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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5·18... 기성 언론 입 다물 때 대학신문, 진실 알렸다

박진우 5·18기념재단 연구실장, 전국 24개 대학 신문 분석
“민족의 비극 잊을 수 없다” “남으로만 흐르는 5월…”
서울대·전남대·조선대 신문 등 ‘광주의 아픔’ 다뤄

 

1980년대 신군부의 언론 탄압으로 신문·방송 등 기성언론이 입 다물 때 대학생들이 주도한 대학언론에서는 5·18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보도했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전남대 5·18연구소가 최근 발행한 학술지 ‘민주주의와 인권’ 22호에는 박진우 5·18기념재단 연구실장이 발표한 ‘대학신문에 나타난 5·18의 보도 형태 연구: 학원자율화 조치 이전 시기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이 게재됐다.

박 실장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직후 5개 신문사(강원도민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매일경제신문, 조선일보)와 전국 24개 대학에서 발행한 신문을 비교·분석했다.
 

논문에서 박 실장은 “1980년 5월 당시 거의 모든 언론이 광주시민들을 대변하기보단, 폭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작·왜곡으로 일관한 신군부의 발표를 마치 ‘진실’인 듯 앵무새처럼 반복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대학신문 역시 신군부와 대학의 개입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한 한계를 보였지만 기성 언론이 오랫동안 5·18에 대한 침묵과 왜곡으로 일관했던 것에 반해, 1981년 5·18 ‘1주기’를 전후로 직·간접적으로 ‘광주의 진실’을 알리고자 했다는 게 박 실장의 연구 결과이다.

서울대 신문인 ‘대학신문’은 1981년 5월 11일자 칼럼에 “18일의 그날, 광주사태라고 불리어지는 민족의 비극을 잊을 수 없다”는 내용을 실었다.
 

직접적으로 표현을 하지 못한 다른 대학 언론들은 간접적으로 5·18을 떠올릴 수 있는 기사들을 보도했다.

‘성대신문’(성균관대)은 1981년 5월 25일자 1면에 ‘5·12교내시위로 6명이 구속되고, 9명의 학생이 제적 처리됐다’고 보도했고 ‘이대학보’는 6월 1일과 8일자 1면에서 시위 소식과 구속·연행 기사를 실었다. 시위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으나 5 ·18 관련 시위임을 연상하게 했다.

조선대 신문사 기자들은 선·후배들간에 모금을 통해 별도의 신문 이른바 ‘지하신문’을 제작하기도 했다. 1983년 6월에 발행된 1면에 ‘조대학보, 따로 덧붙여 내면서’라는 글이 실리고 2면에는 기자 일동의 ‘우리들의 입장’이 게재된다.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객관화되지 못한 보도, 보도 기사의 미비, 비평기능의 저하, 구문이라는 오명을 면치 못하는 늑장 보도 등으로 올바른 학내 여론 반영과 조성에 기여하지 못했음을 우리 기자는 다시 한 번 통감한다”고 밝혔다.

1981년 5월 ‘전대신문’은 ‘남으로만 흐르는 5월의 하늘’이라는 제목 아래 시민군의 최후 항쟁지인 옛 전남도청을 배경에 두고, 시민대회가 개최됐던 도청 분수대에 포커스를 둔 사진 한장을 게재했다. 사진 옆 ‘5월의 메모’를 통해 5월의 일정을 알리면서 5일 어린이날, 6일 성년의 날, 11일 석가탄신일 다음 일정 한 줄을 빈칸으로 남겨 5월 18일을 연상시킬 수 있도록 공백을 활용하는 재치를 보였다.

박 실장은 “학원자율화 조치 전까지 5·18을 기억·기념하고자 했던 대학생들의 각종 시도들은 계속 됐다”면서 “통제와 탄압속에서 5·18에 대한 진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시도했던 대학신문들 덕에 민주화 물결을 이뤘다”고 말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