민은 '마스크 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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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며 쓴 주행기(走行記)] 자발적으로 마스크 고수가 된 이들
동기부여 확실한 대구시민 마스크 착용은 일상, 마스크 고수 반열
다음달 13일부터 마스크 미착용에 과태료 부과… 대구가 최저일 듯

 

10년차 '달린이'다. 주식 초보를 어린이에 빗대 만든 '주린이'와 조어법이 같은 '달리기 어린이'다. 10년차임에도 초보 수준이다. 수익으로 주린이에서 벗어나듯 달린이 탈출 요건은 기록이다.

 

묵묵히 달려 완주하면 기록은 따라온다는, 마음을 비우고 달린다는 자기합리화성 멘탈만 금메달감이다.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하며, 탄복하는 땀의 맛만큼은 확실히 안다 자부하다 10년째 달린이로 제자리걸음 중이다.

 

주린이가 개장과 동시에 M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 앱을 누르듯, 달린이도 눈을 뜨면 바깥 날씨부터 살핀다. 어느덧 팔뚝에 햇볕이 내려앉다 바람에 날리는 계절이 됐다. 추분이 지나며 해돋이 자연광이 부윰하게 번지는 시각도 6시를 훌쩍 넘기고, 단풍색이 스미기 시작한 신천둔치의 계절적 풍미가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10년쯤 뛰면 좋은 기록보다 좋은 코스에서 직접 달려보겠다는 욕망이 생긴다. 좋은 코스에 대한 열망은 결코 가볍지 않다. 소설가 김연수는 이스라엘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도는 예루살렘마라톤대회에 가고 싶어 했고, 노벨문학상 후보로 여러 차례 하마평에 오른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예 그리스로 가 땡볕 아래 홀로 마라톤 전투 승전보를 알리러 죽을 힘을 다해 뛰던 전령처럼 그 구간을 뛰었다.

 

요즘 같은 언택트 시대에 우르르 몰려 달리는 건 언감생심이지만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한 게 달리기의 매력 아니겠는가.

 

 

신천둔치는 욕망 분출의 적소다. 평탄한 길이 이어져 달리기 좋고 거리 표시, 지점 표시도 확실해 달린이에게 딱이다.

 

개별성이 강했기에 달리기는 코로나 시국에도 살아남은 운동이다. 복잡한 규칙도 필요하지 않다. 두 발로 땅을 박차고 앞으로 뛰쳐 나가 심장이 저항하는 힘을 강하게 느낀다. 땀의 맛은 각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주력(走歷)이 쌓일수록 고수는 널렸다는 걸 깨닫는 '현자타임(賢者time, 평정심의 시간)'도 뒤를 잇는다.

 

달릴 때는 맞은편에서 오는 여러 사람들을 본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앞만 보며 뛰는 것 같지만 천만에. 특히 달린이라면 주법(走法), 보폭, 팔 움직임을 짧은 시간에 뜯어본다. 휴가 나온 군인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상의를 몇 줄로 접어 다렸는지, 군화에 물광을 냈는지, 불광을 냈는지 살피며 감탄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쩌다 마주치는 세칭 '고수'들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의 학처럼 우아하다. 날아가듯 사뿐사뿐하다. 대개 근육통 따위의 고통과 거리가 먼, 평안한 얼굴이다. 달린이가 쏘는 존경의 눈길을 받아내는 오랜 습관이자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알아채는 영민한 능력도 갖추고 있어 무덤덤하게 달리던 행위를 지속한다. 고수의 자격이다. 비책으로 구전되는 축지법이 저런 모양과 기세였으리라.

 

달리기 인구가 많은 나라 중 하나는 일본이다. 일본은 육상 강국이다. 2011년 대구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스폰서 중 일본 기업이 유독 많았던 건 자국 내 육상 저변과 직결된 것이었다.

 

일본 출장길마다 새벽 조깅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편한 조깅화 차림으로 대로변 인도를, 동네 골목길을, 공원을 달리고 있었다. 이들은 반대편에서 오는 달린이를 북돋우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조깅화, 팬츠, 러너셔츠, 헤어밴드, 기록시계까지 장착하고 달리던 고수가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이에게 엄지를 올려주는 식이었다.

 

설령 그 고수가 모든 달린이들에게 엄지를 날리는 산타클로스급 '따봉맨'이었을지라도 신선한 자극이었다. 스피드나 자세에 대한 격려가 아닌 아침 일찍 일어나 뛰는 당신의 부지런함에 보내는 존경이자 힘내라는 의미다, 라고 일본인들은 풀이해줬다.

 

 

요즘 신천둔치를 뛰다 보면 '따봉맨'이 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1km만 뛰어도 콧잔등은 물론이고 평소 거기에 땀샘이 있는지도 몰랐던 인중 주변까지 땀이 치솟아 제대로 뛰기 힘들 정도인데, 하물며 신천둔치가 야외임에도, 고집스럽게 쓰고 있는 마스크를 보면 존경심마저 인다.

 

이런 집념에 가까운 마스크 착용은 지난여름 내내 이어지던 것이었다. 대구 더위가 보통 더위인가.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는 정부 지침을 그렇게나 잘 따랐다.

 

'알아서 잘 따르는 대구시민'은 수치로도 어느 정도 나타났다. 최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북익산을)이 경찰청에 요청해 받은 자료다. 지난 5월 대중교통 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 이후 입건된 건수가 전국에서 430건 있었는데 대구는 11건에 그쳤다. 인구 대비로 환산할 경우 전국 최저 빈도였다.

 

달리다 문득 고교 시절 야간자율학습이 떠올랐다. 야간자율학습이 싫어 도망 다니면 1학년 때는 교사들이 빠진 아이들을 몽둥이찜질로 다스렸지만, 3학년이 됐을 때는 어떤 교사도 그러지 않았다는 걸. 시내버스가 끊길 때까지 3학년들은 아무도 도망가지 않았다는 걸. 자발적 참여의 기저에는 '동기부여'가 있었던 걸.

 

그랬다. 대구시민들에게 마스크는 충만한 동기부여에서 나온 당연한 일상이었다. 운동을 하면서도 불편한 마스크를 기어이 쓰고 있는 이들을 보며 '마스크 착용은 올해 줄곧 함께 겪어내고 있는 연대에 가까운 경험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가 다음달 13일부터 마스크 미착용에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짐작건대 과태료 부과액이 가장 적은 곳은 마스크 고수들의 도시, 대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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