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예술의전당 개관 20주년 기념 오페라 '운명의 힘'이 공연을 하루 앞두고 돌연 무산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무대 제작업체의 납품 일정 미준수 등이 공연 취소의 배경으로, 업체를 선정한 대전시와 대전예당의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업체 선정 과정에서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거나 발주 주체를 이원화시키는 등 행정적 난맥상이 드러나 '예견된 사고'란 지적도 제기된다.
8일 시와 대전예당 등에 따르면 이날 공연(8-11일, 4회) 예정이었던 제작오페라 운명의 힘에 대한 예매 티켓 취소 절차가 진행 중이다. 공연 취소로 예매된 티켓 1568매가 전액 환불되며, 최소 2000만 원가량의 환불금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예당은 전날 긴급공지에서 '무대세트 제작업체의 납품 및 설치 불이행으로 정상적인 진행이 어려워 취소하게 됐다'고 무산 사유를 밝혔다. 해당업체는 경기도 소재 A업체로 예술 전문 무대 제작 업체가 아닌, 조명장치 제조업체인 것으로 알려졌다.
A 업체는 공연 개막 당일까지도 무대를 설치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공연의 총예산은 6억 5000만 원 중 무대 설치 사업 금액은 1억 1469만 원이다.
이같은 공연 취소 사태에 예매객들은 물론 지역 문화예술계는 당혹감을 넘어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한 예매객은 "공연 전날 오후에 취소 문자 하나 달랑 보내고 취소 수수료는 무료라고 하는 게 어이가 없다"며 "일년 가까이 기다려 온 공연인데다 다른 공연 관람 기회까지 박탈된 것인데 너무 무책임하다"고 비난했다.
취소 통보를 불과 하루 전에 받은 공연 출연진과 대전예당 안팎에선 이른바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다.
이경재 운명의 힘 연출가는 "오페라를 20년 넘게 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계약직후 해당 업체를 알아본 결과 어느 정도 부실함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행정적 오류로 이런 일이 벌어져 매우 유감스럽고, 대전에 대한 인식마저 얼룩진 상태"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입찰 과정서 행정적 오류가 발생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적격심사 방식이다.
앞서 시는 지난 9월 조달청 나라장터를 통해 운명의 힘 무대 제작업체 위탁 용역을 일반용역 적격심사로 공고했다. 시에서 정한 적격심사 항목 및 배점 한도에 의해 업체를 평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업체가 낙찰받는다.
이 과정에서 2억 원 미만 용역에 대한 배점은 업체의 경영 상태와 신인도, 입찰가격 등을 평가한다. 그러나 예술성·전문성 관련 항목은 전무했다. 실제 A업체는 예술성·전문성 평가 없이 95점으로 적격점수를 충족했다.
발주 주체가 시와 대전예당 간 이원화돼 있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시 회계관리 규칙에 따르면 대전예당 포함 시 사업소가 추정가격 2000만 원을 초과한 용역을 발주하면 시에서 공고를 내도록 명시돼 있다.
결국 해당 규칙으로 인해 발주 과정에서 '예술전문 무대 설치 업체'와 '1000석 이상 대규모 공연장에서의 무대설치 경험' 조건이 포함됐어야 함에도 불구, 소통 장애로 해당 조건을 서로 누락했다는 게 양측의 설명이다.
이에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기존 적격심사 방식에서 전문성과 기술성, 창의성 등을 요구하는 '협상에 의한 계약'으로 변경하는 등 구조적·제도적 개편이 시급하단 의견이다.
이찬 단국대 정책경영대학원 문화예술학과 교수는 "재발 방지를 위해선 지자체 용역 계약 과정에 문화예술 전문가 의견 반영 또는 시 산하기관의 일정 금액 이상 용역 발주 시 특정 사안에 예외를 두도록 하는 등의 조례(규칙) 개정, 계약 업체에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한 플랜B 구축 등의 대안 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전예당은 이번에 취소된 운명의 힘 오페라 공연을 내년 봄 다시 무대에 올릴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