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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철학자와 건축가가 애써 들여다본 부산의 그늘

 

 

“부산이란 도시를 관광, 개발, 낭만, 노스탤지어 등 정해진 관점으로 보지 말고 어두운 면을 보기로 했다. 지역, 근대, 상처를 키워드로 도시를 산책하며 스스로 부산의 어둠을 선택하며 어긋난 길을 걸었다.”(김동규 민주시민교육원 나락한알 원장)

 

김동규 원장·홍순연 이사 함께한

나락한알 도시인문학 답사집

‘걷다가 근대를 생각하다’ 출간

우암동 소막사·가덕도 외양포 등

지우고 덮어쓴 근대 부산 산책


 

김 원장은 홍순연 삼진이음 이사와 함께 2017년 나락한알 ‘생각보다 건축, 말보다 산책’ 프로그램을 1년간 운영했다. 이들은 시민과 함께 우암동 적기마을, 가덕도 외양포, 한성은행에서 봉래동 창고군, 강서구 대저동, 사상, 영도 등을 매달 한 차례 답사했다. 철학을 전공한 김 원장과 건축을 전공한 홍 이사는 당시 시민과 함께 걷고 상상하고 성찰하며 대화를 나눴고 이를 지금은 폐간된 예술잡지 〈B-art〉에 1년간 연재했다. 지난해 말까지 답사지를 추가로 다녀오며 달라진 내용을 업데이트했다. 그 결과물이 〈걷다가 근대를 생각하다〉(도서출판 소요-You)란 책으로 탄생했다.
 

김 원장은 “도시를 산책한다는 것은 지우고 덮어쓴 상흔을 더듬어 가는 회상의 작업이자 치유와 성찰의 작업이었다”고 전했다. 홍 이사는 “개발 건축물 답사에 그치지 않고 지역의 스토리와 장소성을 보여 주며 도시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곳이 부산 남구 우암동 적기(赤崎)마을. 우암동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수출하는 적기 항구 변에 있어 축사 검역소가 있던 자리다. 이곳에는 만주, 일본으로 소를 보내기 전 검사를 거치기 위한 우사 19동이 있었다.

 

해방이 되자 귀환 동포들이 우사 시설을 점유했다. 우암동은 미군 주둔, 귀환 동포, 한국 전쟁 피란민까지 뒤섞인 다중 지대였다. 소 막사는 귀환 동포와 피난민을 위한 주택으로 개조됐다. 우암의 주거 형태는 소 막사 대들보를 기준으로 칸막이를 한 뒤 한집당 약 4~5평 정도 사용했다. 당시 5평에 5~6명이 기거했다. 1963년 적산불하 정책에 따라 증개축이 이뤄졌다. 성창기업, 동명목재, 태창목재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유입되면서 좁은 다락방에 사글셋방이 성행하고 잠만 자는 노동자 4~5명이 한 공간에 거주했다.

 

김 원장은 “우암은 자연의 자리가 인간의 자리가 되면서 새로움의 활력을 가진 곳일 수도, 혼란스러운 생의 전쟁에서 밀려난 패잔병들을 위한 수용소일 수도, 아니면 이 이중성을 모두 가진 곳일 수도 있다. 우암은 근대성에 깃든 전근대 또는 탈근대라는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덕도 외양포도 근대화의 전운을 피할 순 없었다. 러일전쟁 발발 5개월 뒤인 1904년 8월, 일제는 대한해협을 지나는 러시아 북양함대에 기습공격을 가할 목적으로 가덕도 남단, 외양포 일대를 임시 군사기지로 삼았다. 외양포가 중요한 군사 요충지가 된 것은 이곳에서 거제도, 마산항, 진해항을 모두 볼 수 있고 선박을 몰래 감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대항마을의 인공동굴을 둘러보며 이 동굴이 일제강점기 식민지 폭력의 잔영이라고 생각한다. 제국의 힘과 근대화의 폭력이 여전히 가덕도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의 시선은 일제강점기 식민, 수탈의 경험(강서)에서 출발해 개발 독재 시대 근대화(사상)를 지나 근대화의 이면(감전)도 파고든다. 부산 곳곳에 근대의 영광이 새겨져 있듯, 근대의 상처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셈이다.

 

이들은 “개발과 근대화가 남기는 상처는 개발과 재생을 빙자한 철거와 추방의 연속이다. 지역 발전의 그늘은 구태의연한 근대적 개발 논리의 관성을 유지하려는 안일함에 있다. 발전의 개념과 패러다임을 다시 생각하고 다른 것을 욕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