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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이철수 판화 작가 “힘든 시대, 서로 위로하며 손잡고 싶어요”

목판화 40년 기념전
내년 2월28일까지 무각사 로터스갤러리
‘무문관’ 연작 ‘몽실언니’ 등 전시

 

아이를 업고 있는 단발머리 ‘몽실언니’를 보고 뭉클해졌다. 고(故) 권정생 작가의 동화 ‘몽실언니’ 속 인물들은 왠지 모르게 애틋하다. “호박옹! 멋지게 늙으셨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새겨진 ‘늙은 호박’을 한참 들여다 본다. 선승들의 대화 한 자락에, “이 얼굴이 네 얼굴이냐? 그 얼굴로 오래살면 네 얼굴 못찾는다” 일갈하는 작품까지.

이철수(67) 작가의 작품 앞에선 좀처럼 발을 떼기 어렵다. 그림 자체가 주는 울림, 글이 주는 따뜻함, 글과 그림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사색의 깊이. ‘판화로 시를 쓰는 작가’, 그의 작품은 두고 두고 마음에 남는다.
 

이철수 작가가 목판화 인생 40년을 기념하는 전시회(2022년 2월28일까지)를 진행중이다. 개막일인 7일 무각사(주지 청학스님) 로터스 갤러리에서 이 작가를 만났다. 1·2층을 아우르는 넓은 전시장 덕분에 바로 직전 열린 서울 전시보다 2배나 많은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맑아지지도 않고, 따뜻해지지도 않았습니다. 힘든 사람들도 너무 많아졌어요. 누군가의 어려움을 이해하려 들기보다는 내치고, 차별하려고 들고, 상처가 더 깊어지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런 때, 우리 모습을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일반 작품 전시를 10년 간 안했는데 이번에 꽤 많은 그림을 보여드릴 수 있어 기뻐요. 광주에 대해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떠오르는 상념들이 있지요. 광주에서 이 메시지를 들고 사람들과 만나면 어떨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무문관’ 연작과 ‘몽실언니’ 등 동화 삽화, 최근 10년간 작업한 판화 등이 두루 나왔다. 전시 제목 ‘문인가 하였더니, 다시 길’은 무문혜개가 편집한 선종 공안집(公案集)인 ‘무문관(無門關)’에서 따왔다. ‘무문관’은 부처의 가르침을 깨우치게 할 계기와 방편의 언어들을 담은 책으로 마흔 여덟편의 이야기가 담겼다.

“‘무문관’은 쉽게 말하면 선승들이 참선수행 교과서로 삼았던 책이예요. 책에 담긴 지혜는 종교적인 걸 떠나 생명있는 존재들이 귀 기울여볼만한 지혜입니다. 마음에 고민이 많아지는 시대에,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책을 읽고 제가 선문답을 던지기도 하고요. 마음 이야기를 깊이 해보고 싶었습니다. ”

 

 

‘무문관’은 천천히 만든 연작이다. 수십년간 머리 맡에 두고 읽으며 마음에 새긴 글들이고, 밑그림은 10여년 전 그렸다. 물론 옛 것 그대로는 없다. 책속 선승들의 선문답은 현재 우리 삶의 이야기와 어우러지며 다양한 주제로 확장된다. 법정스님은 늘 “일반 작품보다 사람들이 덜 관심을 갖거나 안 팔려도 선화(禪화) 많이 그려 놓고 죽어라” 말씀하시곤 했다고 한다.

동화 ‘몽실언니’ ‘점득이네’ 삽화 50여점은 일반에게는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보니 젊은 시절 쉽게 그린 삽화들이 명품에 누더기를 걸쳐 놓은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마침 출판사에서 판을 바꾸겠다 해 헌정하는 의미로 판화를 다시 새기겠다고 하고, 1년간 작업했죠. 저렇게 슬프고 아픈 이야기가 여전히 사랑받는 데 대해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쉬운 단어로 글을 쓰시지만 감동의 크기는 너무 커요. 짧은 에세이나 작품으로 사람을 이렇게 먹먹하게 하다니요. 쉬운 그림을 그리겠다는 젊은 시절의 각오도 선생님과 작업에서 나온 겁니다.”

 

 

소품 연작을 모아 지난해 출간한 ‘내일이 와 준다면 그건 축복이지!’ 수록작은 일상을 포착한 이 작가의 특유의 작품이다. 의자, 열쇠, 시골의 닫힌 문, 고양이 등에서 어쩌면 그런 이야기를 꺼내놓는건지 궁금하다. 수백장의 종이를 잘라놓고 생각날 때마다 그린 것들로 작정하지 않은 채 방심하고 그려서인지사람들이 더 좋아하더라고 했다. 또 신영복 선생과 합작 한 ‘通’(2016), 도종환 시인의 대표작 ‘담쟁이에게’에 화답처럼 새긴 ‘어린 잎 앞서가고’ 등도 눈길을 끈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앞으로 작업할 새로운 시리즈 몇 점을 내놓았다. ‘애고, 에고’ 시리즈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또 다른 나 하나를 만들어서 철벽처럼 벽을 쌓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시대인듯해요. 찍으면 쑥 들어가는 잘 익은 감자가 아니라, 건들이면 화들짝 놀라고 방어막을 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큰일 났다. 애고(아이고) 이거 어떻게 하냐’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또 자신을 감추기 위한, 가면 같은 얼굴을 상징하는 에고(ego)이기도 하고요. 너나 없이 맞닥뜨리는 인생의 벽일 수도, 그늘일수도 있습니다.”

판화 작업은 서서히 줄여갈 계획이다. 눈도 침침해지고, 농사를 병행하다 보니 힘이 부친다.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판화 작업은 아무래도 생산성이 떨어지니 작은 그림책처럼 그려볼까 생각중이다. 다음 작업은 ‘기독교 성서’다. 사랑, 자비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벽’이 존재하는 시대, 한 우물에서 길어올린 물처럼,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그는 오랫동안 마음 이야기를 해왔는데, 왜 세상은 이럴까 조금은 무력함을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착한 사람들과의 연대는 가능하다고 믿고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그런 사람들과 손잡고 인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