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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2021년 사건 사고 결산<2>] 학폭에 멍든 피해 가족 결국 삶의 터전 등졌다

[광주 고교생 학폭 사망 그 후]
아버지 생업 정리 동생은 전학
잘못도 없이 되레 떠날 준비
가해학생들 진심어린 사과 없어
유족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정부 잇단 대책…학교현장 바뀌길

 

광주 모 고교 2학년생 A군은 지난 6월 29일 오전 광주시 광산구 어등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기말고사를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A군은 ‘학교 폭력으로 힘들지만 너희들 도움으로 버틸 수 있었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고 가족들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가해 학생 10명을 입건했고 이들 중 2명을 구속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글을 올렸다. 20만 명 이상의 국민이 동의했고 정부는 재발 방지를 위한 공식 답변을 내놓았다.
 

모든 게 마무리된 듯했지만 A군 가족들 시간은 아들이 떠나간 그 날에 멈춰 있다.

아들이 왜 그런 일을 당했는지 믿을 수 없고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설명을 듣지도 못했다. 가해학생들의 진심 어린 사과도 없었다. 재판에 와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때렸지만 죄 되는 줄 몰랐다’, ‘고의가 아니었다’, ‘(A군이) 도발해서 그랬다’는 떠넘기기식 진술을 끝까지 참고 견뎌내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재판이 열릴 때면 아들이 겪었던 고통을 다시 떠올리면서 몸서리치고 있다.

오는 27일 열리는 올해 마지막 재판에 대한 기대도 크지 않다.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여태껏 제대로 해준 게 없어서 한없이 미안하다는 말만 하루에도 몇십 번씩 되뇐다.

A군 가족은 아들과 함께 했던 광주에서의 생활을 정리 중이다. A군 아버지는 10여 년간 이어왔던 생업을 접었다. 경찰서, 변호사 사무실, 학교폭력심의위원회, 재판을 준비하면서 사실상 뒷전이 됐었던 일이지만 거래처를 하나씩 정리하고 있다. 아들의 기억이 생각나는 광주가 아닌, 다른 곳에 집을 구하고 이사할 계획이다. A군 동생은 먼저 광주를 떠났다.
 

A군 아버지는 “이곳에 남아있기보다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학교 현장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정부는 A군 가족의 청원에 공식 답변을 했었다. 정종철 교육부 차관은 당시 학교폭력 피해 학생을 두텁게 보호하고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을 정비하고 학생들이 학교폭력을 손쉽게 신고·상담할 수 있도록 ‘학교폭력 조기감지 온라인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전문상담교사 미배치 학교에 전문상담 순회교사를 우선 지원하고 전문상담교사를 꾸준히 늘리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학교전담경찰관을 추가로 지정하고 피해 학생의 치유를 위한 지원 확대 방침도 제시했다.

최근 열린 제22차 사회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정부는 대책을 보다 구체화해 발표했다. 가해 학생에 대한 엄정한 조치, 2차피해 방지 강화 등이 골자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학교’ 를 만들겠다고 했다.

학교폭력으로 전학 처분을 받은 학생의 경우 졸업 후 2년간 보존키로 했다. 또 학교폭력 가해 기록 삭제와 관련해서도 반성 정도와 피해 학생과의 관계회복 노력 등을 반영해 심의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교사가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온라인 지원 시스템을 개발하고 소송비와 법률서비스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휴대폰 등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피해자·신고자 접촉, 협박, 보복을 금지하도록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을 추진하고 ‘2차 피해 방지 지침 표준안’을 개발·보급할 계획이다. 피해 학생의 신고가 없어도 학생 관찰, 상담 등을 통해 학교폭력 징후를 감지한 교사가 학폭 사안조사를 하도록 가이드북에 담을 계획이다.

A군이 학교폭력으로 세상을 등진 이후에도 광주에서는 학교폭력으로 괴롭힘을 받았던 피해 학생들의 신고가 잇따랐다. 정부가 새롭게 내놓은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학교’ 대책으로 학교 현장이 이번에는 정말 달라질까.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