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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12시에 나와 1시 52분에 도착…“서울 가는 것보다 더 힘들어”

장애인과 일곡동서 광주시청까지 저상버스 타고 가 보니
29번 타고 운암동서 내려…16번 버스 환승하려 200m 이동 불편
운전기사가 전동휠체어 안전고리 안 매줘 멈출 때 마다 ‘움찔’
전체 101개 노선 중 저상버스 34개 노선…전남은 5개 시만 운행

 

“일곡지구에서 치평동 가는 게 광주에서 서울가는 것보다 힘들고 오래 걸리네요.”

김병만(37)씨의 시청 방문길은 고생길, 눈칫길이었다. 휠체어를 탄 채 이용할 수 있는 저상버스를 기다리느라 일반 버스를 그대로 보내야 했고 다른 승객들이 자신 때문에 오래 기다릴까 눈치를 보며 불편한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그는 20일 낮 12시 19분 광주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고 앞 종점에서 29번 저상버스에 올랐다. 운암 3단지에서 16번 버스로 갈아타 시청에 도착해 민원 서류를 전달한다는 게 김씨 계획이었다.
 

김씨 등 광주지역 장애인 16명은 이날 활동가 1~2명의 도움을 받아 8개조로 나눠 일곡동 버스 종점에서 저상버스 5개 노선을 나눠 타는 ‘저상버스 타고 시청 찾아오기’ 행사를 진행했다.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을 맞아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마련한 ‘함께 탑시다! 같이 갑시다!’라는 행사의 하나로 이뤄졌다.

김씨는 낮 12시부터 기다려 19분이 지나자 29번 버스가 도착했다. 저상버스였다. 다행히 주변에 불법 주정차 차량이 없어 저상버스 타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직선거리로 7.2㎞로 자가용으로 20여분, 대중교통으로는 1시간 정도 걸리지만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에게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나마 전체 시내버스 가운데 저상버스도 20%대에 불과하다. 모든 노선에 운행되는 것도 아니다.

광주지역의 경우 101개 노선에서 운행되는 999대 중 저상버스는 34개(33.6%)노선, 216대(21.6%)가 전부다.

광주시는 오는 2021년까지 광주시내버스 저상버스 배치율을 45% 수준으로 맞추겠다고 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오래된 일반 버스를 저상버스로 교체하려면 2배 이상 비싼 친환경으로만 바꿔야 하는 정부 방침 탓에 예산이 부족한 자치단체 입장에서는 저상버스 교체율이 지지부진할 수 밖에 없다.

지난 2018년만 해도 광주시는 애초 138대를 도입하려다 20대만 도입했다. 지난해에는 62대를 계획했다가 10대만 구입했을 뿐이다. 올해 목표는 101억 2700만원을 투입해 29대(전기차 23대·수소차6대)의 저상버스를 도입하는 것이다.

전남은 더하다. 721대 시내버스 중 95대(13.1%)만이 저상버스다. 목포(29대)·여수(25대)·순천(28대)·광양(5대)·나주(8대) 등 5개 시에서만 운행된다. 다른 17개 군에서는 저상버스를 찾아볼 수 없다.

올해도 저상버스 15대 (목포 4대, 여수 7대, 순천2대, 광양2대)를 도입하는 것이 목표다. 이같은 점을 고려하면 오는 2021년까지 231대를 도입하겠다는 전남도 목표(전체 32%)도 믿기 어렵다는 게 장애인단체들 설명이다.

버스기사는 전동휠체어를 탄 김씨를 보고 “어디로 가세요?”라고 물었다. 김씨는 “시청까지 가요”라고 대답했다. 버스 기사는 차 높이를 조정, 뒷문을 열고 버튼을 눌러 버스 발판을 인도까지 연결했다.

기사는 김씨가 탑승하자 운전석에서 나와 뒷문 앞에 있는 좌석 2개를 접어 자리를 마련해줬다. 김씨가 “안전고리 채워주세요”라고 해 안전고리를 걸고 출발하기까지 4분이 더 걸렸다.

환승지인 운암 3단지에 도착, 하차하는 데 3분이 걸렸다. 시청으로 가려면 16번 버스로 갈아타야 하는데, 건너편으로 210m 가량 이동해야 한다. 김씨는 이동하는 내내 긴장해야 했다. 튀어나온 맨홀 뚜껑 위를 지나칠 때 휠체어가 비틀거렸고 경사로가 급한 구간에서는 속도를 늦추는데 신경을 썼다.

환승하는 곳에 도착한 시각은 낮 12시 55분. 6분 걸려 도착했지만 1시 27분이 되서야 16번 버스로 갈아탈 수 있었다. 앞서 도착한 16번 버스가 일반 버스라 탈 수 없없다. 김씨는 “정류장 앞 화물차 등이 불법 주·정차를 하고 있으면 버스기사가 몰라보고 지나칠 때도 있다”고 했다.

행사에 동행한 장애인 활동가 김정씨는 “버스내 휠체어 탑승 공간이 있어도 일반 승객들로 가득차 있는 출·퇴근 시간에는 이용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했다.

도로에 내려주는 버스기사도 있어 인도로 올라서기 위해 경계 턱이 없는 곳을 찾아 200m정도를 휠체어로 이동하는 불안함도 감수해야 한다는 게 장애인들 설명이다.

30분 내로 환승해야 무료지만 버스를 2대 기다리느라 요금을 냈다. “무료 환승 시간내 환승하는 것은 포기한 지 오래”라고 했다. 김씨는 “그래도 오늘은 운이 좋아 2번 만에 버스를 탔다”고 했다.

안전고리는 전동휠체어 뒤에 고정하는 만큼 김씨 혼자서 연결할 수 없지만 버스기사는 탑승을 도운 뒤 곧바로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장애인단체들은 버스운전기사의 리프트 조정 미숙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씨의 전동휠체어는 차량이 움직일 때마다 움찔 거렸다. 김씨는 “안전고리를 걸어주지 않은 것은 장애인들의 안전벨트를 걸어주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김씨는 오후 1시 52분에 시청에 도착했다.

정성주 광주시장애인파별철폐연대 소장은 “새로운 버스를 구매할 때 모두 저상버스로 도입하고 중형 저상버스를 도입하면서 노선의 다양화와 장애인들의 접근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