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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전재수 열사 묘지에 수년간 써 온 고사리 손편지 수백 통

어린이 날 열린 정패 제막식…모교 광주효덕초 학생들이 쓴 편지 유족에 전달
“총 맞고 얼마나 아팠나요…숭고한 희생 잊지 않을게요” 초등생들 매년 편지 써
“민주주의 위한 헌신 고마워요” “5월의 진실 꼭 밝혀야” 등 담겨 유족들 눈시울
학교에선 매년 5·18 추모 행사…엽서·추모리본 달기·글 남기기 등 정신 계승

 

“전재수 선배님! 총 맞고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웠을까요.”

효덕초 5학년생이 41년 전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던 전재수(당시 효덕초 4년)군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전 군은 지난 1980년 5월, 또래 친구들과 마을 앞산에서 놀다 계엄군의 무차별적 사격을 받고 현장에서 숨졌다.

효덕초 학생들은 지난 2016년부터 매년 전 군에게 편지를 쓰며 기억하고 추모해왔다. 학생들의 편지는 학교 내 추모관에 차곡차곡 쌓였고 전달되지 못한 편지만 수백통에 이른다.

 

 

어린 후배들의 이런 편지들이 5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그동안 무궁화로 대체됐던 고(故) 전재수 군의 묘비 사진을 바꾸는 날에 가족들에게 전달됐다. 전 군 가족들은 1980년 계엄군의 총격으로 숨진 전 군의 ‘잃어버린 얼굴’을 41년 만에 발견, 이날 묘비 영정패를 교체하는 행사를 열었다.

유족들은 이날 전군 후배들이 고사리같은 손으로 삐뚤빼툴 쓴 손편지를 읽으며 오열했다.

유족들도 전군의 후배들이 전군을 기리며 고사리 손으로 손수 써내린 손 편지를 전달받아 유족들의 눈시울은 더 붉어지게 했다.

편지 곳곳에는 전군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5학년생은 “학교에서 선배님 이름과 이야기가 많이 기억되고 있어요. 선배님 얘기를 듣고 안타까워하고 슬퍼하고 있어요”라고 썼다. 다른 초등학생 후배는 “잘못없는 11살 아이를 희생시킨 군인이 너무 밉네요”라고도 썼다. “모든 사람들이 선배님의 억울하고 안타까운 희생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라고도 적었다.
 

6학년생은 “초등학생을 죽이다니 한없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때 만약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가정을 꾸려 아이들과 웃고 계시지 않았을까요”라고 썼다. 그는 또 “우리 광주시민들은 잘 살고 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그 덕에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가 됐습니다”고 했다.

다른 5학년생은 “희생해주신 모든 분들 덕분에 이렇게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전군 뿐 아니라 1980년 당시 광주의 모든 분들에게 “가족을 잃고 희생당하셨지만 봉사하고 헌혈, 치료까지 하시는 분들을 보고 감탄하고 행복했습니다”라고 쓴 초등학생도 있었다.

 

 

편지에는 밝혀지지 않은 5월의 진실에 대한 당부도 포함돼 있었다.

6학년생이 쓴 편지에는 “누가 그러한 명령을 내렸고 희생된 사람들이 묻힌 곳이 어디 있는지, 아직까지 5·18민주화운동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앞장서겠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은 “전두환씨는 아직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어요라고 편지에 담았다.

효덕초교 학생들은 전군과 5·18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한 편지에는 “짧디 짧은 편지에 제마음이 담겼을진 모르겠지만 80년의 광주, 잊지 않을게요. 5·18 잊지 않겠습니다”고 적혀 있었고 또 다른 편지에도 “광주의 무고한 시민들과 전재수 선배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잊지 않겠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한편, 효덕초는 1989년에 전군에게 명예졸업장 수여하고 해마다 5·18민주화운동 기념 및 전재수 학생을 기억하기 위한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효덕초는 올해도 전 군 등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편지·엽서, 추모리본달기, 기념 글 남기기 등 5·18민주화 정신을 계승하는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