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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건폭' 꼬리표 붙은 건설 노동자들·(上)] 아파트 '해체' 현장 투입기

"부조리 해소 없이 평범한 조합원까지 매도해 아쉬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건설 현장 사망사고는 줄지 않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고 사망자는 874명으로, 전년(828명)보다 오히려 46명 늘었다. 업종별로는 건설업이 402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건설노조를 '건폭'에 빗댔다.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히 단속해 법치를 확고히 세우라"는 것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건설 노동자들은 "법을 지키며 땀을 흘리는 조합원들까지 매도하는 것"이라고 반발한다.
건설현장을 직접 체험해 본 기자가 겪은 현장 이야기를 2회에 걸쳐 전한다. → 편집자 주

예기치 않은 막내 등장에… '반가움 반 낯섦 반' 팀원들

경험 부족한 기자에 주의 당부
작업 마칠 때까지도 안전 강조
위험해도 현장 이끄는 '동료애'

尹 대통령 발언 취지에는 공감
"법 지키는 사람들도 엮어 불편"

지난 3일 오전 7시20분께 의왕시 내손동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지하 3층. 현장 입구에서 건물 내부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미로처럼 설치된 '동바리'를 10분 정도 헤쳐나가자 멀리서 천둥 치듯 '우르르 쾅쾅' 굉음이 들려왔다. 소리 속으로 다가가자 아파트 세대 내부 벽체 거푸집을 연신 뜯어내던 해체팀의 맏형 허모(60)씨가 팀장이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자 자, 막내 왔습니다."
오전 7시면 하루 노동을 여는 허씨를 비롯 해체팀원 8명은 '막내'의 지각에 반가움 반, 낯섦 반의 인사를 건넨 뒤 각자 일을 시작했다. 앞서 오전 6시30분부터 건설사업자(원청) 주체로 열린 필수안전교육을 듣느라 늦은 이유는 이들에게 궁금하지 않아 보였다.
교육은 신규라면 거쳐야 할 필수 절차였지만, 팀원들이 신규를 본 건 근래 없는 일이라고 나를 이곳으로 인솔한 해체팀장이 귀띔했다. 이들은 이내 망치로 벽체를 내리치는가 하면, '빠루'(노루발처럼 생긴 연장·못을 뽑거나 무언가 뜯어낼 때 쓴다)로 벽체를 뜯어냈다. '막내'가 기자 신분인 것은 인력사무소 소개로 만난 팀장만이 아는 시점이었다.

이날 생판 초짜인 내 임무는 거푸집 사이를 결속하는 '십자 조인트 바'의 핀을 망치로 때려 뽑는 것. 요령 없이 있는 힘으로만 망치를 쓰던 중 김모(56)씨가 발판을 몇 칸 뛰어넘어 다가와 말했다. "힘으로만 하면 되는 게 없어요. 핀이 꽂힌 방향을 보고 이래 쳐봐요"하며 시범 동작을 선보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팀원 유모(55)씨가 "발판 사이 허공에 빠질 수 있으니 안전벨트를 '서포트'(지지대)에 거시라"고 주의를 줬다. 발판을 옮기면서도 이들은 안전벨트를 옮겨 걸며 현장 규정에 도가 튼 모습이었다. 바닥을 내려다보니, 발판 끝에 발이 걸쳐 있었다. 발을 헛디디면 3m 아래로 추락할 수도 있다.
이어, 유씨는 "망치를 칠 때 핀이나 시멘(시멘트)가루가 어디로 튈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했다. 

"식구나 다름없죠."

오후 3시께. 건설현장에서 '참'이라고 불리는 간식 시간이다. 1시간 정도의 점심시간과 더불어 오전, 오후 두 차례의 '참' 시간이 주어진다. 그제야 기자라는 것을 모두에게 알렸다.
이들 팀원들은 서로를 "식구"라고 했다. 그렇잖아도 해체팀원 중 한모(56)씨는 김씨와 20년 '현장지기'다. "현장 사정에 따라 이 친구와 잠시 헤어진 적도 있지만, 이렇게 또 만나 일하지 않나. 식구죠 식구." 김씨가 말했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간 해체 작업을 해온 이들은 "성한 데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팀장 이모(35)씨는 3년 전 미처 닫히지 않은 '개구부'에 빠져 양팔꿈치가 부러져 6개월을 쉬었다. 위험천만한 환경에도 이들을 현장으로 이끄는 데 '식구'라는 서로의 존재가 한몫한 듯 보였다. 하루 작업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자, 맏형 허씨는 "기자 양반, 끝이 제일 중요해. 날씨도 얼마나 좋아요. 다음에 오려면 다치지 말고 가야지"라고 힘을 북돋았다.

"'건폭'은 무슨, 이렇게 법을 지키며 일하는 사람들이 어딨습니까."

이들도 윤 대통령의 '건폭' 발언을 모르지 않았다. 취지에는 대체로 이해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위험하고 '다단계 하도급' 등이 만연한 건설현장 부조리 해소 없이 '조폭'에 빗대는 건 아쉽다고 했다.
팀장 이씨는 "문제가 있으면 짚고 넘어가야 하지만, 이렇듯 위험한 일터에서 법을 지키며 평범하게 일하는 노동자들을 싸그리 묶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