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조금강릉 14.7℃
  • 맑음서울 15.7℃
  • 맑음인천 15.8℃
  • 구름조금원주 16.0℃
  • 맑음수원 15.3℃
  • 구름조금청주 15.1℃
  • 구름조금대전 14.3℃
  • 흐림포항 13.9℃
  • 흐림대구 14.5℃
  • 맑음전주 17.1℃
  • 구름많음울산 14.1℃
  • 구름많음창원 15.9℃
  • 구름조금광주 15.7℃
  • 구름많음부산 14.6℃
  • 구름많음순천 14.3℃
  • 맑음홍성(예) 14.7℃
  • 제주 14.1℃
  • 구름많음김해시 16.3℃
  • 구름조금구미 14.9℃
기상청 제공
메뉴

(부산일보) 부산을 지킨 거대한 뿌리, 좌천동 역사 골목

 

 

 

부산 동구 좌천동에 ‘좌천동 역사 골목’으로 부를 만한 골목이 형성되고 있다. 이곳은 ‘정공단로’로 불리는, 일신기독병원이 있는 골목길이다.

 

이 골목은 근년 박재혁 의사의 생가터 확인으로 중요한 ‘하나의 방점’을 추가했다. 동구청은 지난 1월 ‘박재혁 의사 생가터’ 표지판을 세웠다. 박재혁 의사는 1920년 일제강점기 부산경찰서 서장실에 폭탄을 터뜨린 의거의 주인공이다. 그동안 박재혁 의사 생가터는 자성대공원 옆(동구 범일동 550)으로 잘못 알려져 2012년 동구청이 그 근처 조방로에 ‘박재혁 거리’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족의 이의 제기와 이에 관한 연구와 고증으로 지난해 가구거리 공영주차장 자리(범일동 183)가 박 의사의 생가터로 재확인됐다. ‘박재혁 거리’를 조성하려면 이 골목이 더 적당한 것이다. 

 

200m 남짓한 ‘정공단로’ 골목 

임란·일제강점기·피란 유적 집약 

최근 박재혁 의사 생가터도 확인 

항일·근대 정신 담은 아우라 대단 

 

 

200m가 넘는 이 골목의 역사적 아우라는 대단하다. 임진왜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부산역사와 관련한 주요한 장소 8곳이 집적돼 늘어서 있다. 골목 한가운데에는 임진왜란 때 순국한 정발 장군을 모신 정공단(부산시 기념물 제10호)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남쪽 골목 초입에 일제강점기 방공호로 조성돼 한국전쟁 때에는 피난민이 살기도 했던 ‘좌천동굴’이 있다. 그다음 1900~1919년 부산에 큰 족적을 남긴 왕길지(엥겔) 선교사를 기리는, 부산진교회에서 세운 왕길지기념관이 있다. 이 기념관 뒤쪽 부산진교회는 130년 역사를 지닌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며, 교회 맞은편에는 1895년 설립된 부산진일신여학교(부산시 기념물 제55호)가 있다. 

 

정공단 건너편에는 ‘독립유공자 정오연 생가터’가 2년 전 동구청에 의해 조성돼 있다. 정공단을 지나면 일신기독병원이 나오는데 병원 안에 맥켄지기념관이 있다. ‘조선 나환자들의 아버지’로 불린 맥켄지는 1910~1939년 부산을 위해 봉사했던 호주 선교사였으며, 그의 두 딸이 아버지를 이어 한국전쟁기에 일신기독병원을 세웠는데 이들을 기념한 곳이 맥켄지기념관이다. 맥켄지 선교사와 관련된, 일신기독병원에 있는 ‘부산 나병원 기념비’는 지난달 6일 문화재청에 의해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됐다. 이런 골목길에 박재혁 의사 생가터마저 확인돼 이곳을 ‘좌천동 역사 골목’으로 이름 붙일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이다.

 

‘좌천동 역사 골목’에 깃든 역사성 몇 가지는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민중의 거대한 항전을 집약한 정공단(1766년 설립)에 깃든 임란의 역사다. 임란이 부산이란 도시를 만든 중요한 계기였던 만큼, 정공단은 좌천동 역사에서도 ‘거대한 뿌리’로 자리 잡고 있다. 

 

둘째는 근대정신과 독립운동 정신이다. 정공단에 부산의 근대 선각자 박기종의 송덕비와 영세불망비가 있는데 박재혁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근대 부산진 그룹’(최천택 김병태 김영주 오택 오치덕 등)은 박기종이 세운 부산상업학교(개성고) 출신이다. 근대학교 제도를 통해 길러진 이들은 부산상업학교 시절에는 독서클럽인 구세단 활동을 했고, 이후 밀양의 김원봉과 연결하면서 의열단 활동과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이들 중 독립운동가 최천택의 생가터(좌천동 496)도 복원할 필요가 있다. 그 터는 정공단 맞은편으로 알려져 있다. 해방 이후 1946년 부산진 일대의 유지들이 박재혁 의사 비석을 정공단 옆에 세웠다는 것은 이 골목의 면면한 역사성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1944년 순국당 사건에 연루돼 17세 어린 나이로 옥사한 독립운동가 정오연의 생가터도 정공단 맞은편이다. 

 

셋째는 신앙뿐 아니라 교육과 의료 측면을 아우른 부산 기독교 운동사의 두 연원지 중 하나가 좌천동이라는 것이다(이상규 전 고신대 교수). 두 연원지는 초량과 부산진으로, 초량은 미국 북장로교가, 부산진(좌천동)은 호주 장로교가 선교를 맡았었다. 호주 선교사들이 부산진일신여학교와 부산진교회를 세웠고 왕길지기념관, 맥켄지기념관과 ‘부산 나병원 기념비’는 그들의 활동을 기린 중요한 기념물이다. 부산진일신여학교는 부산에서 3·1 운동이 처음 일어난 곳이다. 

 

‘좌천동 역사 골목’에 깃든 역사성은 서로 연계돼 있다. 임란의 항일 정신, 선교와 개화 속에 피어난 근대정신은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좌천동의 전체 그림은 이렇다. 부산 근대사에서 ‘식민도시 부산부’와 ‘전통 인문도시 동래’ 사이에 이른바 ‘경계 공간’이란 것이 있었다. 부산대 양흥숙 교수에 따르면 초량은 근대적 물산이 출렁거렸던 경계 공간이다. 초량의 경우처럼 좌천동은 부산진 그룹과 초기 부산 기독교, 임란의 항쟁 정신이 교직돼 있는 또 다른 경계 공간으로 충분히 조명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많이 본 기사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